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 리포트] 리오프닝 중국, 투자 매력 커졌다




한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저평가 국면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밸류에이션 트랩에 빠졌다고 한다. 반대로 강력한 성장 모델을 갖춘 기업의 주가가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으로 급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가는 밸류에이션에 따라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지만, 결국은 밸류에이션과 이익 성장률의 줄다리기를 통해 내재 가치에 수렴해 간다. 즉, 주가는 밸류에이션과 기업 이익의 함수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가장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으면서 이익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은 주식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中 정부, 빅테크에 우호적 변화 감지…증시 투자 매력 커져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연간 전망을 내놓으면서 리오프닝(재개방)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중국 증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중국 증시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성을 잃은 채 투자자들의 의지를 다시 한번 꺾고 있다. 국내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가연계신탁(ELT) 투자자들에게는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의 변동성이 시한폭탄과 유사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을 모아 둔 HSCEI 지수의 경우,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매도세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수익률 역시 중국 리오프닝 기대를 고스란히 반납했고, 현재의 기대수익률은 2021년 이래 가장 높아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중국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판단한다.

특히 HSCEI 지수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환경 변화가 중국 증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고집하는 첫 번째 이유다.

2021년 중국 증시 조정의 시작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였다.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의 경우 지난해 4분기에는 2021년 고점 대비 각각 76.9%, 72.8% 하락한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빅테크 기업의 시가총액이 크고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이들의 부진은 중국 증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지난해 4분기부터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입장이 점점 더 우호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양회에 앞서 중국 중앙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중국 건설의 전면적 배치 계획’은 디지털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올해 국무원 기구 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중국 디지털국’이 신설되고, 공산당 지도부의 핵심성과지표(KPI)에 ‘디지털 중국 건설’이 포함됐다.

지난 4월 28일에 열렸던 중국 정치국 회의에서도 이러한 정책 기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회의 결과가 적극적인 부양책보다는 산업 정책에 가까웠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데이터 집약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양성에 대한 지도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 기업과 공생하기 위한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다는 점도 지난해와는 달라진 정책 기조를 보여준다. 중국 지도부의 디지털 경제에 대한 비전은 빅테크 기업들 없이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들이 중국 소비와 직접적인 연관이 높다는 점에서도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여건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거리 중 하나인 청년 실업을 낮추기 위해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지난 2년간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20% 가까이 상승했다. 이에 지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 전 총리는 도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전히 중국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은 빅테크 기업들이다. 그러나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지난 2년 동안 지출을 줄이고 수익성 개선에 무게를 뒀다. 이제 빅테크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는 것은 단순히 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 개선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中 국유기업, 가치 재평가 필요…정부 재정에 도움

다음으로 중국 국유기업들의 리레이팅(re-rating)이 HSCEI 지수의 반등을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 홍콩에 상장된 중국 국유기업들은 HSCEI 지수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며 은행, 에너지, 통신 등 공공성이 높은 산업에 집중돼 있고, 중국 본토 A주에도 상장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동일한 기업이 서로 다른 시장에 상장돼 거래되다 보니 가격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외국인투자자의 거래 비중이 높은 홍콩에 상장된 기업들은 지정학적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HSCEI 지수에서 8%를 차지하는 중국 건설은행의 경우 홍콩에서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44배에 거래되지만 A주(본토)에서는 0.63배에 거래된다(2022년 확정 PBR 기준). 지난 2년간 외국인 매도세에 홍콩 국유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상대적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였으며, 현재 A주와 H주의 괴리율을 나타내는 A-H 프리미엄은 코로나19 이전 수준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해 거래되고 있다.

물론 가격이 싸다는 것만으로 투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 국유기업의 경우 기업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절실하다. 상하이증권거래소에 따르면 과거 5년 동안 국유기업들의 순이익은 70% 증가했지만, 시가총액은 단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올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제시한 국유기업 심사 기준은 2022년 대비 레버리지 비율이 완화된 반면 질적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심사 기준에 자기자본순이익률(ROE), 영업현금비율이 신설됐고, 순이익 및 총이익 증가율 기준이 완화됐다. 이는 외국인투자자의 눈높이로 기업의 질적 수준을 높이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국유기업의 가치 재평가는 중국 정부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중국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동산 관련 부문이다.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연속적인 부도는 중국 세수 부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약속한 바 있다. 중국 국유기업의 질적 개선은 주주 가치 제고로 이어져 국유기업의 최대주주인 중국 정부의 재정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중국의 정치 시스템과 기업지배주조를 감안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주식에 접근하듯이 중국 주식에 투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펀더멘털 관점에서 중국 증시가 지금의 기업 및 국가 경제의 체력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시장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시장의 신뢰를 되돌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는 외국인투자자들을 종종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주가는 이익과 밸류에이션의 함수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증시는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중국을 멀리한다면 투자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포트폴리오 안에 점진적으로 중국 비중을 늘려 간다면, 미국의 경기 둔화를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투자처가 될 것이다.


글 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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