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여행작가]문화와 자연의 보고...'힙'하지만 정겨운 강진 여행

전남 강진군을 지도에서 봤을 때 바지가 떠올랐다. 두 다리와 넓은 허리춤, 마룻바닥에 철퍼덕 널어놓은 영락없는 바지다. 아버지의 낡고 주름진 바지, 펑퍼짐한 힙합바지, 세대를 아우르는 넉넉한 문화와 자연이 있는 곳, 이번 여행은 힙하고 정겨운 강진이다.


강진 여행의 시작은 석문공원에서
석문공원은 강진읍 남쪽 도암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영암에서 완도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강진군의 왼쪽 다리 허벅지쯤에 있다. 석문은 이름 그대로 자연이 조각처럼 빚어낸 기암절벽을 뜻하는데 오래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그 모습이 소금강을 빼닮았다고 칭송해 왔다.

그런 석문공원은 석문산과 만덕산이 이뤄낸 골짜기 계곡을 따라 조성돼 있다. 워낙 수려한 자연 위에 놓인 공원이라 조성 의도를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1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식재됐음에도 자연스레 생겨난 숲이라 착각하게 된다. 석문공원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길이 111m의 출렁다리다. 다리로 가려면 도로 아래의 계곡 통과해 공원 반대 방향에 있는 석문산 자락을 올라야 한다.
이때 바위 군락을 잘 살펴보면 탕건을 쓴 사람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름하여 ‘세종대왕바위’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기를 받고 출렁다리에 다다랐을 때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반긴다. 2017년 출렁다리가 이어진 후 만덕산을 내려와 석문산으로 다시 오르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등산객들도 편안하게 두 산을 이어 트레킹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석문공원의 순환 산책로도 생겨난 셈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빼어난 경치와 계절의 색감을 만끽할 수 있는 석문공원은 당근지사 강진 여행의 첫 코스다.

석문공원: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도로 2084


다산의 흔적을 찾아
신유박해의 희생물이 된 다산 정약용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 와서 18년을 보냈다. 유배 초기 다산은 밥파는 주막 매반가(賣飯家)에서 4년을 묵은 뒤 보은산장, 이학래 집 등을 전전한다. 그러던 1809년 윤씨 집안의 소유였던 산정(山亭)의 빼어난 정취에 반한 다산은 그곳에 집을 짓고 머물기로 하는데 이곳이 ‘다산초당’이다.

초당은 다산이 기거하던 본채, 서재의 역할을 한 동암, 제자들의 숙소 서암으로 구성돼 있다. 다산은 이곳에 머무는 10년 동안 18명의 제자를 길러넀고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포함한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집필했다. 다산초당은 그가 떠난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 소실됐고 방치됐다가 근래에 재건됐다.

다산초당은 석문공원에 근접해 있어 여행의 두 번째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들머리에서 빼곡한 숲 사이 좁은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새처럼 날아와 쌓인 나뭇잎을 밟으며 걷다 보면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다산의 가장 어린 제자였던 윤종진의 무덤을 지나면 바로 다산초당이다. 때 묻지 않은 하얀 서까래와 기둥 그리고 볏짚 대신 올려진 기와가 아쉽지만, 흔적은 그가 밟고 만졌을 흙과 나무, 하늘과 바람에도 깃들어 있는 듯하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는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1km, 3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소나무, 비자나무가 천연림을 이루고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숲길이니만큼 최대한 천천히 보고 느끼며 걸어야 한다. 그리고 다산박물관으로 내려와 그의 이야기를 마저 채우면 어느새 다산 정약용으로의 여정은 깊고 단단해진다.

다산초당: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다산박물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로 766-20

풋풋한 감성으로의 시간 이동, 영랑생가
영랑생가는 강진 읍내에 있다. 1903년에 태어난 영랑 김윤식이 1948년까지 45년간 살았던 집이다. 이후 소유권이 몇 차례 이전됐던 것을 1985년 강진군청이 사들여 복원했다.
영랑생가는 2007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창씨 개명,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영랑의 시 세계가 이 시기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점, 새마을운동 등으로 일부 훼손 또는 철거됐던 가옥을 심도 깊은 고증으로 원형을 복원한 점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본채와 사랑채 2채의 초가로 구성된 생가는 고풍의 정서가 물씬 배어 있다. 가옥을 둘러싼 대나무, 동백숲은 물론 감나무와 장독대에도 시절과 계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오래전 영랑이 이곳에서 시의 소재를 얻었던 것처럼 탐방객들도 마루에 걸터앉아 시상에 빠져든다.

영랑생가 바로 앞에는 시문학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아홉 시인의 육필과 유품 그리고 저서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읽어보았음 직한 시문학파 시인들의 작품과 기록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학창 시절의 여리고 풋풋한 감성으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영랑생가: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시문학기념관: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마음이 가는 대로 쉬고 걸으며
석문공원과 다산초가를 한데 묶어 여행했다면 영랑생가 다음에는 곧장 강진만 생태공원을 탐방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인근이기 때문이다. 장흥에서 발원한 탐진강이 강진천을 만나 함께 남해로 흘러드는 곳이 강진만이다. 바지로 따지자면 두 다리가 만나는 가랑이에 있다.
강진만은 둑이 없는 열린 하구로 환경이 양호해 1000종이 넘는 다양한 생태자원이 서식하고 있다. 66만1157m²의 갈대군락지가 생태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다.

생태공원을 걸을 때 코스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탐방로가 이어지는 대로 혹은 마음이 가는 대로 쉬고 걸으며 갈대의 물결을 즐기면 된다. 일상의 어느날 문득 떠오를 잔잔한 기억 속에는 지느러미를 저으며 갯벌을 누비는 짱뚱어도, 유유히 물가를 헤엄치는 철새들의 모습도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 전남 강진군 강진읍 생태공원길 47

강진만의 유일 섬 가우도
가우도는 강진만에 8개의 섬 가운데 속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으로 강진 바지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덩그러니 떠 있다. 2013년 대구면 저두리(438m)와 도암면 망호리(716m)를 잇는 2개의 해상보도교가 생기며 가우도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섬이 됐다. 해상보도교의 최초 이름은 ‘가우도 출렁다리’였다 이후 혼선을 막기 위해 청자박물관이 있는 우측 대구면의 것은 청자다리로, 다산초당이 있는 좌측 도암면의 것은 다산다리로 명칭을 바꿨다.

가우도는 해안선을 따라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이 3km 순환되고 모노레일, 짚트랙 등이 설치돼 강진에서 가장 핫한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짚트랙은 섬의 가장 높은 곳 청자전망대에서 섬 밖에 있는 주차장까지 1km 나 이어진다. 젊은 여행객들은 섬 곳곳에 놓인 포토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짚트랙을 타고 극상의 아찔함을 경험하기 위해 가우도를 찾는다.

이렇듯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섬도 조금만 비켜서면 제 모습이 보인다. 그를 감싼 자연이 변함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섬 여행을 원한다면 가우도의 저녁 무렵을 추천한다. 가우도의 하루가 다산다리 너머로 저물면 청자다리 한켠으로 애틋한 감성이 피어난다. 그리고 발갛게 물든 갯벌 위로 마지막 짚트랙 주자가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섬은 섬으로 남겨진다.

가우도: 전남 강진군 도암면 신기리 산31-2
가우도 짚트랙: 전남 강진군 대구면 중저길 31-27


한정식에 버금가는 푸짐한 한 끼 병영돼지불고기
한정식으로 유명한 강진이지만, 서민적인 한 끼로 병영돼지불고기를 추천한다. 병영은 조선시대, 전남과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 군현의 군사권을 총괄하는 육군 총지휘부 병영성이 있었던 곳이다.

병영에는 돼지불고기 특화 거리가 조성돼 있다. 식당마다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연탄불로 구워낸 돼지고기를 메인으로 홍어회, 조기구이 등이 포함된 20여 가지 반찬을 함께 내놓는다. 물론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매콤 들큼한 돼지불고기 맛이 그만이다. 또 푸짐한 반찬 덕에 입이 즐겁고 배도 그득해진다.

병영돼지불고기는 조선시대 삼촌과 조카의 일화에서 유래됐다. 강진 현감으로 있던 삼촌은 전라병영성의 수장으로 부임한 조카를 찾아 인사를 하게 된다. 현감보다 병마절도사가 더 높은 직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카는 삼촌을 극진히 모시며 돼지고기를 내어 대접했다. 이후 병영에서는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양념이 잘된 돼기고기를 구어 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글·사진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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