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요즘 뜨는 빵집, '공간력'에 답 있다

그야말로 ‘빵의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주말이면 유명 빵집을 향한 오픈런은 기본이고, 수십 미터 웨이팅 줄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들을 이토록 애타게 만드는 빵집들의 ‘찐’ 매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3시간 30분 걸려서 샀어요. 주말마다 평소에 와보고 싶었던 예쁜 카페나 빵집 투어를 하면 힐링되거든요.”
- 런던베이글뮤지엄 앞에서 만난 20대 여성

“여자 친구가 여기 화덕베이글이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오픈 40분 전에 와서 1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샀어요. 인스타그램에 빵 사진 올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 코끼리베이글 앞에서 만난 20대 남성

“날이 좋아서 지인들이랑 놀러 나온 김에 와봤어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오는지 궁금해서요.”
- 어니언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

[3월 18일 오전 8시 50분 경 영등포 코끼리베이글 본점 앞 풍경. 사진 김수정 기자]

1999년 국내 스타벅스가 상륙한 이후, 이름도 생소했던 아메리카노는 20여 년 새 국민음료가 됐고, 카페는 일상의 풍경이 됐다. 이제는 그 풍경이 베이커리로도 확대되고 있다. ‘노티드’, ‘런던베이글뮤지엄’, ‘아나키아’, ‘어니언’ 등 요즘 젊은 층이 열광하는 ‘핫 플레이스(이하 핫플)’마다 베이커리는 빼놓을 수 없는 상수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유명 베이커리 카페나 가게마다 주중·주말 가릴 것 없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주말에는 오픈런은 필수고, 더러는 3시간을 훌쩍 넘게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곳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모든 곳이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닐 터. 전국에 10만 개에 달하는 카페가 모두 성공하지 못하듯, 베이커리 핫플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소위 요즘 잘나가는 베이커리 가게들의 특징은 탁월한 맛은 기본이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만한 제품과 매장의 특색 있는 ‘비주얼’과 ‘경험’에 공을 들인다. 이른바 ‘공간력’의 투자다. 공간력은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공간의 힘을 뜻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새해를 움직이는 10가지 트렌드 중 하나로 공간력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많이 찾고 오래 머물러 있는 공간에서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작은 개인 블로그부터 거대한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가상공간이 세상을 호령하는 시대지만, 가상의 영토가 넓어질수록 실제 공간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얻을 수 있는 위로와 유희, 영감 등은 오프라인 공간만의 강점이자, 존재의 이유다. 넷플릭스, 왓차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과 홈시어터 수요가 급격히 늘어도, 사람들이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집단 경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티드 부산 해운대 매장 내부 매장 모습. 사진 GFFG 제공]

[의정부에 위치한 대형 베이커리카페 겸 레스토랑 아나키아. 사진 아나키아 제공]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 레이어드 안국점. 사진 김수정 기자]
베이커리 시장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국내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입맛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맛’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베이커리 사업도 단지 맛으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독자적인 ‘브랜딩’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비즈니스 성공의 관건”이라며 “그 점에서 베이커리 비즈니스의 공간 투자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 ‘아나키아’의 김현수 대표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외국 유명 관광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사람 간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할 수 있는 공원이나 쉼터 공간이 부족한 것 같다”며 “그 부족한 공간의 대체재로 카페에 이어 베이커리 공간들도 주목받는 것 같다. 아나키아 역시 각 층마다 콘셉트와 분위기를 다르게 해 다양한 소비자들의 공간 니즈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베이커리, 색다른 공간과 경험을 맛보다
베이커리 비즈니스와 관련해 공간의 경쟁력은 마케팅으로도 직결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증샷 마케팅이다. 힙한 장소를 보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소비자들 덕분에 자연스레 브랜드 광고 효과와 이미지 제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서 ‘브랜드 경험’과 ‘인증샷’을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거대한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둘째 주 안국역 3번 출구에 밀집된 유명 베이커리 상점들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빵을 사서 인증샷을 찍는 이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후 2시 50분경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 매장 앞에서 갓 구매한 빵을 들고 사진을 찍던 한 20대 여성은 “오전 11시에 와서 대기명단을 걸어두고, 3시간 30분 만에 매장에 들어가 빵을 구매했다”며 “아직 맛은 안 봤는데 일단 인증샷부터 찍었다. 이렇게 평소에 와보고 싶었던 예쁜 카페나 빵집 투어를 SNS에 공유하는 게 일종의 놀이이자 힐링”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에 빵을 구매한 40대 여성도 “이런 이색적인 공간에서 친구랑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다 보면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라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 호기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그 경험을 하고 싶어서 오는 이유도 크다”고 말했다.

빵을 사지 않더라도 유명 베이커리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구경만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어니언 안국’에서 만난 50대 중년 여성은 함께 온 지인들과 가게 내부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이곳이 워낙 유명하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안국동 놀러온 김에 들러봤다”며 “젊은 사람들은 꽤 좋아한다고 하는데 우리 취향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요즘 워낙 국내 여행지마다 유명 카페나 베이커리 가게들이 많아서 여행을 가면 겸사겸사 구경은 가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일시적’이고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수많은 신생 카페와 베이커리 업체 중 상당수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마케팅으로 반짝 인기를 얻다 시들어 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스타그래머블이란 인스타그램과 할 수 있는(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사진이라는 뜻이다. 시각 정보에 민감한 MZ(밀레니얼+Z) 세대의 ‘인증샷 문화’와 맞물려 형성된 거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유명 베이커리 핫플에 들른 A씨는 “각종 SNS에서 인기가 많아 찾아갔는데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맛은 있었지만 기다린 시간을 감내할 만큼은 아니었다”며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빵맛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과도한 ‘인스타 효과’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노티드를 탄생시킨 이준범 GFFG 대표는 “외식업은 꾸준한 시스템 개발 없이 무분별하게 확장시켜 나가기 어려운 업”이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탄생한 베이커리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새로운 메뉴에 대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뜨는 베이커리, 힙한 공간 맛보기
화제의 베이커리 핫 플레이스 3

베이커리 블레어 잠실

노티드를 만든 GFFG의 올해 야심작이자 ‘공간’과 ‘스토리’가 묻어나는 신상 베이커리다. 지난 1월 오픈한 ‘베이커리 블레어’ 1호점은 프랑스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두 아이의 엄마 블레어가 주변 이웃들의 요청으로 카페를 차렸다는 독특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콘셉트에 걸맞게 실제 파리의 카페에 있을 법한 인테리어와 조명을 설치해 따뜻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에 다양한 컬러의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까지 만들어 마치 가정집에 방문한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든다. 바게트와 무화과 캄파뉴, 미니 식빵, 치즈 프레첼 등이 이곳의 대표 메뉴다. 문득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한번쯤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459 1·2층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

이곳은 서울인가, 영국인가? 이른바 국내 ‘베이글 성지’의 대장주로 자리 잡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주중이고 주말이고 오픈 전부터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이곳은 매장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가 유럽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것은 물론, 영어로 쓰인 메뉴와 각종 소품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흡사 런던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인데, 베이글 맛만큼이나 ‘사진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프레첼 버터 솔트부터 치아시드, 무화과, 시금치, 바질페스토, 시나몬월넛, 블루베리 등 다양한 맛의 베이글이 즐비한 데다 베이글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매장에 구비된 각종 크림치즈를 더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4길 20

의정부 아나키아

의정부에 위치한 대형 베이커리카페 겸 레스토랑인 ‘아나키아’는 대지면적 1759㎡, 건축면적 862,5㎡, 지하4층, 지상5층 규모로 지상 1~3층까지 카페 및 베이커리를 운영 중이다. 아나키아는 이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 각 층마다 콘셉트와 분위기를 다르게 구상했다. 가령, 1층은 깔끔한 화이트 톤과 식물을 직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2층은 오감이 만족되는 편안하고 쉼이 있는 가족의 공간으로, 3층은 자연 속에서 프라이빗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경기도 의정부시 잔돌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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