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 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첨단 기술 통제와 제재에 맞서 반도체 산업을 직접 챙기겠다며 나섰다. 과연 중국의 사활을 건 총력전이 통할까.

“국산 반도체를 쓰고 있느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3월 5일 열린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장쑤성 대의원들과의 회의에서 국영 쉬저우 건설기계그룹(XCMG) 임원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쉬저우 건설기계그룹은 중국 최대 건설 장비 회사다. 쉬저우 건설기계그룹 임원이 “2017년 71%였던 크레인의 국산 부품 비율이 이제 100%가 됐다”고 밝히자, 시 주석은 “그 크레인에 사용된 반도체도 국산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 임원이 “모든 반도체가 국산”이라고 답하자, 시 주석은 크게 치하했다. 이 대화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중시하겠다는 시 주석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건설 장비에 쓰이는 반도체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에 비해 기술 수준이 낮지만 시 주석은 ‘완전 국산화’에 만족했다.

시 주석이 집권 3기에 들어가면서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과학 분야에서 ‘자력갱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 주석이 3월 10일 전인대에서 국가주석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각각 선출됐다. 전체 대의원 2952명은 반대표나 기권표 없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국가주석 3연임은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처음이며, 시 주석은 최고지도자로서 앞으로 5년간 재임을 연장하게 됐다. 이로써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된 데 이어 국가주석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면서 당·정·군을 모두 장악한 1인 독재체제를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오는 2028년까지 국가주석직을 유지하면서 종신 집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앞으로 직면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시 주석의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려면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과학 분야에서 미국을 뛰어넘어야 한다.

美, 中 첨단 기술 산업 고사 정책 강화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에 대응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각종 제재와 규제 조치를 내놓고 있다. 미국은 또 한국, 대만, 일본과 함께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 동맹’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자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최근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와 일본이 자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조치에 동참하도록 했다.

반도체를 개발해 제조하려면 무엇보다 장비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18.6%로 1위, 네덜란드의 ASML이 18.1%로 2위, 미국 램리서치가 15%로 3위, 일본 도쿄일렉트론이 13.4%로 4위, 미국 KLA가 9%로 5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특히 ASML은 최첨단 장비인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해 온 업체다. ASML은 이미 2019년부터 네덜란드 정부의 불허로 중국에 EUV 노광 장비를 수출하지 못해 왔다. EUV 노광 장비가 없다면 첨단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다. 현재는 구세대 장비인 심자외선(Deep Ultraviolet·DUV) 노광 장비만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ASML은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에 동참하면서 앞으로 DUV 노광 장비마저 중국에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DUV 노광 장비는 EUV 같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자동차, 스마트폰, PC, 로봇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미국 정부의 이런 강력한 제재 조치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에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에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시장조사 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트래티지(IBS)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5.61%에 불과했다. 목표치의 절반도 실현시키지 못한 셈이다.

특히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제재 조치로 폐업하고 있다. 중국 언론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웨이퍼 업체 5746개가 등록을 취소했거나 말소됐다. 이는 2021년에 폐쇄된 3420개보다 1년 만에 68%나 늘어난 수치다. 중국 반도체 전문 인터넷 매체 신위는 “글로벌 업황 부진의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중국 웨이퍼 업체들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중신궈지)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분기보다 15% 감소했다고 밝혔다. SMIC는 또 올해 1분기 매출도 지난해 4분기에 비해 10∼1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도 미국 상무부의 수출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10% 인력 감축과 생산 설비 주문 감축, 우한 신공장 신설을 보류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YMTC 등 중국의 36개 기업들을 수출 통제 명단(entity list)에 올린 바 있다.

게다가 중국의 올해 1~2월 반도체 수입량이 미국의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당히 줄어들었다.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1~2월 중국 반도체 수입량이 676억 개로 전년 동기 대비 26.5% 감소한 수준이다. 또 1~2월 반도체 수출량도 전년 동기 대비 20.9% 줄어든 373억 개에 그쳤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은 인공지능(AI)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A100과 같은 첨단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로 반도체 수입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며 “1∼2월 반도체 수출입 통계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통제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올해의 반도체 수입 규모는 지난해보다 더 추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올해 수입하는 반도체들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 반도체가 아니라 몇 년 전의 구형 반도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에서 급격히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中, 반도체 등 직접 관할…대규모 자금 투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 주석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 조치에 맞서 ‘죽음’까지 언급하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은 3월 6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대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국 손에 죽지 않으려면 기술 자립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우리를 모든 부문에서 억제하고 압박해 우리의 발전이 전에 없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이런 강경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시 주석은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20차 당 대회에서도 “교육, 과학기술, 인재는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기초적 전략적 토대”라며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임을 견지하고 높은 수준의 자립·자강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2023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 과학기술을 재정·통화·산업·사회 정책과 함께 5대 정책으로 선정했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과학 분야를 직접 관할하기로 했다. 샤오제 중국 국무원 비서장(국무위원)은 3월 7일 전인대 회의에서 “당과 국가기구를 개혁해 과학기술 사업에 대한 당 중앙의 ‘집중통일영도’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과학기술위원회(중앙과기위)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중통일영도는 시 주석 집권 이전의 권력분점형 집단지도체제와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 주석으로 결정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당 중앙과기위를 신설하는 것은 시 주석이 과학기술 분야를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시 주석으로선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통제 등 각종 제재와 규제에 맞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력갱생하려면 당이 직접 관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샤오 비서장은 “과학기술 혁신은 우리나라 현대화 건설 전체 국면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다”면서 “국제 과학기술 경쟁과 외부 억제·탄압의 엄중한 정세에 직면해 반드시 과학기술 영도와 관리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하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 조직인 과학기술부는 당 중앙 과기위를 보조만 하고, 앞으로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와 관리 업무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GT)는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핵심 기술·부품 공급을 통제해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있다”며 “이러한 봉쇄와 적대 정책, 외부 도전에 잘 대처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역량을 구축하고 의사결정 체제를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당 중앙 과기위 신설은 이른바 ‘당강정약(黨强政弱: 당의 지휘 권한은 강해지고 정부는 약화됨)’ 노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또 시 주석의 자력갱생 방침에 따라 대규모 자금을 반도체 업체에 투입할 계획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 투자기금(반도체 대기금)’은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YMTC에 129억 위안(2조45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 대기금은 중국 정부가 2014년 출범시킨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다. 2014년 1기 1387억 위안, 2019년 2기 2040억 위안 규모로 조성됐다.

반도체 대기금은 그동안 YMTC 이외에도 SMIC 등 100여 개 반도체 기업에 대대적인 투자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 펀드의 고위 관리들이 비위 혐의로 체포, 조사를 받은 데다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 등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투자가 주춤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반도체 업체에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 산업 육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YMTC에 대한 투자는 미국의 제재와 글로벌 수요 감소로 어려움에 빠진 자국 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반도체와 핵심 첨단 기술 개발에 지난해보다 44억 위안 증가한 133억 위안(2조5000억 원)을 투입한다. 지방정부 차원의 기술 혁신 및 과학기술 발전 지원을 위해서도 지난해보다 20억 위안 늘어난 65억 위안(1조2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과학기술 분야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투입되는 예산은 총 198억 위안(3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7.8%나 늘었다.

중국 정부는 또 예산 지원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고급 장비, 신소재 등 전략적 첨단 산업의 혁신과 고도화를 위해 기술 장비에 대한 세제 혜택과 정부 조달, 보험 가입 지원 등도 도입한다. 중국 국무원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AI, 5세대(5G) 이동통신, 빅데이터를 포함한 첨단 기술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해야 한다”며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전기자동차와 태양광 패널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선두적인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아무튼 시 주석이 직접 과학기술 분야를 챙기기로 한 만큼 중국은 앞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사활을 걸 것이 분명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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