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인디아
1972년 2월 미국 닉슨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진행한 정상회담은 중국의 개방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모습이었다. 이후 세계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급격히 증가했고, 미국과 일본은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지금은 다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인도가 있다.
공급망 재편의 미래
글로벌 공급망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입지가 흔들린다. 많은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축소하고 있는 것. 2019년 구글은 서버 하드웨어 등 일부 생산 기지를 말레이시아로, 파나소닉은 자동차 스테레오 등 차량용 기기의 생산 기지를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으로 이전했다. 애플의 협력 업체들은 생산 기지를 베트남 등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실제 세계 주요국의 글로벌 공급망GVC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중이다. 미중 패권 전쟁과 공급망 차질의 영향도 상당하지만, 중국보다 더 저렴한 인건비를 찾으려는 기업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생산 기지로 인도가 부상하고 있다. 2020년대 초반까지는 중국에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으로 이전하다가 20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인도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유럽 동맹국과 중국‧러시아 동맹국의 갈등으로 중국의 역할은 축소되고, 인도는 반사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한다.
인도의 가능성
인도가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가늠할 수 있다.
첫째, 인도의 성장 속도는 가장 큰 잠재력으로, 1991년 경제개혁 이후 고속 성장을 지속해왔다. 2000년에 접어들어 세계 GDP 규모 13위 국가가 되었고, 2006년 11위, 2011년 10위, 2016년 7위, 2021년 6위로 도약했다.
IMF는 2023년 명목 GDP 기준 인도가 세계 5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의 2022~2027년 연평균 성장률은 6.8%로, 중국의 4.9%를 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는 도로, 에너지, 물류 등 인프라 면에서 중국이나 베트남과 비교하면 현저히 낙후한 경영 환경이지만, 빠른 개발 과정을 거치며 상당한 도약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인도의 가능성은 인구에서 찾을 수 있다. UN은 2023년 인도가 중국을 추월해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측한다. 중국이 20세기 후반 고도의 성장을 이룬 배경 중 하나가 인구였듯, 향후 인도가 고도의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시장으로서 가치, 즉 구매력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생산 기지로서 가치, 즉 노동력을 의미한다. 특히 중산층이 확대되고 교육 수준이 향상되면서 생산성도 증대할 것으로 보여 글로벌 공급망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셋째, 인도의 제조업 육성 전략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도는 서비스업에 치우쳐 있었고, 제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2014년 5월 모디 정부가 출범하고 ‘Make in India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발표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법인세 인하와 노동법 정비 등과 같은 경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도 있지만,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는 전략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인도가 제조 기지로서 부족한 평가를 받은 절대적 이유가 낙후한 인프라였기 때문이다. 인도의 주요 도시를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로 연결하고, 현대적인 항만 및 공항 시설 같은 물류 인프라를 개선함으로써 미래의 생산 기지로서 가능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국가 인프라 파이프라인NIP을 발표하고, 세계 주요국들로부터 FDI해외직접투자, Foreign Direct Investment를 유치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하는 기업
애플은 인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인도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 체제를 재편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의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인도를 위한 온라인 매장을 개설하거나 오프라인 매장도 개장할 계획이다. 애플은 협력 업체 폭스콘과 함께 인도 내 아이폰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으며, 핵심 부품 공급 업체들도 인도로 옮겨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생산 라인을 인도로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도 수도 뉴델리 인근의 노이다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공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 톈진과 후이저우에 있던 스마트폰 공장은 이미 철수했다.
인도는 노동력뿐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갤럭시 S23의 인도 공급 물량을 노이다 공장에서 100% 생산할 계획이고, 세계 스마트폰 2위 시장 규모로 인도가 부상했다. 이 밖에도 가전 및 TV 생산량을 늘리고, 생산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LG전자, 포스코, 현대차그룹 등도 인도를 중요한 생산 기지로 결정하고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인도 법인 진출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온라인 리테일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2022년 그랜드 오픈한 이후 고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비스 개시 8개월 만에 10만여 개의 고객 계좌를 돌파하며 온라인 브로커리지 증권사로 성장 중이며, 이를 토대로 인도 법인 현지 신성장 기업 투자 및 IB 비즈니스 영역도 확대하고 있다.
공급망 재점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영토는 제한적이지만, 자원의 영토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 공급망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까닭에 작은 공격에도 큰 충격을 받은 사례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대표적이다.
주요 자원과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 강화를 국가적 의제로 정하고, 나아갈 방안들을 세부화해야 할 때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공급망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면 내가 변해야 한다. 탈세계화, 신냉전 시대, 보호무역주의, 미중 패권 전쟁 등과 같이 세계경제를 수놓는 움직임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귀결된다. 단기적으로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중장기적으로는 인도가 재편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생산 기지 구축 및 신시장 개척 전략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흥 시장 내 주요 기업들과 기술 교류를 확대하거나, 해외직접투자FDI에 대한 검토도 진행해야 한다.
중국으로부터 제삼국으로의 공급망 재편이 중국을 떠나자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한국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수출 및 수입 파트너 나라다. 공급망 재편이라는 것은 한두 달 걸리는 것이 아니고, 한두 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부터 선 긋고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지속하되, 제삼국에 대한 교류를 강화하는 전략이어야 할 것이다.
글. 김광석(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