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박영주·이재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오는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상자산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최초의 금융규제 입법이라는 의의를 인정받는 반면, ‘이용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땜질식 입법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당 법안이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이 보완돼야 할까.가상자산의 주류 금융권 진입은 전 세계적 흐름이 됐다. 이미 캐나다, 독일, 브라질, 호주 등은 미국보다 앞선 2021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발행을 승인했고, 유럽연합(EU)은 지난해 4월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미카(Markets in Crypto Asset Regulation·MiCA)를 통과시켰다. 일본의 최근 행보도 두드러진다. 일본 의회는 지난 2022년 스테이블코인(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가치가 고정되는 가상자산)의 발행과 유통 관리, 자금 세탁 방지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의 ‘규제’와 ‘육성’ 사이에서 가상자산업법 제정에 속도를 내 왔다. 2021년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을 통해 최초로 규제 장치를 마련했다. 주요 내용은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 도입, 자금세탁 방지 및 투자자 보호 등이었다. 그러나 특금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지난해 ‘가상자산법 제정’ 논의에 들어갔다.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에서는 △점진적·단계적 추진 △동일 기능·동일 위험·동일 규제 원칙 △글로벌 정합성 등 세 가지 가상자산 규율체계 구축방향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용자 보호가 시급하므로 장시간 소요되는 국제기준의 정립을 기다리기보다 필요 최소한의 규제체계를 먼저 마련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지난해 6월 30일 가상자산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올해 7월부터 시행된다.
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가상자산 이용자 자산 보호 △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가상자산 시장·사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제재 권한 등을 담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 사업자의 고유재산과 고객 예치금의 분리, 이용자 위탁 가상자산의 인터넷 분리 보관(콜드 월렛), 해킹·전산장애 등 사고에 따른 책임 이행, 거래 기록 15년간 보존 등 이용자 보호 내용이 법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0일에는 ‘콜드 월렛 80% 이상 의무보관’ 등의 내용이 담긴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 각국은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산업 성장을 위한 물꼬를 터주려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알맹이’는 빠진 반쪽짜리 규제안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과연, 이번 법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득과 실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법무법인 태평양 박영주·이재규 변호사를 만났다. 박영주 변호사는 태평양 합류 전 금융감독원에서 약 8년간 근무하며 금융투자검사국, 법무실, 자본시장감독국, IT·핀테크전략국 등에서의 업무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 온 금융규제 및 자본시장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재규 변호사는 암호화폐와 토큰 및 블록체인에 관련된 법률 분야, 정책 및 기술적 이슈에 정통하다. 두 사람이 말하는 가상자산법의 의의와 한계점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가상자산 관련 문의 사례가 많은가요.
박영주 변호사(이하 박) 저는 과거에는 자본시장 관련 금융투자업에 관한 자문을 주로 수행했었는데, 가상자산 시장이 사실상 자본시장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최근에는 가상자산 사업자 관련 자문도 많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과 관련해 주로 자문하는 사례는, 자신이 영위하고자 하는 사업이 금융위에 신고가 필요한 가상자산 사업인지, 해당 사업이라면 설립 및 금융정보분석원(FIU) 신고 업무에 대한 자문을 구하시기도 하고, 가상자산 사업자 인수(매매) 관련 문의도 들어옵니다. 가상자산으로 발행하려고 하는 것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신 경우도 많습니다.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 금융당국 감독 및 제재 권한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어떤 점일까요.
(박)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세조종 및 미공개정보이용을 통한 위법행위가 만연해 선의의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규제가 없어 이러한 행위들이 계속 반복됐고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었죠. 가상자산법이 도입되면 가상자산을 이용한 위법한 행위들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가상자산법은 자본시장법에는 없는 ‘자기 또는 특수관계인 발행 가상자산의 거래 금지’, ‘임의적 입출금 차단금지’ 등도 추가해 이용자 보호 장치를 더 마련한 것이죠.
이재규 변호사(이하 이) 다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준수해야 하는 규제만 추가되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사업자들은 단순히 이용자 보호를 넘어서 회사가 수행하는 사업을 하려면 어떤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지와 같이 불분명한 규제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가령, 가상자산업에도 다양한 종류의 사업이 있잖아요. 보관업도 있고 가상자산 투자에 관한 자문 업무도 있고, 혹은 투자를 받아서 가상자산을 운용하는 사업도 있을 수 있는데 각각 어떠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그런 것들이 아직까지는 다 빠져 있는 상황이에요.
-실제로 이번 1단계 가상자산법은 이용자 보호를 위해 시급한 최소한의 내용만 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점들이 더 보완돼야 하나요.
(박)국회에서도 가상자산법을 통과시키며 향후 보완해야 할 사항 8가지를 부대의견으로 명시한 바 있습니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가상자산 발행 및 유통 과정에서의 이해상충 문제 개선 방안 마련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디지털 자산 정보 제공 통합 시세 및 공시 시스템, 사고 발생 시 입증책임 전환 규정 제정 방안 마련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가상자산 사업자 검사권 위탁 △가상자산 거래소 공통 상장 절차 개선 지원 등이 있죠. 무엇보다 제 생각에 1단계 입법이 가장 시급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들을 우선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행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가상자산 사업자가 어떠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세분화돼 있지 않거든요. 영위하고자 하는 업무 범위에 따라 필요한 인력이나 물적 설비 등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구체화가 돼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1차 적으로 이번 입법을 통해 이용자 보호 장치가 마련된 만큼, 2단계 입법에서는 가상자산 사업 발전을 위한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일단 기본적으로 이 법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너무 규제만 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세요. 이 법은 그야말로 이름부터 이용자보호법이잖아요. 사업자를 보호하거나 산업을 진흥하는 법이 아닌 거죠. 그래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기본법 또는 2단계·3단계 입법이 이루어져야 되는 상황이고,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요. 무엇보다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굉장히 많은데, 아직까지는 그중 가상자산 거래에만 사회적 관심이 높아서 금융위 차원의 규제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한 부처가 총괄할 수 없어요. 기술적 문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금융위 등 여러 부처의 협의가 필요하거든요. 한편으로 저는 한국이 인공지능(AI)보다 블록체인 기술에서 더욱 큰 잠재적 경쟁력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AI는 거대언어모델(LLM) 등 생성형 AI 분야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승자독식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반면, 블록체인 분야에서 메인넷을 만들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건 후발주자들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거든요. 상대적으로 LLM 모델에 비해 낮은 비용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향후 매우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기도 하죠. 금융위 관점의 규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부처 간 적극적인 협업이 필요한 때입니다.
-박 변호사님은 가상자산에서도 가상자산 시장조성자(MM)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가상자산에서도 시장조성자 역할이 가능할까요.
(박)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관상으로는 시세조종과 시장조성을 구분하기 어렵고, 그러한 행위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지, 공익적 차원에서 투자자들이 원활히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한 행위인지, 행위자의 내심의 의사를 확인해야만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시세조종 행위가 금지되는 상황에서 시장조성 행위를 했다가 시세조종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가상자산법에서 명시적으로 시장조성자의 행위를 정의하고 이에 대한 예외를 규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시적인 예외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시장조성 행위는 투자자들이 원활히 거래를 하고, 적정한 가격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자본시장에서도 오래전부터 제도적으로 운영돼 오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 운영할 경우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가상자산법상 불공정거래행위로 제재 또는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시세조종의 목적으로 행위했다는 등의 구성 요건을 입증해야 하므로, 실제로 공익적 차원에서의 시장조성 행위에 대하여는 시세조종으로 처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장조성자가 시세조종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소명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우선 가상자산 거래소와 시장조성자가 분리돼야 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만 시장조성 행위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자본시장 제도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장조성자 제도를 참고해 구체적인 시장조성 방법을 사전에 정립하고 해당 방법으로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관련 법 제도가 명확한 해외 사례들이 있나요.
(이)EU가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에 관한 종합적인 규제를 규정한 법률인 ‘미카’를 제정해 시행했고, 일본도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일본은 경제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웹3.0’ 기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가상자산 관련 제도 전반을 정비했습니다.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좀 더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발판을 다지고 정책 지원에 나선 것이죠.
동시에 일본은 웹3.0 산업 발전과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규정도 마련했어요. 이를 위해 2022년 6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유통 확대, 효과적인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는 좀 더 빨리 나아가고 있죠. 우리나라도 해외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보고 구체적인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때입니다.
-동시에 가상자산은 소득세법 제21조(기타소득)에 의해 2025년 1월 1일부터 개인 납세자에 대해 과세될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의할 점이 있다면요.
(박)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자산 과세는 2022년 12월 소득세법 개정에 따라 오는 2025년 1월 1일 양도 및 대여분부터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하게 되며, 250만 원이 넘는 소득액에 22% 단일세율을 적용합니다. 연 1회 직접 신고·납부해야 하는 만큼 누락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손익계산을 위해서는 취득가액 계산이 필요한데,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거래의 경우 이동평균법에 따라 계산해야 하는바, 거래량이 많게 되면 이를 정확하게 산출하고 신고하는 데 어려울 수 있느니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