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계절의 여왕, 푸른 여신의 시즌이다. 녹음이 짙어지고 땅의 수분도 충만해져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신철의 그림은 사계절 중 유난히 설렘을 주는 5월에 참 제격이다.
[ARTIST] 김윤섭의 바로 이 작가 - 신철“그림을 보는 이가 어린 시절 순수했던 때로 잠시 되돌아가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길가에서 만난 예쁜 소녀나 연인, 서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 혹은 중년의 남녀도 행복을 느끼는 온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행복한 순간을 옮깁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지닌 순수한 본성을 순수한 붓질에 담으려고 애씁니다.”
신철은 늘 “진정성 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신뢰받는 화가로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한눈팔지 않고 그림에 정직한 작가로서 바라는 꿈이다. 작품 속 단발머리 소녀는 이름 모를 소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누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의 상처받은 모든 사람을 위로해줄 이상 속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로 보이는가 혹은 떠오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제각각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와닿은 자신만의 주인공을 함께 그려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그의 삶도 크게 요동쳤다.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했던 어머니는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일터에 내몰렸다. 어린 신철도 어쩔 수 없이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런데 그곳의 이종사촌 누이들마저 녹록지 않은 삶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찍이 직업전선으로 떠밀린 이종사촌 누이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비롯해 희생적인 삶을 강요받는 ‘숙명적 여성의 삶’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엔 남성이 주인공인 시대였다. 여성은 어디까지나 조연에 그쳤다. 그러나 빛나도록 눈부신 청산도 풍경을 배경으로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단발머리 소녀들, 적어도 그에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주인공이었다. 그녀들은 긴 세월을 넘어 지금도 화면 속에 남아 정겨운 미소를 건네고 있다. 더 이상 어둠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멋진 남자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듬뿍 받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 과년한 나이에도 단발머리를 고집하며 순수했던 추억을 소환해냈다.
“내 그림을 보고 집에 가서 혼자 키득키득 웃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보람이 느껴져요. 유치한 어린애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 키치(kitsch) 어린 표현 속에 담긴 ‘어른을 위한 동화적 메시지’를 알아봐주기 때문이겠죠. 간혹 그림 속 주인공 모습이 자신이라고 서로 우기는 장면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오래전 한 병원 로비의 갤러리에서 전시 중 어느 환자분이 ‘내 남편이 (그림 속) 이 여자 때문에 바람났다’며, 다른 사람들 못 보게 매일 그림 앞을 가리던 에피소드는 언제나 미소 짓게 합니다.”
신 작가의 작품들은 그림보다 이야기가 먼저 보인다. 워낙 간단명료한 화법(畫法)을 사용한 덕분이다. 군더더기 없이 마음속의 이야기를 직설 화법(話法)으로 건넨다. 그러니 보는 이도 짧은 시간에 작가의 의중을 알아챈 후에 그림의 여러 조형적 요소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아크릴 물감 특유의 맑고 선명한 색조로 경쾌한 기운을 북돋아주는 느낌을 전한다. 굳이 구상이니 비구상이니, 회화적 장르가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보이는 그대로의 이야기 구조로 교감할 수 있다는 속성은 매우 큰 장점인 셈이다.
신철 그림의 전시 가격은 10호(53×45.5cm) 500만 원, 80호(145.5×112.1cm) 3500만 원, 100호(162.2×130.3cm) 4000만 원 선이다.
신철 작가는 1953년생으로 원광대 미술교육과, 홍익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이후 50여 회의 개인전을 통해 <기억풀이> 연작을 선보이고 있으며, 수백 회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글 김윤섭 예술나눔 재단법인 아이프칠드런이사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