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의 화두는 단연 ‘선거’다. 세계 74개국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치르고 세계 인구의 약 40억 명이 투표를 해야 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당사국의 명암이 갈릴 뿐만 아니라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글로벌 시가총액의 60%가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부터 중요한 선거가 치러졌다. 1월 13일 대만 총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대만과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결과는 미국에 편향적인 민중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이 때문에 홍콩에 이어 대만을 예속시키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국일제(一國一制) 야망이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마련된 미·중 간 ‘디리스킹(de-risking·위험축소)’ 관계가 종전처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으로 복귀할 확률이 높아졌다.
올해 3월에 치러질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미디르 푸틴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도 주목된다. 연임은 확실시된다. 푸틴 1인 독재체제가 굳어진 여건에서 다른 후보가 나서더라도 당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나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연임을 기정사실화한 권력 구조 재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연임 이후다. 북한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 연계를 모색하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간 신냉전 시대가 전개되겠지만 과연 이 카드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회주의 맹주를 꿈꾸는 푸틴으로서는 시 주석과의 종속 혹은 양두 체제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회주의 분절화로 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 간 양국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달 치러질 이란 대선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에서 주목하는 선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란의 지도부가 교체되면 5차 중동전쟁에 대한 우려가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이란을 필두로 이라크, 시리아, 예맨으로 이어지는 시아파가 러시아까지 연계되고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할 경우 사회주의 분절화는 더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
4월, 5월 두 달에 걸쳐서는 인도 총선이 치러진다. 정치적으로 네루와 간디 지지층, 사회적으로 카스트 제도의 브라만 계층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니렌드라 모디 현 인도 총리의 3연임은 무난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모디노믹스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두 차례 집권 기간 중 경제 성과가 눈부셔 인도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의 3연임이 확정되면 인도 경제는 다시 한번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를 계기로 시가총액 면에서 홍콩을 제치고 세계 4위의 증시 대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수학, 정보기술(IT) 등 자체적인 성장 동인에다 알타시아(Altasia=Alternative+asia)의 대표국으로 탈중국에 따른 반사이익까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간 실용주의적 길항(拮抗) 외교도 주효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보다 인도 중심의 ‘팍스 인디아나’가 더 빨리 전개될 수 있다는 시각도 주목된다.
유럽의회 선거 등 국제 금융 시장의 파장 예상
6월에는 유럽의회 선거와 멕시코 대선이 치러진다. 지도부 교체까지 이어질 유럽의회 선거에서 아프리카 난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피난민 등으로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극우 후보들이 득세할 경우 유럽 통합은 또 한 차례 시련을 겪을 확률이 높다. 2016년 브렉시트에 이어 ‘넥시트(Nexit=Netherland+exit)’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스페인 내에서는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퇴임 이후 올라프 슐츠 총리의 실정과 독일 경제의 침체로 유럽 통합의 분열은 의외로 빨라질 확률이 높다. 유럽의 맹주 역할이 없어져 회원국이 각자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20세기 초 유럽의 부활을 꿈꾸며 자유사상가에 의해 구상된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120년 만에 ‘미완성’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주목된다. 이 경우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그리고 국제 금융 시장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멕시코 대선에서 여성 후보가 당선될 것인가가 관심이 되고 있지만 2022년 10월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대통령 재임으로 균열되기 시작한 핑크 타이드 물결이 어떻게 되느냐가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 입장에서는 더 큰 관심사다.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되면서 중남미 핑크 타이드 물결은 사실상 와해됐다.
밀레이 대통령의 전기톱 공약처럼 급진적인 개혁정책은 중남미 국가들이 다 추진할 수 없겠지만 좌파 포퓰리즘으로 병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나입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개조운동은 주목을 받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법치주의와 시장원리가 통하는 제도적 기반이 조성돼 그 위에서 경제주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시급했다.
난제였던 살인적인 물가를 잡기 위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가 지정된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들고나온 것이 ‘마노 두라(mano dura·철권통치)’였다. 이 비상대책은 범죄 혐의만 있으면 중남미 최대 교도소로 보내져 한때 수감자 수가 국민의 2%에 달했다. 마약, 부패, 불법행위 등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기 인권탄압 우려와 달리 사회 기반과 민생이 안정돼 만성적인 침체에 시달렸던 엘살바도로 경제가 살아나자 국민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같은 문제로 시달리는 온두라스, 콰테말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부켈레 신드롬’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에콰도르에서는 제2의 부켈레를 표방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짙은 선글라스, 가죽 재킷과 청바지, 뒤로 돌려쓰는 모자, 바이크, 턱수염 기르기 등 다크 브랜슨 이미지로 상징되는 부켈레 신드롬은 이제는 패션, 예술, 문화 분야까지 ‘부켈리스모(Bukelismo·부켈레주의)’로 정착되는 가운데 2024년에 가장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선정됐다.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부켈리스모는 의미가 크다.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로 주요국의 성장 기반을 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로, 자본 섹터는 낮은 자본장비율(K/L)과 토빈 q 비율’ 등으로 취약하다. 부켈리스모는 유일한 성장 대안인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경제정책적으로도 케인즈의 총수요관리 대책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재정정책은 누적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통화정책은 당면한 인플레와 고금리 등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부켈리스모는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안정시켜 그 위에서 경제주체들이 마음대로 뛰어놀게 하는 일종의 공급 중시 경제학이다. 부켈리스모, 과연 엘살바도르를 넘어 중남미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대목이다.
슈퍼 엘리뇨 현상 발생 2년 차를 맞아 투표장에 나가는 것이 힘들 정도로 폭염이 이글거릴 때 치러질 르완다 대선도 주목된다. 리비아, 나이지리아, 콩고, 수단 등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내전을 치르는 상황에서 반군 후보가 집권에 성공할 경우 아프리카 대륙은 대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의 부정부패, 이상기후에 따른 가뭄과 기근, 극심한 경기 침체로 르완다 국민의 경제고통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파장에 ‘촉각’
르완다 대선 이후 잠시 주춤했던 선거는 올해 11월 5일에 치러질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대미(大尾)를 장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1월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만 참여)를 시작으로 양당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를 거쳐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로만 본다면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전현직 대통령 간 재대결일 확률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바이드노믹스로 상징되는 지금 미국의 대내외 정책이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경우다. 트럼프노믹스의 총체적인 기조는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오바마 정부가 태생적 한계였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 위상과 주도권의 반작용에서 나온 구호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국익 간 충돌될 때에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집권 2기 때는 극단적 보호주의를 지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익도 과연 미국 국민 전체를 우선할 것인가를 놓고 집권 1기 때에 경험을 바탕으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의 사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또 한 차례 시련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의회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동으로 트럼프 키즈에 의해 점령당한다면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3의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신해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어디까지 치고 올라올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헤일리가 공화당 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민주당에서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나 미셸 오바마가 등장할 수 있어 미국 대통령 역사상 첫 여성 후보 간 대결과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인가도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 해에 선거가 74개국에서 치러진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와 증시를 비롯한 국제 금융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도 4월에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치러진다. 그 결과에 따라서 우리 경제 앞날에도 커다란 변화가 닥칠 것이다. 선거에 따른 각종 위험과 변화는 전형적인 테일 리스크에 해당한다. 2024년 갑진년은 그 어느 때보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