[Big Story]격변의 연금 시장, 퇴직연금이 지켜낼까

① 격변의 연금 시장, 퇴직연금이 지켜낼까

퇴직연금이 고갈 위기에 처해 있는 공적연금 자리를 대체할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정부가 연금 개혁을 위한 강한 드라이브에 나서면서 사적연금의 제도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사적연금의 몸집을 키워 공적연금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포석이다. 퇴직연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변화의 격변기에 들어선 퇴직연금 시장에 대해 들여다본다.




‘296조 원 시장.’ 퇴직연금 시장의 몸집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40조 원 규모가 늘어나며 가파른 성장가도를 보이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은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저금리 장기화로 인해 연간 수익률이 저조한 수준에 그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근 5~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1~2%대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퇴직연금이 향후 고갈 위기에 처해 있는 국민연금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공적연금 흔들리며 퇴직연금 재조명
전문가들은 100세 시대에 3층 연금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적절하게 배분해 국민연금(1층), 퇴직연금(2층), 개인연금(3층)이라는 ‘3층 연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에서는 연금 고갈 이슈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혁할 예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수지는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은 2055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2088년엔 누적 적자가 1경700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각각 3조730억 원과 2조9077억 원의 적자가 불가피해 정부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본격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올해 정부는 연금 개혁을 3대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며 연금 개혁 공론화를 위한 불을 지피고 있다. 동시에 퇴직연금 제도 개선 마련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95조6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대비 40조1000억 원(15.7%)이 늘었고, 5년 전에 비해선 2배 이상을 훨씬 뛰어넘은 규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앞으로 공적연금은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이 매우 커지게 될 것”이라며 “현재 사적연금 가입자의 비율은 한국이 17%로 굉장히 미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처 :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수익률 저조… 일시금 수령 방식 다수
공적연금을 보완할 사적연금 주축인 퇴직연금이 노후 준비의 중요한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퇴직연금 시장은 296조 원 시장으로 급성장했지만 노후 안전판으로 등극하기엔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전년 대비 0.58%포인트 감소한 2%대에 머물러 있다. 사실상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2.5%)보다 낮은 수준이다. 최근 5년,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1.96%, 2.39%를 기록했다.

이처럼 저조한 수익률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확정급여(DB)형이 171조5000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저조한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확정기여(DC)형은 77조6000억 원, 개인형퇴직연금(IRP)은 46조50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컸지만 DB형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DC형 상품도 원리금보장형이 255조4000억 원에 달해 전체 적립금의 86.4%에 이른다. 반면 실적배당형은 40조2000억 원으로 13.6%에 그치고 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큰 만큼 DC형 상품의 수익률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은 전년 대비 0.33%포인트 감소한 1.35%로 집계됐다. 이에 반해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6.42%에 이르고 있다.

김은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퇴직연금은 은퇴 시점까지 장기간 운용되는 특성상 연 1%의 차이가 큰 금액 차이를 가져온다”며 “수익률 제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향후 원금보장형에서 실적배당형으로 운용 방식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금융감독원)

무엇보다 퇴직연금 수령액을 연금 형태가 아닌 일시금으로 택하는 은퇴자들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퇴직연금 수령이 시작된 39만7000여 계좌 가운데 95.7%가 일시금을 선택하면서 퇴직연금 인식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입 유도 위한 세제 혜택 늘려야
정부가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저조한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퇴직연금 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것도 이같은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와 노인빈곤율, 고령층의 국민연금 가입 비율, 연금을 통한 소득대체율 등을 고려할 때 사적연금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지난해 기준 16.5%로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 이상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연금 가입률은 16.9%로 극히 저조한 상황이다.



(출처 : 금융감독원)

생명보험 업계의 연금보험 판매도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연금보험 초회보험료는 3조2981억 원으로 2014년 대비 5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대비에 대한 인식이 극히 낮고 사교육비 등 당장 지출해야 할 것들이 많아 퇴직연금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따라서 퇴직연금 가입 유도 차원에서 세제 혜택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또한 여전히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퇴직연금 가입 제도 의무화도 시행하지 않고 있어 연금 인식이 낮다는 지적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퇴직연금에 대해 높은 한도의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해 은퇴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자산을 형성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낮은 퇴직금 제도에서 퇴직연금 제도로 전환하는 형태의 가입 제도 의무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까다로운 가입 요건을 완화해 자영업자와 비정규 근로자들까지 포용하는 전국민 퇴직연금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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