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금리 급등의 파장이 증시를 넘어 외환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증시와 외환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전하게 될까.
국제 유가 상승발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지난 7월 중순 이후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불과 3개월 반 만에 100bp(1bp=0.0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중 달러인덱스는 99대에서 106∼107대로 상승했다.
앞으로 주가와 달러 가치 움직임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남은 두 차례 회의에서 Fed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①안 금리 0.5%포인트 인상과 양적긴축(QT) 475억 달러, ②안 금리 0.25%포인트 인상과 QT 475억 달러, ③안 금리 동결과 QT 475억 달러(혹은 폐지)의 3가지 방안이다.
최악 시나리오인 ①안이 부각될 경우 올해 연말 기대하는 추수감사절 랠리와 크리스마스 랠리 그리고 내년 1월 효과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주가수익비율(PER) 등으로 볼 때 3대 지수가 고평가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높게 올라간 빅테크 주가는 ‘순간 폭락’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중립 시나리오인 ②안이 부각되면 학습 효과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낙폭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월가에서 바라는 ③안이 부각되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랠리, 내년 1월 효과까지 나타나면서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를 바탕으로 나타났던 골디락스 장세에 버금가는 증시 호황도 기대해볼 수 있다.
어느 안으로 결정될 것인가는 현재 물가 수준에 대한 인식과 물가 대책으로 금리 인상 효과를 어떻게 보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인식하고 금리 인상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면 ①안으로 가져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더는 물가 수준을 내리기 어렵고 금리 인상 효과가 적다고 판단하면 ②안이나 ③안을 선택하면서 물가 목표치 상향과 같은 제3의 방안이나 재정정책과의 공조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Fed가 현재 물가 수준을 판단할 때 내부적으로는 단순히 물가 목표치(현재 2%)보다 중립금리 수준에 따른 물가 목표치를 더 중시한다. 상향 조정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물가 목표치를 수시로 변경할 경우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인 물가 안정 의지가 흐트러진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효과도 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가보다는 사후적으로 통화정책의 적정성을 따지는 ‘테일러 준칙’ 혹은 ‘수정된 테일러 준칙’으로 판단한다. 최근처럼 물가가 모든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하는 다중공선성 성격이 강하고 총수요 요인보다 총공급 요인이 더 큰 여건에서는 물가 하락 폭을 금리 인상 효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가지 판단 요건을 감안하면 올해 남은 Fed 회의에서 ①안을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③안도 매 회의 때마다 들쑥날쑥하는 스네이크형 금리 변경(5월 0.25%포인트 인상→6월 동결→7월 0.25%포인트 인상→9월 동결)으로 통화정책의 3대 생명인 선제성, 일관성, 신뢰성을 한꺼번에 잃을 우려가 있다. ②안이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Fed, 올해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 줄까
Fed가 연말까지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경우 달러 가치와 위상 그리고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재현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에는 달러 스마일 이론이 들어맞을 확률이 높다. 경기 침체기에는 안전통화로, 회복기에는 머큐리(펀더멘털)과 마스(정책) 요인으로 강세를 보이다가 그 중간에는 약세를 보인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이후 달러 가치는 스마일 이론이 제시한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다. 1년 전 114를 넘던 달러인덱스가 지난 7월에는 100선 밑으로 떨어지다가 9월 미 Fed 회의 이후에는 106∼107대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중 원·달러 환율도 1440원대에서 1120원대로 급락하다가 1350원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앞으로 달러 가치는 강세가 될 요인이 많다. 머큐리 면에서는 미국 경제가 견실한 대신 달러인덱스 구성통화 비중의 70%가 넘는 유럽 경제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스 면에서도 미 Fed는 유럽중앙은행(ECB)보다 매파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달러 위상과 관련해 브레턴우즈 체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달러 임페리얼 서클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브레턴우즈 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1971년 금태환 정지,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흔들리긴 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는 비교적 잘 유지됐다.
하지만 브레턴우즈 체제가 결정적으로 흔들렸던 때는 1995년 역플라자 합의 이후부터다. 잃어버린 10년이 우려될 정도로 수렁에 빠진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주도로 엔·달러 환율을 79엔대에서 148엔대까지 끌어올렸다(루빈 독트린). 당시 일본 경제 영향권에 있었던 동아시아 국가 환율도 동반 상승했다.
그 후 강달러 시대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과정에서 ‘자국 통화 약세’라는 반사이익을 누린 아시아 국가는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어빙 피셔의 이론대로 아시아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까지 겹쳐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 붕괴 모형에 따르면 자산 거품을 떠받치는 돈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면 터진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Fed가 전시 때나 동원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달러 가치와 위상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틈을 파고들었던 것이 시진핑 정부의 팍스시니카 야망이다.
하지만 설러번 패러다임과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양대 축으로 하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패권 다툼에서 밀리면서 위안화 가치와 위상은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만큼 급락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연일 위안화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달러 임페리얼 서클이 다시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이는 것도 이 배경에서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발산의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높다. 대발산이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의 분데스방크(ECB 창립 이전에 유럽 통화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당시 신흥국은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이미 일대일로 참여국을 중심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Fed가 금리를 더 올리면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신흥국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 증시와 외환 시장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중순 이후 10년물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기간 중에 코스피 지수는 10%, 코스닥 지수는 15% 넘게 급락해 코스닥의 경우 낙폭이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원·달러 환율도 135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한국, 미 국채금리에 취약…완충장치는 있나
특정국 증시와 환시가 미국 국채금리 등과 같은 대외 가격 변수에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가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개발한 금융 스트레스 지수(FSI)로 파악한다. 물리학의 피로도 개념을 응용한 FSI의 핵심은 완충 능력에 있다. 한국 증시와 환시가 미국 국채금리에 취약하다는 것은 고금리 완충장치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첫째, 경제주체를 가릴 것 없이 부채가 너무 많다. IMF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는 108.1%, 기업 부채는 124.1%로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GDP 대비 절대 수준도 IMF의 수정된 개념상 위험 수준인 60%에 근접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내 금융사들이 마치 유행처럼 해외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급증한 달러 레버리지 부채다. 10월부터 만기가 집중적으로 시기에 고금리와 맞물리면서 ‘수요 파괴’까지 일고 있다. 이 현상이 나타날 때는 리스케줄링과 투자 자산 처분이 어렵고 처분하더라도 국내 금융사처럼 중후순위로 밀려난 조건에서는 회수하기가 어렵다.
둘째, 펀더멘털 면에서는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될 정도로 약하다. 지난해 아시아 4룡 가운데 마지막 남은 대만에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했다. 올해 성장률은 일본에 역전당할 위기다.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로 추정한 중장기 성장 기반은 더 취약하다. 노동 섹터는 ‘저출산·고령화’로, 자본 섹터는 ‘해외 위주의 신규 투자’로, 국내 투자는 ‘낮은 자본장비율(K/L)과 토빈 q 비율’로 그리고 총요소생산성 섹터는 ‘각종 입법 규제와 부정부패 등’으로 빠르면 2025년부터 1%대의 성장률도 어려운 것으로 나온다.
셋째, 쌍둥이 적자도 우려된다. 올해는 재정적자 폭이 의외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수는 저성장과 직전 정부와의 정책 단절에 따른 금단 효과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반면 지출은 하방 경직성에다 재정준칙은 ‘거대 야당’이라는 입법적 한계에 부딪쳐 도입이 늦어지면서 세수 감소 폭 이상으로 감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상수지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가 우려로 정도로 흑자 규모가 감소되고 있다. 질적인 면에서도 상품 수지는 ‘수출 증가’보다 ‘수입 감소’가 더 큰 불황형 흑자로 종전과 다르다. 상품외 수지는 ‘국내 유입’보다 ‘해외 유출’이 더 많은 공동화 적자까지 누적되고 있어 고금리에 따른 완충능력은 더 떨어진다.
넷쩨, 포트폴리오 지위가 정체돼 있는 것도 문제다. GDP 규모, 무역액, 시가총액 등으로 평가되는 실물경제 위상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세계채권지수(WGBI),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로 파악되는 포트폴리오 지위는 신흥국이다. 두 위상 간 괴리에 따라 잠복된 위험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같은 대외 가격 변수가 불안할 때 노출된다.
다섯째,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여야 간 갈등은 오히려 고금리의 충격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결 건수를 제안 건수로 나워 백분화시킨 여야 간 갈등 지수는 국회 역사상 최고 수준에 달한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여야 의원 간의 어조 지수를 보면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 높게 나온다.
여섯째,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국 증시의 투자 환경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점도 자주 지적된다. 디스커버리, 라임, 옴티머스 사태의 책임자들은 여전히 대형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꿰차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상징하는 금융사에서는 수천억대의 횡령 사건이 터지고 있다. 테라, 루나 등 불법 코인 사태 주범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증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늦었다 하더라도 국정 어젠다는 반드시 제시돼야 한다. 한국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명확해야 대외, 거시경제, 산업, 기업, 노사, 세제, 부동산 등 세부 분야별 정책 수립과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자는 PER, 주가순자산비율(PBR)보다 이자보상비율을 중시해 유망 종목을 선택해야 한다.
외환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착화 우려까지 제기되는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통화정책은 인플레 재발 우려로, 재정정책은 ‘거대 야당이라는 입법적 한계에 부딪혀 부양정책 여지가 제한된 상황이다. 앞으로 닥칠 국제 외환 시장 여건을 감안해 원·달러 환율은 적정선(1250원 추정)보다 50∼100원 정도 높게 운영할 필요가 있는 때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