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타깃 된 외로운 노인, 대처 방안은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가족이 없는 외로운 노인을 먹잇감으로 삼아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는 ‘실버 칼라 크라임’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게 자행되는 이 범죄를 막을 해결 방안은 없을까.

은퇴자들의 모든 삶을 완벽하게 관리해주는 회사.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A가 표방하는 비즈니스의 목표다. 치매와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령의 고액자산가들에게 최고 시설의 요양원 생활을 제공하고 그들의 재산은 A가 운영하는 후견 법인에서 관리해줌으로써, 건강이나 재산에 대해 아무런 걱정이나 신경 쓸 일 없이 완벽하고 평온한 노후 생활을 즐기게 해준다고 한다. 노인들의 수호자와 같은 A에게 주위의 격려와 칭송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A는 표적으로 삼을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부유층 노인을 찾아낸 뒤, 동업 관계에 있는 정신과 의사와 짜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는다. 그녀는 그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해 자신이 후견인으로 선임된 후, 뒷거래를 하고 있는 요양원에 노인을 입원시킨다.

A는 후견인으로서 노인의 재산과 신상(거주지·치료·복지 서비스·면접과 통신 등)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노인에게 접근하게 하지 못하게 막은 상태에서 노인의 모든 재산을 자신의 것처럼 쓰고 즐긴다. 이와 같은 A의 행태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여러 동업자와 조력자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지만, 겉으로만 보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A의 완벽한 케어(care)를 받을 ‘고객’들은 계속 늘어만 가고, A는 명예와 부를 함께 누리게 된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가족이 없는 부유층 노인에게 접근해서 합법을 가장해 그가 가진 재산과 인간관계 모두를 약탈하고 착취하는 이른바 ‘실버 칼라 클라임(silver collar crime)’이 급증하고 있다. 보통 후견인이나 요양보호사와 같이 노인의 신변 보호나 간호, 재산 관리와 처분에 대해서 합법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약탈자가 되고, 많은 경우 범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약한 노인들, 즉 가까운 가족이 없거나 여러 이유로 주위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재산과 신변에 대한 중대한 변화가 생겨도 금방 알아챌 사람이 없다.

전형적인 선진국형 신종 범죄로서 미국의 은퇴자 거주지로 유명한 플로리다주와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 부서가 생겼다고 한다. 2020년에는 비슷한 내용의 범죄를 다룬 <퍼펙트 케어(I care a lot)>라는 영화가 제작됐을 정도인데, A는 그 영화 속 주인공이다.
우리보다 성년후견제도를 일찍 도입한 일본에서도 성년후견인이 자신의 보호를 받는 정신적 장애인의 재산을 횡령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법무사나 변호사와 같이 친족이 아닌 전문가가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정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선임된 이들에 의해서 오히려 재산 약탈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10년 가까이 되다 보니 후견인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과 달리 제삼자가 아니라 친족이 후견인이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이한 점은, 형법상 피해자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해 횡령이나 배임, 절도와 같은 재산 범죄가 저질러지더라도 보통은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명목으로 처벌되지 않지만, 그 친족이 후견인이라면 위와 같은 형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가정부가 어느 날 인지능력 장애를 가진 노인의 양자가 되거나 배우자로 변신함으로써 문제가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인지능력 장애인을 돌보던 사람들이 그들의 인지능력 부족이나 상실 상태를 이용해 상속권이 보장되는 양자나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인지장애인을 외딴 요양원에 방치하고, 무슨 이유인지 그 인지장애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나중에 인지장애인의 친척이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재산이 모두 그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에게 상속된 것을 알게 돼 뒤늦게 입양 무효나 혼인 무효, 증여 무효 소송 같은 것을 제기해보지만, 그 상황을 뒤집기는 상당히 힘들다.

왜곡해서 학습된 인지장애인의 진술을 담은 문서나 교묘하게 편집된 비디오 영상이 남아 있을 뿐, 그 진위를 확인해줄 인지장애인은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약탈자들이 노리는 것은 비단 노인뿐만이 아니다. 발달장애나 양극성 정동장애와 같은 의사결정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역시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몇 해 전 언론에 알려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B의 사연이 대표적이다.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되는 등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누렸다.

그런데 B는 양극성 정동장애로 인해 인지 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도와줄 가까운 가족도 곁에 없었다. 더욱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B의 일생생활과 재산을 모두 관리하면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매니저가 B에게 한 만행 때문이었다. 공연료를 빼돌리고 부모님이 남겨준 거액의 재산을 횡령하는 등 경제적 착취를 한 것은 물론 B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감금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외로운 인지장애인과 이를 노리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인지장애인에 대한 범죄가 합법을 가장하거나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에서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범행은 점점 치밀하고 교활해지고 있어서, 혹시라도 발각이 되더라도 모두 인지장애인이 원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처럼 ‘실버 칼라 크라임’은, 후견제도나 사회복지제도와 같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마련된 사회적 안전망이 오히려 포식자들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대부분의 부(富)가 고령층에 집중돼 있다면 문제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버 칼라 범죄나 인지장애인을 이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분석 그리고 그에 대한 홍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후견인에 대한 감독 강화 등 성년후견제도의 체계적 정비와 보다 촘촘하고 두터운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족들 간 유대관계를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지장애인이 제대로 그리고 제때 도움을 받고 있는지,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눈을 가지지 않는 한, 인지장애인을 노리는 포식자는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글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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