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새로 쓰는 은퇴자금 관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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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기고=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2023년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2023년은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58년 개띠’가 65세가 되는 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분류한다. 기초연금도 이때부터 지급된다. 이뿐만 아니다. 2023년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는 1963년생이 ‘60세 정년’을 맞는다. 정년이 지나면 월급은 사라지고 연금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은퇴자금 관리의 중심축을 적립에서 인출로 이동해야 한다.

은퇴자금 관리는 등반과 비슷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7번이나 등반한 미국의 에드 비에스터스(Ed Viesturs)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선택이다. 그러나 내려오는 것은 필수”라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성취이지만, 정상은 여정의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등반의 성공은 정상에 오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산에서 내려오는 것까지 포함한다.

은퇴자금 관리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동안 노후자금을 모으는 것은 여정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의 여정은 은퇴 생활을 하면서 모아 둔 노후자금을 인출하는 데 있다. 죽기 전에 은퇴자금이 먼저 고갈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마냥 지출을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 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생활비는 매달 인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생활 기간도 덩달아 늘어나는 상황에서 2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등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의 교육병원인 매사스추세츠종합병원(MGH) 연구팀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는 등산할 때보다 하산할 때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정상 인근 해발 8000m 이상의 ‘죽음의 지대(death zone)’에서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은퇴 자산관리도 적립에서 인출로 전환하는 시기가 중요하다. 다른 소득원이 없는 상태에서 은퇴 초기에 자산관리에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노후자금을 적립하고 인출할 때 자산관리 방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출 기간 동안 은퇴자가 부딪히게 될 리스크와 효과적인 대응 방법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 아울러 노후자금을 인출하는 다양한 방법과 각 방법의 장단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적립과 인출, 자산관리 방법의 차이점은


노후자금을 적립하는 사람과 인출하는 사람을 비교해보자. 두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다르다. 먼저 두 사람은 투자 목적부터 다르다. 적립 단계에서는 은퇴할 때까지 노후 생활에 필요한 목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반면 인출 단계에서는 매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이때 생활비는 부족해서도 안 되고 죽기 전에 먼저 고갈돼서도 안 된다.

자금 유출입에서도 차이가 난다. 적립 단계에서는 매달 자금이 유입된다. 따라서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자금으로 회복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인출 단계에서 신규 자금의 유입은 없고 유출만 있다. 투자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생활비는 인출해야 한다. 따라서 한 번 큰 손실을 보면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투자 기간도 차이가 난다. 은퇴자금을 적립하는 기간은 통상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작해 은퇴할 때 끝난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날 수는 있어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출 기간은 다르다. 시작은 알아도 끝은 알 수 없다. 건강 상태에 따라 개인차도 크고, 수명 연장으로 은퇴 기간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인출 기간에 주의해야 할 3가지 리스크적립과 인출 기간에 투자자가 직면하는 상황이 다른 만큼 자산관리 방법도 달라야 한다. 그리고 인출 기간에 은퇴자가 직면하는 리스크 또한 적립 기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은퇴자가 노후자금을 인출할 때 ① 장수 ② 인플레이션 ③ 수익률 순서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① 장수 리스크
어릴 때 <3년 고개>라는 동화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가. 할머니가 고갯길을 넘다가 넘어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할머니에게 “이 고개에서 넘어진 사람은 3년밖에 못 산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손자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며 대성통곡을 한다. 얘기를 들은 손자는 할머니에게 “3년마다 한 번씩 그 고갯길에서 넘어지면 평생 살 수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3년 고개>가 그저 동화 속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요즘 미래학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책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로 유명한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수명탈출속도(longevity escape velocity)’가 그것이다. 커즈와일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과학이 해마다 수명을 1년 이상 연장할 수 있는 시점을 ‘수명탈출속도’라고 했다. 그리고 이 상태에 이르면 인류는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게 된다고 주장했다.

커즈와일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균수명보다는 훨씬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을 하기보다는 ‘오래 살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살아야 한다.

② 인플레이션 리스크
인플레는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서 은퇴자를 위협에 빠뜨린다. 그래서 인플레를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한다. 그런데 적립 기간보다 인출 기간에 체감하는 인플레는 훨씬 위협적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대체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임금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플레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리고 소득이 늘어난 만큼 저축도 늘려 갈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을 제외하면 종신형 연금 상품 중 대다수가 물가 변동과 무관하게 연금을 지급한다. 은퇴자금을 모두 털어 종신형 연금을 구입하면 죽기 전에 노후자금이 고갈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연금의 구매력이 떨어져 소비 수준을 낮춰야 할 것이다.

③ 수익률 순서 리스크
은퇴 자산의 수명을 늘리려면 투자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인출금액보다 수익을 더 많이 내면 죽기 전에 노후자금이 먼저 고갈될 일은 없다. 문제는 수익률에는 등락이 있을 수밖에 없고, 수익률 순서에 따라 은퇴 자산의 수명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표 <수익률 순서가 미치는 영향>은 은퇴 초반에 손실을 보다가 후반에 수익률이 좋은 ‘불운한 은퇴자’와 반대로 은퇴 초반에 수익률이 좋다가 후반에 손실을 보는 ‘행운의 은퇴자’를 비교한 것이다. 은퇴 생활 기간은 25년, 은퇴 생활을 시작할 때 노후자금은 5억 원, 매년 연초에 생활비로 3600만 원을 인출한다고 가정했다. 불운한 은퇴자와 행운의 은퇴자가 은퇴 기간 동안 얻은 산술평균 수익률6.7%), 기하평균 수익률(6%), 표준편차(12.8%)는 동일하다. 다만 수익률의 순서만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은퇴 기간 동안 충분한 생활비를 인출할 수 있었을까. 은퇴 초반에 좋지 않은 수익을 얻었던 불운한 은퇴자는 은퇴 생활을 시작하고 12년 만에 은퇴자금이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은퇴 초반에 높은 수익을 얻었던 행운의 은퇴자는 25년이 지난 뒤에 오히려 잔고가 늘어났다. 주목할 점은 표준편차다. 흔히 투자자들의 변동성을 위험으로 정의하고, 이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편차를 사용한다. 불운한 은퇴자와 행운의 은퇴자의 변동성이 같은 데도 불운한 은퇴자의 노후자금이 훨씬 빨리 고갈됐다. 은퇴 자산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수익률의 변동성이 아니라 수익률 순서다. 은퇴 초반에 높은 수익을 얻어야 오래 버틸 수 있다.
내게 맞는 연금 인출 방법은그렇다면 노후자금을 인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다양한 은퇴자금 인출 방법의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종신연금형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생명보험사에서 종신형 연금보험을 가입하는 것이다. 종신형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피보험자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종신형 연금은 물가 변동과 무관하게 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인플레에 취약한 데다, 연금을 개시한 다음에는 중도해지를 할 수 없어 유동성 제약도 심하다. 그래서 노후자금을 몽땅 털어 종신형 연금을 구입하면 장수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생활비는 종신형 연금으로 확보하더라도 별도의 예비자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액형
은퇴자금을 금융 상품에 투자하면서 생활비를 인출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정액형’이다. 정액형은 말 그대로 은퇴자금에서 매달 일정한 금액을 생활비로 인출하는 방법이다. 가입자가 인출금액과 주기만 정하면, 금융사는 가입자가 정한 날짜에 연금을 지급해준다. 정액형의 장점은 이해도 쉽고 실행도 쉽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들이 정액형을 많이 선호한다. 하지만 은퇴자금이 언제 고갈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수익률 크기와 순서에 따라 은퇴 자산 소진 시점이 들쑥날쑥하게 된다. 은퇴 초기에 높은 수익을 얻으면 인출 기간이 늘어나지만, 반대로 은퇴 초반에 수익률이 나쁘면 은퇴자금이 조기에 고갈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인플레에 따라 은퇴 후반으로 갈수록 구매력이 하락할 수 있다.

물가연동형
인플레에 취약한 정액형을 일부 보완한 인출 방법이다. 물가연동형은 첫해 인출금액이 정해지면 이듬해부터는 물가 변동을 반영해 인출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에서 노령연금을 산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노령연금은 연금을 개시하는 해 연금액이 정해지면 이듬해부터는 전년도 연금액에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반영해서 조정한다. 하지만 노령연금과 다른 점도 있다. 노령연금은 수급자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물가연동형 인출 방식은 그렇지 않다. 정액형과 마찬가지로 가입자가 사망하기 전에 노후자금이 소진될 수도 있다. 정액형 인출보다는 인플레에 강하지만 은퇴자금이 조기에 소진될 가능성은 높다.

정기형
정기형은 인출 기간을 미리 정해 두고, 인출 시점마다 남은 은퇴자금을 남은 인출 기간으로 나누어서 인출하는 방법이다. 인출 기간을 20년으로 정했다면, 첫해에는 은퇴자금의 20분의 1을 인출하고 나머지 금액은 투자한다. 2년 차에는 다시 남은 은퇴 자산의 19분의 1을 꺼내 사용하고 나머지 자금은 투자한다. 이렇게 하면 미리 정한 인출 기간에 맞춰 은퇴자금을 전부 소진할 수 있다. 정기형은 은퇴자금 소진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익률에 따라 매번 수령하는 연금액이 달라지는 게 흠이다. 미리 정한 인출 기간이 종료된 다음에도 가입자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기간을 정해서 연금을 수령하는 경우에 적합하다. 예를 들면 정년퇴직 이후 노령연금을 수령할 때까지 소득 공백을 메우는 데 정기형 인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수익수취형
수익수취형은 원금은 손대지 않고 수익만 인출하는 방법이다. 투자를 해서 큰 손실을 보지 않는 한 처음 투자한 원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서 자녀에게 일정한 규모의 재산을 상속하려고 할 때 적합한 인출 방법이다. 하지만 수익이 없거나 손실을 입으면 인출할 금액이 없기 때문에, 주된 소득원이 있을 때 보조적인 인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수익수취형에서 인출금액을 안정시키려면 고배당주, 채권, 리츠와 같이 안정적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켜야 한다.

정률형
정률형은 인출률을 정하고, 인출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남은 은퇴자금에서 정해진 인출 비율만큼만 인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은퇴자금이 3억 원이고 인출률을 10%로 정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은퇴하면서 3000만 원을 인출해 생활비로 쓰고, 남은 2억7000만 원은 투자한다. 1년 동안 15%의 수익을 내면 4000만 원을 더해 은퇴자금은 3억1050만 원이 된다. 이렇게 되면 2년 차에는 3105만 원을 인출할 수 있다. 이처럼 인출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면 이듬해 인출금액이 증가한다. 하지만 수익률이 인출률보다 낮으면 인출금액도 줄어든다. 정률형 인출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노후자금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익률에 따라 인출금액의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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