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반려동물에 상속...우리나라는 가능할까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와 1인 가구가 증가 등 가족 형태가 바뀌면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을 키우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상속이나 돌봄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과연 반려동물 상속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22년 기준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552만 가구로 전체의 25.7%를 웃돈다. 우리나라 네 가족 중 한 가족 이상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관련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9000억 원에서 2023년 4조5786억 원 수준으로 8년간 약 2.5배 증가했으며, 오는 2027년에는 6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펫팸(pet+family)족’을 타깃으로 한 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주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반려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상속 시스템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미국 등 해외에서는 주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거액을 상속한 사례들이 적잖이 소개됐다.

최근 중국에서 한 할머니가 평소 연락을 안 하는 자식들 대신 반려견과 반려묘에 37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남기기로 결정한 사례가 화제를 모았다. 지난 1월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중국 매체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상하이에 사는 할머니 류 모 씨는 몇 년 전 세 자녀 앞으로 유산을 남기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류 씨가 아플 때 찾아오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류 씨는 “반려견과 반려묘만 내 곁을 지켰다”면서 반려동물에 2000만 위안(약 37억 원)을 상속하고 자식들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는 내용으로 최근 유언장을 수정했다. 그는 유언장에 자신이 죽은 뒤엔 반려동물과 이들의 새끼들을 돌보는 데 모든 유산이 사용돼야 한다고 적었다.

물론, 중국에서 반려동물에게 직접 상속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때문에 류 씨는 거주지 근처 동물병원을 유산 관리자로 지정, 이들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돌보도록 했다. 중국 유언등록센터 본부 직원 천카이는 “우리였다면 반려동물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믿을 만한 사람을 임명해 동물병원 감독을 시키라고 조언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처럼 우리나라도 살아 있는 사람만이 재산권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자(死者)나 동물은 재산상의 이익을 누릴 수 없어 신탁의 수익자가 될 수 없다. 즉, 아무리 동물을 가족의 개념으로 본다고 해도 직접적인 상속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의 한계를 보안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펫신탁이다.

펫신탁은 반려인이 사망 혹은 질병 등의 사유로 인해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반려동물을 돌봐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자금을 맡길 수 있도록 체결하는 신탁 계약이다. 국내에서는 KB국민은행이 ‘KB펫코노미신탁’을 지난 2021년 7월 출시한 것이 최초다. 해당 상품은 가입자의 사후에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에 자금을 미리 맡기고 반려동물을 양육해줄 부양자에게 반려동물 양육 자금을 지급하는 신탁 상품이다.

펫신탁 활성화 위해 법 개정 필요
펫신탁의 프로세스를 보면 우선 반려동물의 주인은 자신을 대표로 관리 회사를 설립하고 반려동물에게 남기고 싶은 재산을 사전에 관리 회사로 옮긴다. 이어 본인이 사망한 후 반려동물을 맡게 될 새로운 주인을 수익자로 하는 유언서를 작성하고 사육을 위한 신탁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관리 회사는 새로운 주인이 제대로 동물을 키우는지 신탁감독인을 두고 관리하는데, 새 주인이 반려동물을 사육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변호사, 행정사 등 감독인들이 사육 상황을 점검하고 감독하도록 한다. 이처럼 법률에서 정한 상속이나 증여가 아닌 신탁 형태로 반려동물을 반려인의 사후에도 케어할 수 있다. 하지만 수탁자에 다양한 반려동물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 펫신탁의 문제점은 펫신탁과 관련된 실무를 진행할 수탁자가 마땅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며 “현행법상 신탁업자만 수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금융 회사가 수탁자가 되고 있는데, 금융 회사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그러면서 “자본시장법상 수탁자가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에 비금융권인 반려동물 전문가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것도 어렵다”며 “개정안에서 이 부분을 반영하고 있지만, 업무 위탁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고 위탁자의 범위를 확대하거나 재신탁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각 신탁 유형에 따른 전문가들이 수탁자로서 온전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로펌의 변호사는 “반려동물을 포함한 신탁 제도 자체가 지금보다 더 개선 및 활성화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줄곧 은행과 증권 회사만 신탁의 수탁자를 전담하니 신탁 회사라 하면 으레 은행과 증권 회사를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탁의 원조인 영국과 미국에서는 로펌 등도 신탁의 수탁자로 될 수 있다. 더 다양한 시장 플레이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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