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잭슨홀 미팅. 매년 8월 미국의 작은 휴양지로 알려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통화정책 포럼이지만 올해 만큼은 그 어느 해보다 관심이 높다. 엔데믹 시대를 맞아 각종 기준금리 체계에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잭슨홀 미팅 결과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변화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국제 조달 시장에서 기준금리로 활용돼 왔던 런던 시중은행 간 금리, 즉 리보금리(London inter bank overnight rater·Libor)가 올해 6월 말부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금융위기 이후 각종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기준금리의 생명인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사국인 영국이 리보금리 퇴출을 결정한 이후 주요 20개국(G20), 미국 중앙은행(Fed), 영란은행을 중심으로 리보금리를 대체할 새로운 기준금리를 연구해 왔다. Fed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 담보부 조달금리(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SOFR)다. 산출 방식은 시장참여자의 실제 거래금액을 감안한 중간 금리라는 점은 리보금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무담보인 리보금리와 달리 SOFR은 담보부 금리인 데다 익일물 확정금리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하루 평균 거래금액도 최소 8000억 달러가 넘어 5억 달러에 불과한 리보금리와 커다란 차이가 난다. 리보금리가 문제가 됐던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기준금리의 생명인 신뢰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SOFR이 기준금리로 사용할 경우 국제 금융 시장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달기준금리를 어느 국가의 것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제 금융 중심지가 이동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리보금리를 기준금리로 삼아 왔다. 국제 금융 중심지가 ‘런던’이라는 의미다.
그 이후 리보금리가 조작 사태에 수시로 휘말림에 따라 3개월 미국 재무성 증권금리로 대체되면서 ‘뉴욕’이 부상해 왔다. 올해 하반기 이후 리보금리가 SOFR로 완전히 대체될 경우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 뉴욕의 위상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달러 임페리얼 서클이 더 강해지고 월가의 영향력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리보금리와 함께 또 하나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 Rate·FFR)도 익일 환매금리(overnight repurchase agreement·ON RRP)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부터 보조지표로 삼아 검토해 온 ON RRP는 Fed의 통화정책상 기준금리로 갖춰야 할 기능이 FFR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SOFR, ON RRP 등이 새로운 기준금리로 정착되고 위해서는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국제 금융 시장을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국제 금융 시장의 움직임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각종 금리 간 체계(interest system)도 잡혀야 한다. 새로운 기준금리가 빠른 시일 안에 정착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국제 금융 시장에서 거래 규모부터 늘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함께 인프라 면에서 중층적(中層的)인 발전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참여자의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국제화도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상, 어떤 평가 나올까
2023년 잭슨홀 미팅에서는 새로운 기준금리 조기 정착 방안과 함께 지난해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큰 폭으로 인상한 문제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론적으로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 공식은 우선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계수(물가 및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량 수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기간 중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3년 전 들이닥친 코로나19 사태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아무도 모르는 뉴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다. 따라서 초기 충격이 커 미 Fed는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내리고 통화 공급을 무제한으로 풀었다. 정도 차가 있지만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T: M은 통화량·V는 통화유통속도·P는 물가수준·T는 산출량)에 따르면 통화 공급은 그대로 물가로 연결된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쇼크’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갑작스럽게 인플레 우려가 불거진다.
2년 전 ‘쇼크’라 불릴 정도로 인플레가 갑자기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 지속 여부를 놓고 ‘일시적’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거세질 무렵 미국의 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정책 요인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가 수요 견인 인플레로 옮겨지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까지 우려됐다.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만약 당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여 선제 조치를 취했더라면 Fed 설립 역사상 금리를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높은 인상 폭인 500bp(1bp=0.01%포인트)까지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과 반성이 미국 학계와 Fed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인플레가 통제권에 들어오면 “Fed의 금리 인상 정책이 적절했는가” 반드시 평가돼야 할 문제였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 수준보다 높아 지난해 3월 이후 Fed의 금리 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단행됐는가를 입증해주고 있다. 2년 전 인플레가 불거질 당시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평균물가목표제로 안이하게 관리해 온 Fed가 뒤늦게 ‘볼커 모멤텀’으로 대처해온 결과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은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을 불러온다. 말이 뛰는 식의 금리 인상으로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2년물과 10년물 금리 간 역전현상인 1년 이상 길어지면서 그 폭도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100bp 이상으로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음(-)의 기울기(단고장저)를 나타내면 경기가 차입비용 증가로 침체 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돼 경기가 회복될 확률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한다. 하지만 ‘선제성’를 중시하는 미 Fed 입장에서는 NBER처럼 지나간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유효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Fed가 경기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투로 에스트렐라와 프레디릭 미시킨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는 가장 성공적인 경기예측기법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단기 금리 차의 ‘변화(change)’보다 ‘수준(level)’이 예측력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 연방은행도 장단기 금리 차는 실물경기를 4∼6분기를 선행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간 역전,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 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같은 투자의 구루가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예측력을 각종 투자 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확률 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동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 차가 경기 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1981∼1982년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98%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올 하반기 기준금리 기조와 경기 향방은
최근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에 대해 Fed는 경기 침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다. 그 근거로 고용 시장이 견실한 점을 들고 있다. 오히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가 희생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볼커 모멘텀식 대응을 계속할 뜻을 비추고 있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궁금하다.
볼커 모멘텀식 대응으로 ‘r스타(r*)’ 금리가 ‘r스타스타(r**) 금리’보다 높아진 것도 부작용이다.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다. 반면 r** 금리는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져 스트레스 지수(SI)가 올라가고 위기가 발생한다.
특정국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안으로 SI를 개발한 캐나다 중앙은행은 ‘SI를 시장과 정책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피로도’로 정의했다. 경제변수의 기대값이 변하거나 분산, 표준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지면 SI가 높아진다.
코로나19발 인플레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되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만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경우 두 금리 간 격차가 벌어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지금 수준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Fed만 하더라도 올해 안에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해 놓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 세수가 부족할 경우 재정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도 통화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만약 세금 인상과 공공서비스 지출 삭감 등을 통한 긴축으로 대응할 경우 도심일수록 죽음의 도시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감세와 공공서비스 지출을 늘려 도심의 매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간단한 래퍼 곡선을 통해 살펴보면 대도시처럼 세율과 재정수입 간에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지대에 놓여 있는 여건에서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 의욕과 도시 매력을 높여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고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근처럼 지난해 3월 이후 각국의 금리 인상으로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에서는 인플레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경기 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 목표치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이후 경기와 증시가 나빠 보이지 않는 이유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