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中 네 마리 용 韓 상륙…유통 시장 대전환”
입력 2024-01-29 10:07:14
수정 2024-01-29 10:07:14
차이나 이커머스의 역습 ②
“각기 다른 4인 4색 네 마리 용이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는 네 마리 용이 아마존을 바짝 뒤쫓고 있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겸 중국경영연구소장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틱톡샵을 ‘중국의 네 마리 용’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에는 알려진 지 얼마 안 됐지만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돌풍은 이미 북미 지역을 휩쓸고 있다.
박 교수는 “미국 여대생을 인터뷰해보면 스마트폰에 테무, 쉬인 등 2개의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다 깔려 있다. 네 마리 용이 아마존을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이들 플랫폼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을 막론하고 유통 비즈니스 방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은 국내 유통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또 이들 플랫폼의 핵심 무기는 무엇일까. 박 교수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다.
국내에서 중국 직구가 주목받고 있다.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경제적인 측면과 맞물려 있다. 글로벌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고, 한국도 물가가 상승하다 보니 더 저렴한 제품을 찾고자 하는 소비자 정서가 커졌다. 이미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많은 제품이 ‘메이드 인 차이나’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구매한 동일 제품 대비 가격 차이가 너무 난다. 물론 국내 플랫폼에 입점한 셀러들은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된 제품 위주로 선별해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격 차이에 대한 소비자의 실망감이 워낙 커 중국 직구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은 한국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한다. 매력적인 테스트마켓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K-콘텐츠,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크다. 따라서 신흥국 시장을 잡으려면 일단 한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별 전략이 궁금하다. 우선 국내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는 어떤 강점을 가졌나.
“알리익스프레스는 강력한 물류 인프라가 장점이다. 알리바바그룹(알리익스프레스 모기업)은 물류 자회사인 차이니아오를 갖고 있는데, 중국 내에만 200개가 넘는 물류분배센터가 존재한다. 그만큼 강력한 물류망을 갖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의 배송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CJ대한통운과 배송 계약을 맺기도 했다.
다만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직접 주문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5일 내 도착’을 보장한다고는 해도 실제로는 5일 이상 걸리는 물건들이 많다. 한국에 물류센터 개설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배송 기간의 단축을 위한 드라이브다.”
실제로 물류센터가 들어선다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 같다.
“대규모 물류센터 구축에는 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리스크도 크다. 결국은 이 또한 데이터와의 싸움이다. 물류센터를 구축하려면 구매율이 쌓여야 하고, 재구매율이 높은 제품을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어떤 물건을 쌓아 놓을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그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 데이터가 있어야 수요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물류센터 구축 여부도 결정할 수 있다.”
후발주자인 테무도 심상치 않다. 테무의 강점은 무엇인가.
“말도 안 되는 초가격 전략이다. 알리익스프레스보다도 저렴하다. 테무는 일괄 운영 관리 시스템을 통해 모든 판매 과정을 플랫폼이 직접 관리해준다. 일종의 직거래 방식으로 중간 유통 비용을 확실하게 줄인다. 그 결과 상상도 못했던 가격을 책정하게 된다. 이런 어마어마한 가격과 물량을 바탕으로 북미 시장을 휩쓰는 사업모델이 됐다. 또 다른 강점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다. 소비자를 맞춤형으로 공략하는 알고리즘 역량은 테무를 따라갈 수 없다. 일괄 운영 관리 시스템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알고리즘 등 리테일 기술로 소비자를 찾아가는 전략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패스트패션 플랫폼인 쉬인의 전략은 어떤가.
“쉬인은 중국 광저우 지역에 방대한 제조·소싱 인프라를 갖췄다. 디자인별로 100장씩 소량 제작이 가능한 구조다. 디자인에 대한 시장 반응을 즉각적으로 테스트해볼 수 있는 환경이다. 청바지 하나를 만든다고 예를 들어보자. 원하는 실부터 원단, 지퍼까지 10분 내로 조달 가능하고, 공장에서 곧바로 100장을 제작해 플랫폼에 업로드할 수 있다. 소비자 반응이 좋은 제품은 제작 수량을 1만 개씩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매우 유연한 공급망이 쉬인의 강점이다. 일반적인 패션 기업은 쉬인처럼 빠르게 소량 제작하기 힘든 구조다. 일단 제작해 둔 물량을 쌓아 두고 얼마나 잘 판매하는지가 중요한 ‘재고 싸움’을 해야 한다.
쉬인의 약점은 디자인이다. 쉬인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가장 큰 목적도 여기에 있다. 동대문 등의 디자인 인프라를 활용해 한국의 의류 디자인을 저렴하게 구매해 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초저가 중심의 사업 전략이 장기적으로도 유효할까.
“글로벌 환경 자체가 엄청나게 양극화되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수많은 개도국이 존재하는 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그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물론 저가 상품의 모수가 워낙 많은 만큼, 가품·불량품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저렴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낮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테무에서 말도 안 되는 낮은 가격에 야외 의자를 4개 샀다고 해보자. 그중 하나가 불량품이라면, 그 정도는 가성비 측면에서 수용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많을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가격에 물건 4개를 구매했다면, 비록 1개는 실패했더라도 3개를 성공한 것에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저가 상품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한 이 시장이 앞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낮은 마진, 공격적인 마케팅은 초창기라서 가능한 전략 아닐까.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제 막 플랫폼 유입량이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장 많은 돈을 버는 구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입량이 더 늘어나고 상품별 재구매율이 높아진다면 폭발적으로 마진이 형성되는 구간이 올 것이다. 또 플랫폼 내 유입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데이터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기서 또 다른 비즈니스의 기회가 생겨난다. 이커머스는 유통 비즈니스이기도 하지만, 데이터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만드는지를 둘러싼 싸움이다. 결국은 데이터가 많은 기업이 이긴다.”
향후 국내 시장에서 가장 성장세가 클 것으로 보이는 플랫폼은 어디인가.
“기본적으로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성장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본다. 알리익스프레스를 제외하고 가장 유심히 봐야 할 플랫폼으로는 올해 한국에 진출할 틱톡샵을 꼽고 싶다. 틱톡은 모두가 알다시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절대 강자다. 시장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다른 플랫폼이 흉내 내기 힘든 ‘흥미 커머스’를 갖고 있는 틱톡샵의 성장이 주목된다. 올해 틱톡샵이 한국에 진출하면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
한국 유통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성장으로 한국 기업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을 막론하고 유통 비즈니스 방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것 같다. 일단 국내 플랫폼은 가격 경쟁을 위해 중국 업체와 직거래 방식으로 물건을 소싱하는 방향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소비자들은 AI를 통해 플랫폼별 동일 제품을 찾아낸 뒤 가격을 비교할 것이다. 국내 플랫폼이 중국 플랫폼만큼 단가 경쟁력을 확보하지는 못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중국 업체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이 제품을 자체 소싱해 비용 거품을 줄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단순히 셀러들에게 판매의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넘어, 유통 구조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나라 플랫폼만의 장점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제품 퀄리티 검수, 물류 면의 장점을 내세우면서 가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생각해본다.”
개인 소매업자, 제조업체도 큰 변화를 겪을 것 같다.
“소매업자도 새로운 생존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제조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중국 이커머스가 시장을 잠식해 온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기업이 확실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다면 이런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브랜드 없이 제품만 만들어주는 제조 라인은 점점 중국 플랫폼에 종속되는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중국 플랫폼에 종속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앞서 우리나라 이커머스 플랫폼이 생존을 위해 중국 제조업과 직거래를 하게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단순 제조만 해 왔던 국내 업체는 어떻게 될까.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국산 제품으로는 가격 균형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중국 이커머스가 ‘우리 플랫폼도 저품질 이미지 좀 벗어야 하지 않겠어? 한국산 제품 가지고 우리 밑으로 들어와. 그런데 마진은 많이 가져갈 생각하지 마. 대신 히트 치면 돈 많이 벌 수도 있어’라고 손을 내민다면 어떨까. 코너에 몰린 국내 업체들이 결국 불합리한 조건으로 중국 플랫폼으로 들어가지 않겠나.”
국내 기업으로서는 긴장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국내 유통 산업의 플레이어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주신다면.
“우선 플랫폼과 제조업체의 입장은 다르다. 제조업체는 본인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무한 유통 경쟁 속에서 중국 제품의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또 중국산 제품이 언제까지나 저품질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저렴한 중국 제품들도 디자인은 한국에서 받아오는 등 제품력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 물건 10개를 주문했을 때 성공률이 지금은 3할이라면, 점점 4할, 5할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은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야 최악의 시나리오로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브랜드 가치가 있다면 중국 플랫폼이 ‘내 밑으로 와’가 아니라 ‘같이 하시겠습니까’라는 쪽으로 톤을 달리할 것이다. 역으로 우리 제조업체가 중국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로 진출할 수도 있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은 아마존보다 입점이 훨씬 쉽다. 네 마리 용(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틱톡샵)의 등에 올라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은 어떤 점에 대비해야 할까.
“중국의 네 마리 용이 해외 각국에 존재하는 커머스 기업을 하나 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물론 중국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을 인수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유통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플랫폼의 지분 상당수를 중국 플랫폼이 갖게 되는 무서운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의 공세를 피할 수 없다면, 국내 플랫폼 또한 해외 시장을 공략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단순히 소매, 유통, 물류에서만 우리의 장점을 찾을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소프트 빅뱅 코리아’라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가진 콘텐츠의 힘을 활용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돼야 한다. 중국의 네 마리 용은 각자 색깔이 뚜렷하지 않나. 중국 알리익스프레스도 콘텐츠를 이용해 유입량을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 이커머스 기업도 한국의 강력한 문화 콘텐츠를 플랫폼에 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판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글로벌화에 성공하기는 버겁다. 쿠팡이 북미 시장을 로켓배송으로 공략할 수는 없지 않겠나. 빠르게 준비하지 않으면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생태계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ㅣ사진 이승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