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대재앙의 최후 방어선을 지켜라

기후 위기와 기후 기술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이 약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국제사회의 발걸음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일상을 위협하는 최초‧최고의 기록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재미있는 만평이 실렸다. 사각의 링 안에서 지구와 코로나바이러스가 치고 받으면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몸집이 큰 거대한 선수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선수의 이름은 ‘기후변화’. 링 안에는 ‘예선전’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이 만평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이미지 출처: Economist, The world this week(2020.04.23)


올해 다보스 포럼이 발표한 ‘10년 내 글로벌 리스크’에는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생물 다양성 손실 등의 키워드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구는 연일 비상 상황에 돌입하고 있다. 올여름도 때 이른 폭염과 전례 없는 긴 장마가 있을 거라고 예보되었다. 예보는 매년 그 기록을 경신하기도 한다. 해마다 세계 각국은 이상기후 현상에 따른 재난과 재해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비단 올여름만 잘 보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세계 기후 지표는 ‘빨간불’을 켠 지 오래고, 기상이변에 관한 기록은 속보로 전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 삶을 빠르게 위협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올 6월 지구 평균 기온이 최초로 산업화 이전보다 1.5℃ 넘게 올랐다.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1.5℃를 넘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한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이번에는 일시적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1.5℃가 깨지면 50년 주기로 오는 극한 폭염은 산업화 이전보다 8.6배, 폭우는 1.5배, 가뭄은 2배 잦아질 전망이다.

실제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온으로 연일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해수면 온도 최고치, 남극 빙하규모 최저치, 화석연료가 연소할 때 배출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위험의 심각성을 해결 가능성으로 전환
IPCC 보고서에 따르면 올 6월 지구 평균기온이 최초로 산업화 이전보다 1.5℃ 넘게 올랐다.


다보스 포럼이 발표한 ‘글로벌 위험 보고서 2023’의 글로벌 위험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전 지구적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위험으로 기후 위기를 꼽았다. 조사 응답 대상인 정부, 기업, 학계, 국제기구, 시민사회 소속 전문가 모두 공통으로 기후 위기가 향후 10년 이내에 인류의 가장 큰 위험이 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3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에서도 향후 10년간 무엇을 하는지가 지구 운명을 결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는 기후 위기에 더 이상 우리의 선택지는 없고, 이제 우리는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험의 심각성을 인지한 지는 이미 오래된 일. 이제는 생존을 위한 공동의 과제라는 인식을 넘어 행동함으로써 이를 직접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시장, 시민 등 각계각층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의 체계적 정책 수립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시장 형성, 그 시장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기업과 시민의 적극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8월 기후변화 대응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이에 전 세계 각국 정부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법안을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한화 기준 약 480조 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유럽도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55%감축한다는 유럽기후법ECL을 발표했다. 스위스에서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기후법을 통과시켰다. 알프스 빙하를 지키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기후 기술이 가져올 미래
지난 5월에 열린 제1회 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는 많은 기업이 참가해 다양한 기후테크를 선보였다.


정책을 실현하는 중심에 기후 기술이 있다. 스위스는 혁신적 기후 기술 투자에 10년간 한화 기준 약 2조8,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145조 원을 투자해 10개의 기후 기술 유니콘 기업과 1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기후테크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혁신적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게 핵심 메시지였다.

현대자동차는 박람회 기간 동안 카본테크‧클린테크 일환의 탄소 중립 미래 모빌리티와 수소 연료전지 신기술을 공개했다.


기후 기술, 즉 기후테크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 적응 기술을 활용하는 연관 산업을 총칭하는 말로, 우리나라는 기후테크 산업을 크게 클린테크(에너지)‧카본테크(탄소 포집 등)‧에코테크(자원 순환)‧푸드테크(농식품)‧지오테크(관측 및 기후 적응) 등 5개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기후 기술을 접목한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처럼 상상해볼 수 있다.

집집마다 가정용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저장 장치를 갖추고 전기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전기료 인상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축산업 대신 콩, 밀, 버섯 등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해 고기와 비슷한 영양과 식감을 재현한 대체육 요리 덕분에 건강도 챙길 수 있게 됐다.

기성복 매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에코 패션 제품도 패스트 패션 브랜드만큼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기다. 기후 예상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 덕분에 재난‧재해 발생 전 실시간 알람을 받고,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막을 수도 있게 되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도 박람회에서 ‘세계 기후 산업 분야의 최신 기술과 만나는 지속 가능한 일상’을 주제로 삼성 홍보관을 열었다


미래 사회를 위한 투자
각국 정부가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많은 기업과 투자사도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지속 가능 목표를 설정하고,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기후테크 시장은 연평균 15%씩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투자시장이 어렵지만, 시장 규모도 10년 뒤 10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투자자들 또한 기후테크가 경제적 수익과 환경적 가치를 모두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기후테크에 투자하기 위한 투자 가능 금액인 드라이 파우더Dry Powder도 더욱 증가해 2022년 4분기 기준 약 45조 원을 넘었다. 2021년 4분기 기준 약 13조 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아졌다. 물론 정부와 민간의 기후투자 금액은 계속 증가했지만, 2050년까지 파리협정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년 지금보다 최소 6배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기후테크는 기후 위기를 해소하고 적응하기 위한 인류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문제를 현상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행동해서 지구 대재앙의 최후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과 혁신 역량을 기후에 집중할 때다.

글. 유서영(소풍벤처스 기후네트워크 TF팀장)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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