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가상자산 연착륙을 위한 조건은

[big story]판 바뀐 가상자산, 투자 레벨 업
전문가 4인의 직설조언

정부 및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 가상자산 관련 각종 규제 해소를 공언하고 나선 가운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시장 연착륙과 성장을 위해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선진국 사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각 정당에서는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거래할 수 있는 금융 상품,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해 제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장밋빛 청사진이 될지 아니면 총선 이후 부족한 점을 가다듬어 실행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가상자산 관련 권위자로 명성이 알려진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임병화 성균관대 핀테크융합전공 교수, 박성준 앤드어스 블록체인연구센터장(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책임 교수), 박용범 단국대 SW융합대학 교수(현 한국블록체인학회장) 등 전문가 4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임병화 성균관대 핀테크융합전공 교수는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제정된 전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단독 법안인 가상자산 시장에 관한 법률(MiCA·미카)은 가상자산의 발행과 거래, 공시의무, 인증 및 관리·감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시장의 건전성과 금융 안정성을 포함해 가상자산의 혁신과 공정 경쟁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명확성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디지털 자산기본법 제정에 있어 단순히 미카의 법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국내 기존 법률과의 정합성이 있는 법적 환경 마련이 중요하다”며 “가상자산이 재산적 가치를 지닌 금전에 포함돼야 국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계기로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호황기를 맞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하루 거래량이 코스피 하루 거래대금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수 없는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비트코인 선물 ETF 투자량을 급격하게 늘리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러한 가상자산의 글로벌 투자 환경과 국내 투자 수요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국내 관련 법제화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비트코인은 사실 초기 등장부터 기존 화폐의 대체 가능 여부나 내재가치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2009년 1월 처음 비트코인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시작된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은 화폐의 기능이나 지급 결제 수단의 논란에서 벗어나 금과 같은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러한 과정에서 블랙록과 같은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의 대상으로 가치를 인정하고,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현물 비트코인 ETF 발행 승인을 SEC에 요구해 왔다”며 “마침내 올해 1월 SEC의 발행 승인과 함께 비트코인의 금융 자산 시대가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 시장의 변화도 감지된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글로벌 비트코인 ETF 시장은 현물 ETF 시장 위주로 재편됐고 3월 들어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하루 자금 유입 규모가 10억 달러가 넘어가기도 했다”며 “최근 영국의 금융당국은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증권(ETN: 기초지수 변동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증권회사가 발행한 파생결합증권으로 거래소에 상장되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만기가 있는 증권)의 발행을 인정하겠다고 밝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금융기관들의 현물 비트코인 보유는 기정사실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기관의 국제 경쟁력 확보나 수익성 개선에 관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 증가에 따른 국내 투자자들의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국내 비트코인 기반의 금융 상품 등장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며 “글로벌 가상자산 관련 제도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국내 건전한 투자 환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마련돼 있는지 개선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국내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2020년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이하 특금법)과 2023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이 대표적”이라며 “특금법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와 사업자의 요건과 사업 범위 등을 명확히 했고, 가상자산 관련 1단계 법안인 가상자산법에서는 이용자의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등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자산 발행과 공시 등의 시장 질서를 담은 2단계 법안은 국회가 약속한 만큼 총선 이후 논의가 다시 시작될 예정”이라며 “디지털 자산기본법이라 불리는 2단계 법안은 국제표준에 맞는 가상자산 관련 규율 체계를 갖출 좋은 기회로서 국내 가상자산법이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만큼 2단계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성과 금융 안정성 확보.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가상자산 사업자의 등장이 가능하도록 법적 명확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가상자산이라는 법적 용어도 국제표준에 맞게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럽의 미카, 일본의 금융상품법에서는 가상자산을 ‘암호자산(crypto-assets)’이라고 하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디지털금융자산법에서는 ‘디지털금융자산(digital financialasset)’이라고 정의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김치 프리미엄과 관련한 규제 정비와 가상자산의 잠재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더불어 임 교수는 “글로벌 가상자산 규제 환경 변화를 고려해 국내 이용자와 관련 사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내 가상자산 법적 환경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금융 산업에 준하는 당국의 규제와 산업 육성 정책이 필요하며, 그림자 규제 해소를 위해서는 법인 및 기관투자 허용과 가상자산공개(ICO) 허용, 1은행 1거래소 원칙 탈피 등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우선 법인과 기관 투자의 경우 정부 기관을 우선적으로 개방해 세금체납자나 불법행위 등으로 환수한 가상자산에 대한 매각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후 공공기관, 상장법인, 국내 법인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건전한 투자 문화를 조성해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며 “ICO나 가상자산거래소공개(IEO)의 허용으로 국내 자금과 양질의 프로젝트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현재 1은행 1거래소 원칙의 탈피로 은행과 거래소의 자율성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업계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법 시행 이전에 시장 질서 교란 행위나 시세 조종 등의 행위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체계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며 “불법적인 자전 거래, 폰지 사기, 러그풀 등과 같이 가상자산을 악용한 불법행위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감시 체계의 구축으로 법률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가상자산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당국과 업계가 공통으로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상충적 요소를 해소하는 역할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가상자산 생태계는 발행 재단, 거래소, 보관업자, 자문업자, 평가업자 등 다양한 역할의 시장참여자가 존재하므로 금융당국과 업계는 충분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참여자들의 적절한 역할과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다양한 이해상충적 행위와 관련된 리스크 등을 사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아울러 가상자산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자율규제기구의 제도화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자율규제기구의 시장 감시 기능과 업계 전반에 대한 분석 및 연구는 가상자산의 제도권 안착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황 교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용자의 자산 보호를 중심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금융당국의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감독 등을 규정하고 있다”며 “법 시행으로 일정부분에 대한 불확실성의 해소됐으나 법 이행을 위해 필요한 시장 감시 기구의 부재와 법 시행으로 가상자산 산업과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상자산의 제도권 안착은 국내외 투자자들의 투자를 장려하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취업 기회를 확대해 여러 분야에서의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제도권에 안착 된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산업의 혁신을 촉진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과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와 연금 수익률 개선 등 경제와 산업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앤드어스 블록체인연구센터 대표(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 책임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 공약으로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 때 나온 디지털 자산 관련 공약의 이행 현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이에 더해 현재의 전 세계의 시대적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디지털 자산 관련 정책을 국가 전략 정책으로 선택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디지털 자산 관련 콘트롤타워(예를 들면 대통령 직속 디지털 자산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며 최소한 국무총리급이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전술적 측면에서 추진하던 정부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재편해야 한다”며 “특히 가장 기본적인 사안부터 재검토 및 재정비를 시작해야 하고 그 첫 시작은 현재 ‘특금법’에 정의된 가상자산(디지털 자산) 개념부터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금법’에서 이야기하는 가상자산의 경우 블록체인 특성을 가지지 못하고 범위가 너무 넓어 디지털 자산 시장의 혼란을 필연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것.
박 대표는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사안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규제 위주의 정책 방향을 디지털 자산 기반 산업 생태계 활성화 및 디지털 자산 기반 창업생태계 기반 조성을 금융당국이 아닌 정부 부처의 역할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며 “현재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위치하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건전한 디지털 자산 시장을 위해 조속한 디지털 자산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안별 정책적 추진이 아닌 시대의 흐름인 블록체인 혁명과 국내 디지털 자산 경쟁력 제고 및 블록체인 세상을 선도하기 위한 디지털 자산의 전략적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며 “이미 세계 각국은 디지털 자산 관련 균형적 정책을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을 매우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장의 역기능 방지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장에서의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순기능적 측면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용범 단국대 SW융합대학 교수는 지난 2022년부터 제4대 한국블록체인 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설립한 한국블록체인학회는 블록체인의 역할을 활성화 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과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재 국내는 디지털 사회의 변혁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고 안전한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가상자산의 본질적인 가치를 따져보는 동시에 새로운 수단에 따른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여야가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단계적 허용, 가상자산발행(ICO) 양성화, 토큰증권(ST) 법제화,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입법) 제정 등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술적 문제는 등한시되고 있다”며 “현재 정부와 여·야 정책에는 가상자산 본질의 가치를 위한 지침이나 방향은 희미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수단에 따른 미래 준비는 기술 발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 불리는 디지털 기술이 미래 금융 시스템을 대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를 이용한 유통 시스템 진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현 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내는 가상자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폐’나 ‘현금’이 주는 상징성이 없다”며 “미국이 디지털 자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허구의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은 ‘미래를 위한 기술’이 아닌 투자 상품으로 가치와 거래를 위한 법률과 제도만 준비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전에 없던 속도를 경험하고 있다”며 “앞으로 생길 예측하지 못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디지털 사회로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사회 및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을 이해하는 것과 같이 이들에게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교환의 편리성을 극대화하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중앙은행을 뜻하는 ‘센트럴뱅크(Central Bank)’와 디지털화폐(Digital Currency)를 합친 용어)가 준비되고 있다”며 “사회 구성원들이 디지털 사회의 변혁기를 맞아 철저하고 안전한 준비를 하도록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며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정유진 기자 사진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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