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불면 원인은 낮 시간대 빛 부족…수면리듬 맞춰줘야”
입력 2022-12-28 07:00:08
수정 2022-12-28 07:00:08
김용덕 루플 대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는 8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사실 8시간을 잘 자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16시간의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슬립테크 기업 ‘루플‘의 김용덕 대표가 인간의 수면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빛’의 파장이다. 그는 낮 시간대 우리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인간의 생체리듬에 영향을 끼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숙면에 도움을 주는 라이트 테라피(light theraphy) 솔루션을 내놨다. 실내 생활을 주로 하는 낮에는 ‘올리 데이’를 통해 햇빛을 쬐는 효과를 주고, 빛을 최소화해야 하는 밤에는 ‘올리 나이트’를 통해 숙면 환경을 조성해준다.
루플의 솔루션은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미국 CES에서 2021년부터 2년 연속 ‘헬스 앤 웰니스 부문’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둠 가득한 ‘밤의 시간’뿐만 아니라, 빛이 만발한 ‘낮의 시간’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 대표를 직접 만나 빛이 인간의 수면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봤다.
수면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각성’이었다. 학생들이 카페인이나 약물에 의존하는 것을 보고, 다른 방식으로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게 됐다. 생체시계인 ‘서캐디언 리듬(24시간 주기리듬)’을 통제하는 분자 메커니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계기로 생체리듬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인간에게는 각성뿐만 아니라 이완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인간은 각성과 수면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생체리듬의 관점에서 수면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빛’을 매개로 수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이었나.
“그렇다. 2017년부터 빛의 생리적 효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해외 연구에서 빛과 수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솔루션도 많지만, 가장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는 8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사실 8시간을 잘 자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16시간의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최근 현대인들이 수면 문제를 많이 겪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실내 생활 때문이다.”
실내 생활이 수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가.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현대인은 운전 시간을 포함해 하루의 93%를 실내에서 생활한다. 밤에 숙면하기 위해서는 낮에 충분한 빛을 쬐고 멜라토닌을 완벽히 억제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실내 공간이 굉장히 밝아 보일 수 있지만,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빛의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충분한 빛을 받으려면 창가 1m 이내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 인공조명이 개발되지 않은 시절에는 낮에 해를 보며 일하고, 밤에는 자연스럽게 깜깜한 곳에서 잠들었다. 반면 현대인의 99%는 낮에 빛이 부족하고 밤에 인공조명이 넘치는 환경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모두가 교대근무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인이 겪는 수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다. 깨어 있을 때는 완벽하게 깨어 있어야 하고 잘 때는 완벽하게 자야 하는데, 이런 각성과 이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루플의 솔루션은 빛의 파장을 통해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분비를 조절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학적으로 그 효과가 검증된 건가.
“2017년 이후 카이스트와의 실험을 통해 빛의 파장에 따른 뇌파와 호르몬의 변화를 검증했다. 또 2022년 서울대병원과 함께 빛이 우리의 수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는 임상 진행을 했다. 1차 검증에서 루플 솔루션을 사용한 사람의 73%가 2주 안에 수면이 개선됐고, 생체리듬 지표 11개 중 수면 질이 43%가량 개선됐다. 침대를 바꿨을 때 수면 질이 10%만 개선돼도 높은 수치로 평가되는데, 상대적으로 루플 솔루션의 개선 폭이 높다고 자평한다.”
빛이 수면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참고할 만한 임상 사례가 있을까.
“2021년 한 의학회지에 실렸던 사례가 있다. 20대 젊은 남자가 취직을 하고 나서 불면증에 걸렸다. 밤에 잠을 못 잔 탓에 지하철에서 졸다가 지각을 하거나 사무실에서 잠드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퇴사까지 하게 됐다. 그분에게 내려진 의학적 처방이 바로 라이트 테라피였다. 수면제를 처방받은 게 아니라, 빛을 통해 수면리듬을 맞춰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처방 내용은 일어나서 30분에서 2시간 정도 밝은 빛을 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직장인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 햇빛을 30분씩 보는 시간을 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조명을 통한 라이트 테라피를 권하는 이유다.”
기존에 보유한 조명 기기를 활용할 수는 없는 건가.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단순히 조명이 밝거나 어둡다는 것만으로는 수면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멜라노픽 조도다. 생체리듬에 영향을 주는 아침 빛은 480nm 파장인데, 이 파장이 눈을 통해 감지돼야 우리 몸의 각성과 이완에 영향을 끼친다. 이를 멜라노픽 조도라고 한다. 시중의 조명이 그런 역할을 하려면 지금보다 2~3배 높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일반 조명으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루에 30분 정도만 빛을 쬐도 충분한가.
“물론 개인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시간이 다를 수 있다. 빛도 카페인과 마찬가지로 개인 편차가 굉장히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카페인을 많이 섭취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 반면, 미량 섭취했는데도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50분 동안 빛을 쬐야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좀 더 강한 파장을 짧은 시간 동안 쬐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앞으로 이런 개인별 특성을 데이터로 분석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현시점 슬립테크 시장을 진단한다면.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침대에 있는 센서로 수면 자세를 파악하거나 호흡 소리를 통해 수면 단계를 체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또 라이다(lidar) 기술로 숨 쉬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솔루션도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기술은 ‘수면 측정을 해서 결국은 어떻게 할 건데’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앞으로는 ‘측정’을 넘어 ‘개선’을 해주는 솔루션이 슬립테크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예상한다. 빛 부족을 비롯해 수면 질환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는 기술이 복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도 진출했다고 들었다. 슬립테크 제품이 어떤 형태로 B2B 시장에 공급되고 있는 건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이 교대근무자 시장이다. 교대근무자들은 부족한 빛으로 인해 큰 건강 문제를 겪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야근과 교대근무를 제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을 정도다. 교대근무자의 수면 건강 문제는 사회적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 세계적으로 졸음 근무가 원인이 돼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이 꽤 있다. 기업이 밤에 일하는 교대근무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빛 환경을 제공하는 것인데, 근무자별로 각각 다른 빛 환경을 같은 건물 내에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개인 맞춤형 슬립테크가 B2B 시장에서도 커질 것이라고 본다. 루플이 B2B 전용 솔루션을 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라이트 테라피 외에 또 다른 서비스도 구상 중인가.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현대인이 겪는 다양한 질병의 공통적인 원인을 생체리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생체리듬을 설정해주는 주요 인자는 빛이다. 그런데 빛을 통해 생체리듬을 재설정한다고 해도 리듬을 깨뜨려 버리는 또 다른 요인들이 있다. 카페인을 포함한 약물, 식사, 운동과 같은 것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생체리듬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행동을 제안해주는 토털 케어 솔루션을 목표로 할 계획이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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