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부가가치세…디지털 시대 대안 부상

현재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거대한 키워드는 디지털화, 글로벌화, 고령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세 제도에도 변화가 필연적이다. 다가올 4차 산업시대를 풀어나갈 조세 시스템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세이브 택스]

사회의 물적 토대(생산 수단과 방식, 또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생산 및 소비 관계)가 변하면 경제적 지각 변동과 정치, 법·제도, 문화 등을 아우르는 상부구조에도 단층이 생겨서 변혁이 온다. 그리고 이는 다시 경제적 토대에 영향을 미친다.

조세 시스템은 국가가 기능할 수 있는 재정의 근간인 점에서 상부구조에 해당하면서 각 경제주체 내지 거래 활동으로부터 수입을 거두기 때문에 경제적 토대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즉, 조세 시스템은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치적 상부구조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으로서 법적, 사회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과세 체계가 경제적 제반 환경과 큰 괴리가 없어야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경제 패러다임 변화, 기존 체계 한계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화가 전 영역에서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으로 서비스 산업 부문은 중대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글로벌화로 그 파급효과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또한 합계출산율 0.8명의 속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는 한국 경제 지형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경제 토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대한 전환 속에서 조세 체계도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압박에 맞닥뜨리고 있다. 디지털화 및 글로벌화는 영업이 이루어지는 곳에 물리적인 시설(공장·상점 등)을 두지 않고서도 인터넷 연결만 있으면 원격으로 전 세계 어디서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공급 장소 내지 공급자의 거주지국 중심으로 과세권을 두는 기존 조세 시스템으로 인해 정작 서비스의 소비 및 지출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과세가 되지 않는 괴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복지 재정 지출 증가로 한국 사회는 재정 고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조세가 소득 분배를 악화시킬 때의 소득역진성 문제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는데, 저출산으로 인구 축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는 조세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세대역진성’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가가치세 중심의 거대한 전환 필요

이 같은 재정 고갈 문제에 대한 해법 중 하나로 증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화, 글로벌화 및 고령화 추세에 비추어보면 다음의 특성을 담고 있는 부가가치세가 그 변화의 요구를 따라가는 데 적합할 수 있다.

▲ 개별 거래 단위 및 거래 시점 과세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 각종 거래 활동들은 전산화돼 데이터로 이루어질 것이다. 재화, 용역의 개별 공급 거래를 과세 대상으로 하는 부가가치세는 디지털 방식의 과세 체계가 고도화되면서 각 거래에 연동돼 더 정확하고 빠르게 과세할 수 있다. 탈중앙적, 유동적 사회에서 ‘거래’ 기반의 과세가 조세 징수의 안정성을 위해서도 중요해질 것이고 디지털화는 이를 구현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 소비지국 과세 원칙
글로벌 시대에 공급 사슬은 더욱 유동화 및 전산화돼 국경을 넘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최종 소비 장소는 그만큼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AI를 통한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소비 능력’이 있는 마켓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공급지 중심에서 마켓(소비지) 중심으로 과세하려는 흐름은 이와 같은 경제 환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부가가치세는 궁극적으로 최종 소비에 대해 과세하는 점에서 이와 같은 트렌드에 부합한다.

▲ 낮은 세대역진성
소비 활동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 세대를 가리지 않고 늘 이루어진다. 이러한 소비 활동에 과세하는 부가가치세는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구분 없이 그 소비에 공평하게 과세한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재정 고갈을 피하기 위해 공공보험료나 소득세(특히 근로소득세)를 증세하는 것은 마른 수건마저 짜는 형국이 돼 역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경제적 토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대한 전환은 조세 시스템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마켓 위주의 과세권 배분’ 및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두 기둥으로 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BEPS(세원잠식과 소득이전) 2.0’도 그 변화의 물결 중 하나다.

‘국외사업자의 용역등 공급에 대한 특례’(부가가치세법 제53조)와 ‘전자적 용역을 공급하는 국외사업자의 사업자 등록 및 납부 등에 관한 특례’(부가가치세법 제53조의2)는 디지털화 및 글로벌화에 조응하기 위한 부가가치세 시스템의 진화를 보여준다. 이를 시작으로 부가가치세의 디지털 고도화, 소비지국 과세 원칙의 확대, 세율의 탄력적 인상 등 그 체제적 변화를 전망한다.

글 이호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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