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끝없이 추락하던 미국 경제가 회생의 불씨를 되살리며, 상승 곡선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하던 중국 경제는 당초 기대하던 리오프닝 효과를 보이지 못한 채 불황에서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국의 경제정책을 주목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미국 경제는 2020년 2분기 성장률이 -31.4%를 기록할 만큼 추락했다. 미국 국민은 ‘트럼프국’과 ‘바이든국’으로 양분되면서 트럼피즘, 즉 극단적인 트럼프 옹호자들에 의해 민주주의 상징인 의회까지 점령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웃돌 만큼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건국 이래 최대 위기였다.
트럼프 정부가 남겨 놓은 태생적 한계(origin sin)를 안고 출범했던 바이든 정부는 당초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불과 2년 만에 미국 경제를 재탄생시키고 있다. 미국 경기는 ‘골디락스 국면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과 패권 다툼에서 30년 이상 따돌렸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전임자가 남겨 놓은 태생적 한계, 세계 경제의 패권 경쟁 등과 같은 복잡한 현실을 푸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더 어렵다. 이 때문에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하기보다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던 종전의 정책 처방을 참고로 하는 실증적 방법이 활용된다.
바이든 정부가 위기 극복의 준거 틀로 삼아 왔던 여러 정책 처방 가운데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처방은 오마바 정부 때 경제정책의 근간이 되면서 최대 난제였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적용됐다.
출발은 1950년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예일대에서 화폐경제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토빈이다. 정책적으로는 로버트 솔로, 아서 오쿤, 케네스 애로 등과 함께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 집권 시기 실행됐던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재닛 옐런이 뒤를 잇고 있다.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 부양 등과 같은 단기 과제는 케인스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등과 같은 장기 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여 해결한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다. 즉, 단기 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 곡선으로 이해하고, 장기 과제는 토빈과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경제정책은 당면한 현안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했다. 재정정책은 경기 부양과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건전화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을 용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이동됐다. 통화정책도 ‘준칙(monetary rule)’대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종 목표인 장기 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추진해 이윤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함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을 맡았던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클린턴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도 활용됐다. 1990년 이후 ‘엔고(高)의 저주’에 걸려 20년 이상 침체 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의 발권력을 통한 엔저 유도 권고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30년’ 우려를 차단하려 했던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예다. 하마다 명예교수는 토빈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 정책인 설리번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창립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각국 간 놓여 있는 무역장벽을 해소해 세계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GATT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국가를 참여시켜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 집약, 자본 집약, 첨단 기술 산업 간 안행(雁行)적 성장 모델 여건에서는 중국처럼 뒤늦게 참가한 국가일수록 고성장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순으로 이어지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글로벌화의 필요성은 급속히 약화된다. 오히려 규모의 이익, 외부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기업 위치, 자금 화복원, 공급망 등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자급자족(autarky) 성장 모델이 더 효과적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공정한 경쟁 여건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인 설리번 패러다임처럼 기득권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일수록 효과적이다. 독수리가 하늘을 높이 날수록 까마귀의 약점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인 나바로 패러다임처럼 독수리가 까마귀와 동등한 위치에서 싸우면 마찰만 심해질 뿐이다.
설리번 패러다임은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켜는 지경학적 우위를 지키는 것이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려는 글로벌 시대의 패권 다툼과 구별된다. 안보를 연계시키는 경제도 금융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 금융이 실물경제를 뒤따라 가는(following) 지위에서 선도하는(leading) 지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천 계획도 주도면밀하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이 본국으로 환류되는 리쇼오링 정책을 주력해 왔다. 당장 미국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기업은 ‘니어쇼오링’과 ‘프렌드쇼오링’ 정책을 병행해 동맹국으로 이전시켰다. 동일한 차원에서 금융에서도 리플럭스, 니어플럭스, 프렌드플럭스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대체라는 의미의 ‘Alternative’와 아시아의 ‘Asia’ 간 합성어인 ‘알타시아(Altasia)’로 이전시키는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디지털 시대에 ‘탈세계화’라는 거센 뉴노멀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세계화의 막차를 탔던 중국과 같은 글로벌 포모(Fear of Mossing Out·FOMO) 국가는 ‘쇼크’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성장률은 국민총소득(GNP)이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산출해 왔다. GDP 성장률은 외국 기업과 자금이 들어올 때는 더 높아지지만 이탈할 때는 더 떨어지는 ‘순응성’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0년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외국 기업의 이탈세는 중국의 연간 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훼손할 정도까지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별로는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를 주도하는 ‘메가 캡8’이 이탈하고 있는 점이 중국으로서는 더 우려된다.
시 주석이 영수로 등극한 이후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공산당 대회가 끝나자마자 제로 코로나 정책을 풀면서 리오프닝 효과를 크게 기대했던 시 주석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 양회 대회 이후 채권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자금 이탈세도 심상치 않다. 최근처럼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할 때는 중국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되는 ‘경제정책 무력화 명제’에 봉착한다. 금리 인상,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한 신규 자금 유입 효과보다 외국인 자급 이탈에 따른 배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국처름 국가부채가 많은 여건에서는 재정지출은 구축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중국은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랭경온(政冷經溫: 정치·군사적으로 냉랭한 관계 속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 기류로 바뀌면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잇달아 초청하고 있다. 수정된 워싱턴 컨센서스인 ‘설리번 패러다임’이 재조명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후반기 경제정책은
경기 부양, 고용 창출, 재정 건전화 그리고 중국 따돌리기를 목표로 출발했던 바이든 정부도 집권 전반기가 끝났다. 3대 목표 중 완전고용이 달성된 지는 오래됐다. 지난해 3분기 이후 2%대 성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따돌리기도 절반은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특별 재정지출 요인으로 개선할 틈이 없었다.
바이든 정부의 집권 후반기 목표는 명확하다. 2% 부족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면서 중국을 완전히 따돌리는 일이다. 여전히 불안한 인플레도 잡아야 한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에서 가장 중시하는 통화정책이 집권 전반기에 코로나19 사태와 그 후유증을 극복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3분기 이후 2%대는 완전고용하에 성장률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정하는 잠재 수준이다. 해로드·도마의 성장이론에 따르면 실제성장률과 균형성장률, 잠재성장률이 같은 ‘황금률’이다. 황금률은 지속 가능하지만 경제정책, 특히 통화정책을 잘못 추진할 경우 칼날을 타는 무속인이 균형을 잃으면 큰 상처를 나듯이 경기가 급락하는 속성을 갖는다.
최근 미국 금융 시장 움직임을 보면 주식 시장은 경기회복세를 반영해 추세적으로 상승하지만 채권 시장은 장단기 금리가 역전돼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는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Fed가 물가만 잡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장단기 금리 역전 폭을 더 확대시켜 황금률에서 떨어뜨릴 수 있다.
중립금리를 보더라도 성장률, 인플레 등 실물경제 영향을 받는 r* 금리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보장하는 r** 금리보다 높아 이미 은행 위기 등이 발생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릴 경우 r* 금리가 r** 금리보다 더 높아져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10월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2024 회계연도(FY)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릴 9월 회의부터 Fed의 통화정책이 수정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이후 물가를 잡는 데 진력해 왔지만 앞으로는 금융 시장이 실물경기 회복세를 일관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시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우선순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Fed 설립 이후 최대 폭으로 벌어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단기 금리를 낮추고 장기 금리를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인플레 재발 우려가 있는 여건에서는 당장 금리 인하를 단행해 단기 금리를 낮추기는 어렵다. 인플레가 잡혔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단기 금리가 더 올라가지 못하도록 추가 금리 인상은 최대한 신중을 기할 확률이 높다.
그 대신 장기 금리를 끌어올리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Fed도 일본은행(BOJ)처럼 ‘수익률 곡선 통제(YCC)’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대차대조표(BS) 자산 항목에 장기채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정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고 성장률이 2%대까지 회복된 여건에서 피치가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킬 수준까지 악화된 재정 건전화 목표를 더 미루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한 방안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나,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정책과 마찬가지로 황금률에서 떨어뜨려 경기를 재침체시킬 우려가 있다.
제3의 길이 모색돼야 한다. 최근과 상황이 비슷했던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는 전임 부시 정부의 ‘강력한 미국’ 정책으로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이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페이 고(pay go)’를 추진했다. 소모성 경비인 일반 경직성 세목을 줄여 경기 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세목에 몰아주는 이 정책을 바이든 정부에서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정책 면에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와 같은 첨단 기술 산업을 육성해 대내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려 재정수입을 늘리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한국도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참고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