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임소현 플랜튜드 헤드 셰프 "호기심 아닌 맛으로 찾는 비건 레스토랑 만들 것"

친환경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부터 줄곧 ‘바른 먹거리’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풀무원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국내 최초로 모든 메뉴의 비건 인증 절차를 마친 ‘플랜튜드’의 임소현 헤드 셰프(풀무원 푸드앤컬쳐 C&S MD 기획팀)를 만났다.



- 최근 비건 음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Healthy(건강한)와 Pleasure(기쁨)의 합성어]’ 트렌드와 맞물려 식물성 식단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간헐적 비건 식단을 진행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Flexible(유연한)과 Vegetarian(채식주의자)의 합성어]’ 인구가 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또한 장기화된 코로나19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육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반대로 식물성 대체육에 대한 필요도 늘었다. 국내는 아직 시장 도입 단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금세 성장할 걸로 보인다. 그만큼 잠재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다.”

- 풀무원은 창립 이후 줄곧 ‘바른 먹거리’를 강조해 왔는데.
“내가 풀무원에 입사한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바른 먹거리로 사람과 지구의 건강한 내일을 만든다’는 기업 미션이 마음에 와 닿았다. 비건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20여 년 전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지속 가능한 메뉴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최초의 비건 인증 레스토랑인 플랜튜드를 맡게 된 것이 매우 영광스럽다.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 플랜튜드의 메뉴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비건 음식에 대한 편견들이 있다. 맛이 없다거나 ‘과연 채소만 먹고 배가 부르겠느냐’ 하는 것들이다. 이런 편견을 깨부수고 싶었다. 반드시 ‘맛있는 음식’, 또 ‘든든한 음식’이라는 목표로 메뉴 연구와 개발을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메뉴 개발 초창기에는 대체육을 많이 사용했다. 밥이나 탕, 피자 할 것 없이 대체육을 다 넣었다. 그런데 사내 시연 시 어느 비건 사원이 ‘나는 고기가 먹기 싫어서 비건이 됐는데, 왜 자꾸 이렇게 비슷한 걸 보여주면서 고기(대체육) 먹기를 강요하느냐’고 하더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듣고 보니 고기가 아닌 걸로 고기 맛을 내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거든. 그래서 이후에는 보기에 자연스러운 메뉴를 개발하고자 했다. 또 비건 중에는 여성이 많기 때문에 기왕이면 예쁘게 만들려 했다.”

- 비건 푸드가 심심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그래서 플랜튜드는 비건들의 선택 폭을 넓혀주려 한다. 메뉴 개발을 하면서 비건들을 많이 만났는데, 가끔은 그들도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는, 매콤하면서도 조금은 달고, 짠 메뉴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많이 했다. 비건이 아닌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 오픈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풀무원이라는 회사가 그렇다. 뭐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플랜튜드의 전 메뉴는 비건표준인증원으로부터 비건 인증을 받았다. 업계 최초다. 그런데 이 인증을 받는 과정이 정말 순탄치 않았다. 한번은 식물성 크림으로 크림 떡볶이를 만든 적이 있는데 우리 셰프들뿐 아니라 풀무원 직원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플랜튜드 대표 메뉴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인증 과정에서 소량의 우유 성분이 발견됐다. 오픈 직전이었지만 어쩌겠나. 메뉴 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할 수밖에. 심지어 비건 인증을 받으려면 식재료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도 동물성 원료가 나오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라테도 매장 내에선 못 마신다.”

- 플랜튜드의 메뉴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앞서 말한 ‘트러플 감태 화이트 떡볶이’다. 인증 과정 단계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가장 애착이 간다. 결국 크림 대신 감자와 양파, 통마늘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감태로 감칠맛을 더하고 트러플 오일로 풍성한 풍미를 추가했다. 솔직히 다른 메뉴들에 비해선 고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기는 하다. 또한 오픈 기념으로 선보였던 티라미슈도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티라미슈 개발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일반적인 티라미슈를 만들 땐 물성을 잡기 위해 달걀을 사용한다. 우리는 이걸 못 쓰니까 젤라틴을 사용했는데, 젤라틴 역시 동물성 재료라더라고. 그래서 우뭇가사리 등 정말 많은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 두부에서 해법을 찾았다. 오픈 당시 반응이 너무 좋아 지금은 메뉴판에 이름을 올렸다.”

- 고객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신규 매장이라 호기심에 들어와봤다가 단골이 되는 고객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식사 시간에는 매장 앞에 긴 줄도 생겼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식당이 얼마나 많은데, 그저 감사하지. 특히 얼마 전에 ‘플랜트 소이불고기 덮밥’을 맛본 한 고객은, 기존 고기로 만든 불고기 덮밥보다 더 맛있다고 하더라. 속이 편하다는 의견과 비건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었다는 평도 많다.”

- 그동안 국내에서 식물성 대체육이라 하면 콩고기가 대표적이었다. 플랜튜드가 사용하는 풀무원 제품과의 차이점은.
“풀무원의 식물성 대체육은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Textured Vegetable Protein, TVP)’ 소재를 가공해 만든다. 보통 콩에서 추출한 TVP는 콩 비린내가 많고, 식감도 질기다. 이를 고품질의 대체육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TVP를 가공하는 기술력이 매우 중요한데, 앞서 말했듯 풀무원은 오랜 시간 ‘바른 먹거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해 왔다. 특히 풀무원만의 숯불 직화 공정으로 실제 고기와 거의 유사한 맛과 질감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정말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방문하는 고객이 지루하지 않게 앞으로 계속 메뉴를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다. 우선은 육수 개발이 한창이다. 비건 푸드 특성상 채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플랜튜드만의 채수를 만들고 싶다. 채수 하나 제대로 만들면 면과 밥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틈틈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해외 음식도 살피고 있다. 가령 현재 판매 중인 ‘무자다라’ 역시 자료 수집 중 발견한 이란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비건 푸드로 개발한 경우다.”

- 고객이 플랜튜드를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를 갖기 원하나.
“좀 빤하긴 하지만 비건뿐 아니라 비(非)비건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꼭 채식이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맛있어서 오고 싶은 일상 속 레스토랑이랄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플랜튜드가 대한민국 비거니즘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글 이승률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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