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 음악 프로듀서
‘K-팝 베토벤’. 황현의 이름에 붙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세븐틴 등 수많은 K-팝 아티스트의 명곡을 만든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다. 그룹 온앤오프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황버지(황현+아버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듣는 이를 벅차오르게 하는 멜로디와 특유의 가사로 음악 프로듀서 중에서는 드물게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에세이집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를 통해 언어적 감각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이 책에서 그는 “참치와 같은 회유성 어류는 부레가 없어서 헤엄을 멈추면 죽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가 참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비유에 걸맞게 황 프로듀서는 스스로를 ‘워커홀릭 유전자’라고 자평한다. 기분 좋은 책임감에 밀려 오늘도 쉴 틈 없이 헤엄치는 황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그의 작업실에서 들어봤다.
최근 에세이집을 출간하셨죠. 기분이 어떻던가요.
“사실 출간 직후에는 크게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책임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음악을 만들 때는 저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로 곡을 쓰더라도 그 곡을 가수가 부르고 나면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 가수에게 어울리도록 리폼을 하기도 하고요. 뒤에서 열심히 돕는 스태프 중 한 명에 가까웠죠. 그런데 제가 쓴 책은 오롯이 제 것이잖아요. 제가 한 이야기들이 저의 철학이기도 하다 보니, 텍스트화 된 것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됐습니다.”
그동안 작업한 가사를 보면서도 느꼈는데,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과거부터 어떤 글을 써 왔는지가 궁금한데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 쓰라고 시켰던 일기는 잘 안 썼지만 드문드문 생각나는 이야기를 산문 형태로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가사를 위해 메모 형태의 글도 많이 남겼죠. 제가 좀 메모광이거든요. 어릴 적 썼던 노트는 아직도 보관 중인데, 지금도 가끔 보면서 웃어요. 특히 중학교 1학년 이후에 쓴 글을 보면 신기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일주일 전에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지금과 비슷한 말투와 생각을 담고 있었어요. 흔히 작곡가들이 그런 말을 해요. 사람이 갖고 있는 멜로디는 타고나는 것이라, 잘 변하지 않는다고. 예를 들어 10년 전에 제가 만든 곡의 편곡과 분위기는 촌스러울 수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멜로디는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게 그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하는데,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라고요.”
에세이집에 ‘고갈에 대한 불안’을 소재로 삼은 글들이 있던데, 요즘은 어떤 상태인가요.
“사실 늘 그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곡을 발표해도 관심 자체가 적었는데, 이제는 관심을 많이 받다 보니 자기 검열도 좀 심해졌죠. 스스로 객관화되는 측면도 커지고요. 그래서 (곡을 쓸 때) ‘이제는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늘 백지에서 시작하는 기분이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고갈된다는 기분 때문에 더 무언가를 짜내고 긁어내면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채우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할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을 저도 고민했지만, 너무 의식적으로 채우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가사가 너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영화나 음악을 의식적으로 찾으면, 그게 레퍼런스화 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콘텐츠에 영향을 받다 보니 ‘제 것’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죠. 대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끊지 않으려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바빠도 꼭 챙겨 보려고 하죠. 그런 것들이 쌓이면 제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이슈도 늘 찾아봅니다. 심지어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결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요. 음악을 듣는 소비자 심리에 그런 요소들이 분명히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면에 관심사도 많고, 다양한 성격의 일을 소화하는 것 같아요. 피곤하지 않나요.
“저는 스스로를 참치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참치는 헤엄을 멈추면 죽는 비극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저의 기질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워커홀릭 체질이라 잘 못 쉬는 것 같아요. 주변 동료들과 농담 삼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이야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재밌으니까 계속 하고 있고요. 또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갖는 기질이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 프로듀서 역할도 하기 때문에 곡 작업을 하는 동시에 가수와 소통하고 콘셉트, 패션, 안무에도 관여해요. 여러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죠. 주변 프로듀서들의 특징을 봐도 그런 것 같고요.”
멀티플레이어의 기질은 예전부터 갖고 있었나요.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 예체능 전공이었지만 인문계 학교를 다녔어요. 입시 공부만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실기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또 대학교 전공은 클래식이었지만, 대중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처음 만난 뮤지션이 우리나라 1세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캐스커였어요. 그를 만나게 되면서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죠. 또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정재형 씨의 음악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고요. 제가 해야만 하는 영역 외에 여러 분야를 소화하는 상황에 늘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이름을 알리기 전, 데모 CD를 돌렸는데 아무 데서도 연락을 못 받았다는 일화가 있던데요.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요.
“데모 CD를 들고 회사들을 찾아다닌 기간은 2년 정도였어요. 제가 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던 회사는 모두 찾아간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낸 지 2년 만에 첫 번째 곡으로 소녀시대 멤버들이 부른 ‘오빠나빠’를 발표했지만, 그 이후 또 2년 정도는 일이 없었어요. 첫 곡이 음원사이트 2위까지 기록했던 터라 ‘이제 좀 일이 풀리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거죠. 오히려 첫 곡을 기점으로 일이 잘 풀렸다면 제 삶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아요.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내 곡을 계속 써주는 게 아니라, 음악이 정말 좋아야 선택해준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면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대중이 이 곡을 들었을 때 한 가지라도 기억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잘 전달해야겠다는 목표점이 있어야 모든 사운드와 가사가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쉬워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온앤오프의 ‘춤춰’라는 곡의 메시지는 ‘모든 생각을 떨쳐 버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춤이나 추자’는 거였어요.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곡에 비해 보컬 레벨을 작게 만들었고, 베이스를 훨씬 부각시켰죠. 기존의 팝 밸런스와는 다르게 의도한 부분도 있고요. 안무는 제가 만들지 않았지만 한 장르가 아닌 다양한 춤이 나와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었을 때 노래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춤춰’라고 외치는 것만큼은 기억했으면 했죠.”
창작자로서 본인의 장점은 뭔가요.
“모든 창작자가 비슷할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진보하려고 하는 부분이요. 저는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더라도 뭔가 달라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지난번에 썼던 소리와 가사, 코드 진행에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하죠. 특히 저는 작곡가들 중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하는 편에 속하는데요. 계속 변화하려고 하다 보니, 음악을 받아들이는 데 구분이 없어졌어요. 사실 K-팝이라는 게 모든 것을 받아들인 어떤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K-팝의 그런 지점이 저와 잘 맞지 않나 싶습니다.”
황현을 응원하는 팬덤이 형성돼 있더라고요. ‘황현 플레이리스트’가 돌아다닐 정도인데, 작곡가에게 흔치 않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사실 작곡가나 음악 프로듀서에게 팬덤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개인 앨범을 내며 활동하는 사람도 아닌데, 제가 만든 음악을 좋아해주는 마니아층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감사하죠. 어쩌면 이분들 덕분에 지치고 싶어도 지칠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루 정도는 좀 쉬어가고 싶다가도,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그분들이 저를 밀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만약 제가 곡을 많이 발표하고 그 곡이 히트를 쳐서 돈을 벌었다고 해도, 제 음악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크게 다를 것 같거든요. 굉장히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치면 안 되는 숙명이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기분 좋은 책임감이죠.”
‘책임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에게는 중요한 키워드죠. 제 삶에 책임감을 주는 요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모노트리(황현이 대표로 활동하는 K-팝 프로덕션, 2014년 설립)라는 회사를 직접 운영하다 보니, 회사 일 때문에 개인 작업을 못하는 날도 있어요. 비즈니스 업무를 하면서도 곡도 열심히 써야 하죠. 이렇게 여러 일을 하는 것도 결국은 책임감 때문입니다.”
섬세한 감정선을 다뤄야 하는 창작자의 자아와 비즈니스를 하는 경영자의 자아가 상충될 때는 없나요.
“회사 설립 초반에는 두 지점이 많이 부딪혔어요. 공동 창업자 3명과 계약 작가 3명, 이렇게 총 6명이 시작한 회사인데요. 초창기에 직원이 없어서 모든 업무를 제가 처리했어요. 당시 문서와 친한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세금계산서 처리와 같은 오피스 업무를 도맡았죠. 물론 지금은 회사가 커지면서 직원도 생겼고, 시간을 쪼개서 쓰다 보니 두 업무를 소화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딱히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거의 주 7일을 회사로 출근하거든요. 전 작곡가지만 곡 쓰는 일 외에 회사 업무도 재밌어요. 작곡가들이 모여있던 프로덕션이 가수, 피아니스트를 제작하는 제작사로 확대되는 모습도 재밌고요. 이 회사가 잘 유지되고 성장해야 저의 음악 수명도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우선 모노트리라는 회사가 K-팝을 대표하는 프로덕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K-팝신에서는 모노트리가 유명해졌지만 글로벌 팝 시장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어요. 모노트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공동 창업자들과 늘 했던 이야기가 ‘우리는 무조건 글로벌로 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게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노트리가 아무리 커지더라도 계속해서 창작을 하고 싶어요. 어떤 상황이 돼도 음악을 만드는 것은 놓지 않고 싶습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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