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주식 시장에서 고용지표 발표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변수가 있었다. 이는 미국에서 16번째 규모인 SVB 파산 이슈다. 은행 이자 총자산 2000억 달러 규모의 금융기관 파산은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뱅크런 위기를 떠올렸다. 파산 과정은 예상보다 빨랐다.
SVB가 대규모 증권 투자 손실과 자본 조달 계획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미국 정책당국은 SVB 주가 급락으로 자본 조달 계획이 무산되는 듯하자 급하게 폐쇄 절차를 꺼냈다. 나스닥 은행주 지수는 이틀 만에 11.3% 하락해 위기 전이 가능성을 반영했다. 뱅크런은 과거에 갇힌 흘러간 유물이 아니었다.
SVB 사태, 어떻게 발생했나
최근 SVB 사태를 통해 주식 시장 투자자들이 갖는 관심은 2가지로 요약된다. 미국 자산 16위 은행의 도산 원인과 신용위험 전이 가능성이다. 도산 배경은 여러 이유들이 제기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가파른 금리 인상 결과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첫째,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약화다. SVB는 실리콘밸리 내 벤처 및 스타트업과 주로 거래한 은행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SVB 예금 규모가 늘었다. 예금은 2017년 말 440억 달러에서 2021년 말 1890억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긴축이었다. Fed가 2022년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나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2022년 SVB 예금 잔고는 1730억 달러로 감소했다.
둘째, 증권 투자 손실이다. 예금은 증가한 반면 기업 대출은 증가하지 않았다. SVB는 남는 자금을 증권(주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했고, 전례 없이 빠른 금리 인상은 장기채 투자에 손실을 입혔다. SVB가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실현한 증권 투자 손실은 18억 달러 규모다. 자기자본 규모와 맞먹는 손실은 전례 없이 빠른 파산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가상화폐 관련 기업들을 주로 담당하던 ‘실버게이트(Silvergate)’ 은행 파산도 심리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관건은 신용 위기 확산 여부다. 주식 시장은 회사채 스프레드 상승 결과로 하락했으나 아직 유동성 위기까지는 아닌 덕에 급락을 피하는 모습이다. 또 뱅크런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여부도 주목해야 한다.
금융위기로 번질 사안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일견 합리성을 갖고 있다. 파산한 은행 규모가 과거 금융위기 당시만큼 크지 않다. 위기를 촉발했던 당시 리먼브러더스 총자산은 6400억 달러로 SVB를 3배 이상 초과했다. 금융위기 이후 15년간 강화한 위험자산 및 파생상품 투자 규제, 자본건전성 확립도 달라진 모습이다.
문제는 안전자산으로 분류했던 만기 보유 증권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4분기 미국 은행 미확정 평가 손실이 62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마저도 지난해 4분기 시장금리 하락 덕에 손실 규모를 줄인 결과다. SVB처럼 예금 인출 사태가 본격화할 경우 은행들은 대규모 손실을 확정해 재무 상태 악영향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관건은 은행들로부터 뱅크런이 번질지 여부에 달렸다. 미국 주식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SVB가 업계 16위에 해당하는 규모 있는 은행이긴 하지만, 익스포저는 미국에 집중돼 이들의 파산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미국 증시에 집중될 수 있어서다.
美 정부 신속 대응, 금융 불안 확대 여부 주목
정부가 예금자 보호 확대를 통해 예금 전액 보장을 발표하며 뱅크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재빠른 대응에 나선 데다 대형 은행들도 퍼스트 리퍼블릭 구제에 나서며 긴박한 상황은 종료됐다.
Fed는 보유 증권 담보를 통한 대출 프로그램으로 우려 확산을 차단했다. 1차적 금융 불안은 억제됐으나 미국 지방은행 파산이 우려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금리 인상 충격에 예금 인출 압박이 확대되며 장기 채권 매도에 따른 손실을 시작으로, 자산 부실보다 시장금리 급등에 따른 평가손익 확대에 따른 것이다.
특히 크레디트스위스에서도 회계 결함이 발견돼 신뢰성에 타격을 입었고, 크레디트스위스의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했고, 주가는 급락했다. 다만 스위스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청의 유동성 공급 발표와 주간 신규 실업수당 하향 안정 속 2월 핵심 소매판매 감소 제한으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3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25bp(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기존에 예측한대로 점도표상 최종 금리 5.5% 내외 수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FOMC의 결정으로 일부 우려가 잔존한 은행들의 노이즈와 변동성은 이어지겠지만, 펀더멘털이 견고한 대형주와 퀄리티 주식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가치주, 성장주 모두 중소형주의 부진이 뚜렷해질 공산이 크다. 러셀(Russell) 2000 가치주 지수의 경우 금융주의 비중이 35%를 상회하고, 부실 우려의 중심에 서 있는 지역은행들이 다수 포함돼 직접적인 주가 타격이 예상된다.
중소형 성장주의 경우 이미 일부 기업들이 현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벤처투자(VC)와 사모펀드(PE) 등의 유동성도 경색 우려가 높아져 향후 자금조달도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즉, 중소형주가 직면한 문제는 센티먼트와 펀더멘털의 동반 악화 문제가 제기된다. 대형주는 SVB 파산 전염 우려 속 센티먼트의 악화는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중소형주와 신용 위험 관점에서의 펀더멘털은 극명하게 차별화된다.
소매 기반의 대형 은행들은 저렴한 예금금리로 충분한 자본을 확보했고 순이자마진도 플러스(+)인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은행과 펀더멘털이 차별화된다. 비금융 기업들도 역사상 최대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중소형주 대비 대형주의 아웃퍼폼이 뚜렷하게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SVB 파산, 국내 주식 시장 영향은
SVB 파산에 따른 한국 주식 시장 영향은 크게 3가지 경로에서 작용할 수 있다. 첫째, 미국 은행주 주가 하락에 따른 한국 금융주 영향이다. 미국 금융섹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대비 32.2%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로 하락한 상태다. 금융주는 글로벌 동행성이 높은 섹터다. 다른 산업 대비 매크로 요인이 강하고 시스템 리스크에 의해 주가가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리와 성장률 등 거시지표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세계 경제가 동조화하는 만큼 금융주 주가도 국가 간 동행하는 특성을 보였다. 미국과 한국 금융주 주가가 과거 일정 부분 동행성을 보인 이유다.
둘째, 미국 기술주 펀더멘털 약화에 따른 영향이다. SVB 사업모델이 캘리포니아주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중심인 관계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이 주로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기술주 펀더멘털 약화에 따른 한국 주식 시장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기업과 민감도가 높은 미국 빅테크는 SVB 파산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IPO 단계에 있는 미국 기업들이 SVB 영향권에 있다. 주로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미국 IPO 시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겠으나 한국 주식 시장에 민감하게 영향을 줄 지점은 아닐 듯하다.
셋째, 환율과 밸류에이션을 경유해 한국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해당 지점은 향후 사태 경로에 따라 동태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아직까지 영향력은 미국 내부에 집중되는 관계로 달러 강세를 강하게 자극할 요인은 아닐 듯하다.
경로가 미국 은행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 세계 전반에 영향력을 줄 수 있어 달러 강세를 자극할 수 있겠으나 Fed와 재무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놓을 가능성은 낮다.
미국 S&P500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하락에 따른 한국 주식 시장 영향은 불가피한 듯하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12.5배로 미국 대비 71%로 높다.
높아진 상대 배당 성향을 고려하면 민감도는 비교적 낮다. S&P500 대비 코스피 상대 배당 성향은 93.3%로 2006년 대비 최고치다. 배당 성향이 높아진 측면도 있겠으나 이익 추정치 하향이 종반부에 위치한 이유도 크다. S&P500 PER 하락은 한국에 부정적일 수 있으나 과거보다 민감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글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