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풀멍’ 하며 돈도 버는 식물 재테크의 매력은
입력 2022-08-30 09:00:03
수정 2022-08-30 09:05:15
반려식물과 홈가드닝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째를 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특히 숫자가 아닌 초록 잎사귀를 보며 재테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식테크(식물 재테크)만의 장점이다.
#.20대 시절부터 ‘식집사(식물을 집사처럼 극진히 관리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가졌던 직장인 윤 모(36) 씨는 지난해 식테크의 매력에 빠졌다. 화분에 물을 주며 ‘풀멍(멍하게 식물을 바라보는 것)’ 하는 취미생활을 넘어, 식물이 쏠쏠한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이다. 소소하게 시작한 식테크는 이제 안정적 궤도에 올라, 한 달에 300만~400만 원의 수익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윤 씨는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본격적인 재테크는 자신이 없어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는데, 취미였던 식물 가꾸기가 생각지 못한 수익원이 될 줄 몰랐다”며 “혹시 더 이상 안 팔리더라도 내가 키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라 큰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다.
몬스테라 알보, 안스리움 크리스탈리, 무늬 아단소니. 발음도 쉽지 않은 이국적인 식물 이름이 요즘 부쩍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성장한 홈가드닝 시장의 영향으로 열대 관엽식물이 인기를 얻으면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농촌진흥청이 농식품 소비자 패널 726명(평균 연령 48.7세, 월평균 소득 484만 원, 평균 가구원 수 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1%가 코로나19 이후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응답했다. 또 43.1%는 반려식물이 애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치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20~30대의 관심도가 61.1%로 높았다.
식물 시장의 인기는 단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해시태그 숫자를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대표적인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반려식물’ 태그는 96만 건에 달한다. ‘플랜테리어’와 ‘홈가드닝’에 대한 게시물도 각각 116만 건, 44만9000건을 기록했으며, ‘식집사’를 태그한 글은 23만 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대 관엽식물 중에서도 실내를 꾸며주는 관상용을 넘어 환금성까지 보장해주는 희귀 무늬종의 인기가 높다. 초록빛 잎사귀 사이사이에 개성 있는 돌연변이 무늬가 섞인 몬스테라속 관엽의 수요가 많은 편이다.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의 색상 변이종인 민트 몬스테라는 얼마 전까지 잎 1장당 10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물론 동일한 식물이라고 해도 무늬의 모양이나 색상에 따라 가격대가 크게 달라진다. 가장 거래가 활성화돼 있는 몬스테라 알보의 경우 잎 1장에 50만 원 아래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현재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량이 거의 없고 국내 생산 물량으로 대부분의 거래가 소화되는 탓에 국제 시세의 3배가량 높은 시세가 형성됐다. 이는 지난해 3월 농림축산검영본부가 바나나뿌리썩이선충(radopholus similis)이 검출된 수입 관엽식물에 수입 제한 조치를 내린 영향이 컸다. 바나나뿌리썩이선충은 감귤류나 당근 등 농산물 생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병해충으로, 1996년 금지 해충으로 지정됐다. 올해 일부 국가의 요청에 따라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긴 했지만, 검역 조건이 까다로워 해외에서 물량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문 상황이다.
집 안에서 재배하며 무한 번식…식재 노하우 중요
몬스테라 알보 등 희귀 관엽식물을 거래할 때는 통상 잎 1장의 가격으로 시세를 매긴다. 잎이 여러 장 있는 성체를 거래하는 경우도 있지만, 잎사귀가 붙어 있는 가지를 떼어 순화(흙에 뿌리를 내리도록 적응시키는 것)한 것을 판매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희귀한 돌연변이 무늬를 살리기 위해 삽수(기존 식물에서 잎과 줄기, 뿌리를 떼어낸 것)를 이용해 번식시키는데, 새 잎이 날 때마다 새로운 개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새 개체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충분한 광량을 확보하지 않았거나 식재 노하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해 멀쩡한 잎을 죽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원예업 관련 종사자들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넓은 실내 공간만 확보된다면 초보 식집사들도 식테크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15년 이상 원예업을 하고 있는 김 모(53) 씨는 “관엽식물이 지금처럼 인기를 끌기 전인 몇 년 전에 키워본 경험이 있는데, 농원에서 한꺼번에 관리해 판매하는 기존 식물들과 성향이 조금 달라 재배에 큰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고가의 식물인 만큼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가정에서 키우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잎사귀가 난 줄기나 가지를 잘라 삽수 형태로 거래하는 방식은 국내 ‘종자산업법’에 위반된다. ‘종자산업법’에 따르면, 정해진 절차에 맞춰 종자업을 등록하지 않은 개인이 종자나 묘목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물론 중고나라,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삽수 형태로 판매하는 경우도 많지만 원칙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래 방식이다. 따라서 조금 더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흙에 식재된 개체를 구매하는 게 좋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