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가팔라진 금리 인상…가계부채 뇌관 건드릴까

최악의 인플레이션 사태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위기와 맞물리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전반으로 긴축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1860조 규모로 불어난 가계대출 규모가 국가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지목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2.50%으로 단기간 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시장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작년 8월 이후 1년 새 2%포인트가 뛴 것이다. 한은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물가와 환율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상 최초로 4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나섰다.

기준금리는 연내 3%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대출금리 급등세로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부실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 상반기 기준 186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규모 역시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웃도는 수준이다.

최근 한 달 새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가 0.52%포인트나 오르며 3%대에 다가섰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가계부채 규모와 속도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금리 고공행진에 부채의 질 악화 ‘빨간불’
1860조 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 빚 후폭풍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무엇보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대출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위기가 왔을 때 강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약한 고리’가 가계 빚 부실화의 핵폭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계 빚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뇌관’은 다름 아닌 자영업자들과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사람)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960조7000억 원으로 집계된다. 무려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되는 사업자대출은 625조1000억 원으로 자영업자 전체 대출의 3분의 2에 달한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여파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 대출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특히 가계 빚 부실화는 제1금융권이 아닌 2·3금융권에서 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중심으로 빚 부실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대출자 가운데 22.4%가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잔액 기준으로도 다중채무 비중은 31.9%에 달한다. 이는 1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이 제 2·3금융권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 1분기 말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 가운데 76.8%가 저축은행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에 대출잔액이 몰리면서 고금리로 인한 빚 부실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기준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시중은행이 연 4.23%, 저축은행이 연 9.79%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배 이상 높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금리는 신용점수가 600점 이하인 저신용자 기준 법정 최고 금리(연 20%)에 근접한 연 1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여파로 인한 후폭풍도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리가 정점을 찍은 이후 자산가격 거품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금리가 정점을 찍은 이후 자산가격 급락으로 이어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금리 역전 폭은 연말쯤 0.5%포인트 정도로 예상하지만 금리 역전으로 인한 자본 유출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금리가 정점을 찍고 난 이후에 금융위기가 왔었던 과거 사례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의 하락 압력과 기업들의 이자 상환 부담으로 인한 기업 부도 리스크, 가계 파산 리스크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가격 하락세…경기 침체 시그널 그림자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 여파로 급등세를 보이던 주식과 코인, 부동산 등 대표적인 자산들의 가격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주식과 코인이 조정을 받고 있고, 부동산 가격 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급등세를 보이던 자산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다. 돈의 흐름이 경색되면서 경기 침체의 문턱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자산가격이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리 인상이 발단이 됐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가 장기화되면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졌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을 오가며 2.25~2.5%까지 끌어올렸다.

Fed는 9월에도 빅스텝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9.1%) 대비 소폭 둔화한 8.5%를 기록했지만 고물가를 잡기 위해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2년 반 만에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면서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도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미 금리 역전 차가 확대될수록 국내 경기에 미치는 여파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한은의 기준금리를 현수준(2.25%)에서 2~4회 추가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른바 ‘인플레 파이터’를 자처하는 한은이 미국의 기준금리 상승 속도와 함께 기준금리 상승 랠리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내년 초까지 최대 3.25%까지 기준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미 간 금리 역전 차를 좁히고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내년 1월 물가는 6%대, 원·달러 환율은 1350원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해 8월에 이어, 10월, 11월, 내년 1월까지 25bp(1bp=100분의 1%)씩 추가 인상해 최종 3.25%까지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한국의 성장률 및 물가 전망은 각각 2,3%, 5.1%로, 골드만삭스는 내년 성장률로 컨센서스보다 낮은 2%를 전망했다. 추가 금리 인상에 따라 국내 경기 둔화 흐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소비자신뢰지수나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소득 및 지출 계획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3분기 이후엔 소비 둔화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자본시장부장은 “해외 IB들의 국내 시장금리 전망을 보면 우리나라 성장에 대한 우려가 미국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며 “향후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전망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출 부실화 막기 위한 제도적 정비 시급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부채 질 악화는 경기 침체 여파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만큼 정책과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적인 이슈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차주들의 대출 부실화로 인한 후폭풍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선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차주별 채무조정 제도를 통해 대출 부실화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운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했는데,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7%가 넘는 고금리 자영업자 대출을 최대 6.5% 금리로 바꿔주는 정책이 시행된다. 또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대출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추진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정책 당국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 부실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금융 시장의 건전성과 금융 불안정 해소 차원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채무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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