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 위기 ‘상속세 인하’…과세 방식 전환·공제 확대에서 해법 찾아야
입력 2024-05-02 06:00:27
수정 2024-05-02 12:34:22
현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 볼 수 있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했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들 가운데 상속세 개편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이슈]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급격히 나빠진 기업의 경영 환경과 국민들의 경제활동 여건을 개선하고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해 자본시장, 기업 투자, 소비 등 전방위적인 감세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상속세와 관련해 수차례에 걸쳐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상속세 부과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변경하는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상속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고, 재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상속세 과표구간을 조정하고 세율을 낮추는 등 경제 현실에 맞게 상속세제 전반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시돼 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오는 7월 유산취득세와 관련된 연구용역의 결과와 상속세 및 증여세의 개선 내용을 반영한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세 인하에 부정적인 야당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이상 개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야당은 상속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상속세 개선안에 대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과세 대상의 소득을 파악하는 과세 포착률이 50%에 불과하므로 과세 포착이 용이한 상속세까지 감세하면 세수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 그 근거 중 하나다.
일견 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상속세는 단순히 특정 집단을 향한 감세라는 문제를 넘어 개인의 경제활동과 기업의 존속, 더 나아가 국가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오히려 과다한 상속세로 인해 기업승계에 실패해 폐업하거나 해외로 매각될 수 있고 자산가의 해외 이주로 높은 담세 능력을 보유한 법인 혹은 개인이 감소하고, 중요 자산이 해외로 유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의 이민 전문 기업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2023년 고액자산가들의 해외 이민 사례에서 대한민국은 2022년보다 2배 증가한 수치를 기록하며 7위로 올라섰다. 1위를 기록한 중국이나 2위를 기록한 인도보다 인구 1인당 해외 이민 사례가 더 높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고액자산가들의 해외 이주 수치를 가볍게 치부할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상속세가 이민을 고민할 만큼 과도한가. 안타깝게도 필자의 의견은 ‘그렇다’이다. 납세자의 상속세 부담은 크게 상속세율, 상속세 부과 방식, 누진 과표구간, 공제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최고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50%에 달하며,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최대주주 보유 주식은 60%로 할증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일본보다도 높다. 상속세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상속재산 전체를 두고 누진 과표구간을 정하는 유산세 방식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상속인들의 납세 부담이 가중된다.
늘어나는 코리아 엑소더스
또한 상속세 계산 과정에서 공제되는 내용이 한정적이고 공제되는 금액도 적어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 나아가 상속세를 계산할 때 상속인에 대해서는 10년 전, 상속인이 아닌 자에 대해서는 5년 전까지 이루어진 생전증여도 합산해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상속 이전에 발생한 증여에 대해서도 높은 상속세율에 따른 추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상속세제는 상속세율, 상속세 부과 방식, 공제 금액, 가산되는 사전증여 범위 등 모든 면에서 납세자에게 불리하다. 대한민국이 전체 조세 수입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이 OECD 회원국(평균 0.42%) 중 압도적 1위(2.42%)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을 승계하기 위한 상속도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상속과 동일하게 과세하므로, 상속인들은 기업 가치의 50% 내지 60%에 상당하는 상속세를 개인의 사재로 납부해야 한다. 상속인들이 보유한 자산은 회사의 주식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상장 기업의 주식은 환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영권이 포함되지 않은 지분이라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쓰리세븐, 락앤락, 유니더스 등 다수의 비상장 중소·중견기업이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회사를 자신의 분신과 같이 생각하며 키워 온 창업주나 이를 보면서 성장한 상속인들이 경영하지 않고 제3자에게 매각된 경우 회사의 운명이 순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락앤락은 홍콩계 사모펀드에 매각된 후 성장세를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상속세에 막혀 매각된 기업들이 과거처럼 국민경제의 구성원으로서 고용을 창출하고 지속적으로 각종 세금을 납부하면서 납세자로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유산세→유산취득세 변경 가능할까
우리 상속세제는 2000년에 상속세율과 누진 과표구간이 조정된 이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고 공제 금액도 그대로다. 그 사이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2000년 2억 원에서 최근 20억 원을 훌쩍 넘어 10배 이상 올랐고,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규모의 상속재산을 남긴 피상속인은 2000년 1389명에서 2022년 1만5760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상속세제가 2000년에 멈춰 있는 동안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화했고, 2000년을 기준으로 상속세 납세의무자가 아니었던 국민들도 이제는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당시 물가를 기준으로 책정된 상속세 누진과세 기준으로 인해 실질적인 상속세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겠다는 목적으로 당장 상속세율을 조정하는 것은 국민 감정이나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상속세 부과 방식이나 공제를 늘려 간접적으로 실질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현행 상속세제는 피상속인이 남긴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상속인이 여러 명일 경우 각 상속인이 실제로 상속받은 금액이 아닌 상속재산을 합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누진세율이 적용되므로 상속인에게 불리하다. OECD 회원국 중 ‘유산세 방식’으로 과세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덴마크, 영국, 미국 4개국밖에 없는데, 덴마크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15%에 불과하고, 영국은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미국은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속재산 합계 약 160억 원(배우자 상속을 고려하면 320억 원)까지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유산세 방식으로 과세하더라도 대한민국과 같은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변화는 상속인이 상속분에 상응해서 정당한 상속세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부자 감세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야당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 공제 확대는 형평의 문제
다음으로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공제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의 사망 전에 이혼하면 혼인 기간 중에 형성한 재산을 분할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자산 이동에 따른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병상에 누워 있는 상대 배우자의 마지막을 지킨 배우자는 상속을 원인으로 재산이 이전될 경우 최고 50% 내지 60% 상당의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는 형평에 어긋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12개 국가는 배우자에 대해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일본도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배우자에게 상속되는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공제 금액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개정이 필요하다.
상속세를 개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산가들에 대한 감세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상속세는 더 이상 고액자산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세금이 아니며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세대도 부담할 수 있는 세금이 됐다. 현행 상속세제는 20년 전의 물가와 시대 상황을 기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현 시대에 맞지 않고 납세자에게 지나치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기업이나 고액자산가들이 해외로 이주할 유인을 제공해 장기적으로 국가 조세 수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실제로 싱가포르, 미국 등 많은 국가들이 상속세를 비롯한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기업과 자산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상속세의 개편은 정치 논리를 넘어 기업과 자산가가 대한민국의 과세를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현상을 방지하고 자국 내에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관점에서 깊이 논의돼야 할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글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