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2차전지가 대한민국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이어 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첨단 산업별 육성 전략으로 2030년까지 ‘2차전지 세계 1위’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발맞춰 국내 배터리 빅3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SK·포스코그룹, 에코프로 등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중국 제재 일환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가 국내외에서 집행한 설비 투자 규모는 총 8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등을 비롯한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배터리 생태계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몸집 커진 전기차 시장, 셀·소재 외형 성장 확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와 R&D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전기차 시장이 글로벌 전반에서 크게 성장세를 보이면서다. 유럽연합(EU), 중국, 미국 등 세계 3대 시장의 전기차 침투율은 오는 2035년에 90%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대부분 차량이 전기차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의 전기차 침투율이 2035년 88%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전기차 증가세와 함께 전기차용 2차전지 수요는 2035년 5.3테라와트시(TWh)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6160억 달러(827조28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또한 주요국의 대중국 제재로 인해 국내 배터리 셀과 소재 기업의 수주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외형 성장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완성차 기업들은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셀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 속도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2분기에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통해 배터리 규격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배터리의 진입장벽으로 인해 셀 내재화가 빠르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배터리 셀 기업 중 탈중국 소재 공급망에 대한 설계가 잘 돼 있는 기업에 우선적인 수주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받는 양극재 기업…공급망 확충 가열모드
미국은 IRA 법안을 발표하면서 오는 2025년까지 배터리 핵심 원료와 소재, 셀 등 기술력 있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RA 법안에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배터리 광물로 분류해서 국내 공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배터리 양극재 기업들에 특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극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의 원료를 통해 제조하는데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양극재의 원료 조합에 따라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 수명, 가격 경쟁력 등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에 배터리 소재 업계들은 양극재 생산능력 확대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 셀 기업들의 추가 수주가 이뤄질 경우엔 내년 상반기까지 양극재 수주 모멘텀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국내 배터리 3사는 양극재 확보를 위해 소재 업체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에 양극재를 공급하고 있는 LG화학은 현재 9만 톤 규모에서 2025년까지 양극재 생산능력을 34만 톤으로 확대 생산할 계획이다. 현재 구미에서 연간 6만 톤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신축하고,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30억 달러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세계 2위 양극재 생산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은 현재 양극재 생산능력이 18만 톤으로 오는 2027년까지 71만 톤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엘앤에프 역시 현재 13만 톤인 생산 규모를 2026년까지 43만 톤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2차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4대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중에서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들이 가공과 배합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이 중 리튬은 가장 핵심 원자재로 꼽힌다.
실제 금속들의 시세 변동에 양극재 납품 가격이 그대로 연동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양극재 업체들의 매출과 이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리튬의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도 속속 글로벌 업체들과의 공급 계약 체결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 염호와 호주 리튬 광석을 활용해 수산화리튬을 직접 생산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캐나다 스노레이크(Snowlake), 칠레 SQM, 캐나다 아발론(Avalon), 독일 벌칸에너지, 호주 라이온타운 등을 통해 리튬 공급망을 확보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리튬의 대체제로 하이니켈(high-nickel) 양극재 기술을 가진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기차 배터리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양극재는 NCM(니켈·코발트·망간)인데, 이 양극재 구성 요소 중 값비싼 코발트의 비중을 줄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에코프로비엠과 LG화학, 엘앤에프, 포스코케미칼 등이 하이니켈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K배터리 수주 모멘텀 기대
전문가들은 올해 북미 수주 모멘텀이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IRA 정책의 핵심은 대중 제재와 함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로부터 소재를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배터리 부품에 해당하는 분리막과 전해액은 100% 북미에서만 조달이 가능하다. 국내 배터리 3사들의 탈중국 공급망이 불가피해지면서 한국의 소재 업체들과의 협력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오는 2026년 준공 기준 국내 3사의 북미 합산 배터리 규모로는 양극재 72만 톤, 동박 31만 톤, 전해액 51만 톤 등이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비용 증가 대비에 발맞춰 소재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는 양극재 중심의 수주 모멘텀이 지속됐다면 하반기에는 양극재뿐 아니라 분리막 등 다른 소재 산업에 대한 고객사 다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특히 양극재 분야에서 예상되는 K-양극재 출하량은 152만 톤에 달한다. 매출로 환산했을 때 7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공격적인 북미 진출 계획이 있지만 당장 필요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적절한 공급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하반기에 도요타 등 하반기 신규 수주 기대감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계 완성차 물량만 확보해도 시장점유율은 70% 정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연구원은 “북미 시장에서 셀에서 2차전지 소재로 이어지는 수주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