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부동산 PF 정상화, 환골탈태 가능성은

또다시 부동산 PF 위기다. 정부는 뼈를 깎는 부동산 PF 정상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 부동사 PF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어떤 조치들이 뒷받침돼야 할까.

[포커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여의도 주택건에서 열린 '금감원, 부동산 PF 정상화 추진을 위한 금융권·건설 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제

우리나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위기설은 지난 2022년 하반기 이후 끊이지 않으며, 한국 경제의 뇌관이자 위기의 진원지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가 2011년 부동산 PF발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문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 중인 상황에서 블룸버그는 올해 4월과 5월 한국 부동산 PF 부실이 가져올 경제 및 금융 시장에 대한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과 부동산 PF에 내재된 고위험·고수익 속성이 한국에만 국한된 사항이 아님에도 해외 언론이 국내 부동산 PF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은 보다 냉정하게 국내 부동산 PF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5월 13일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옥석 가리기를 통한 연착륙에 초점을 맞춰 부동산 PF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PF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시장참여자의 책임 있는 자세와 옥석 가리기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세한 시행사가 높은 레버리지 활용

부동산 PF는 금융기관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발생 가능한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이다. 부동산 PF는 담보를 따로 확보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사는 개발 계획부터 프로젝트 사업성을 엄격히 심사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고위험·고수익’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부동산 PF 고유의 리스크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연쇄적 자금조달과 상환 구조, 영세한 시행사의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사업 확대, 제2금융권의 적극적 시장 참가를 통해 부동산 PF 리스크가 실물경제와 부동산 시장 및 금융 시장과 복잡다기하게 연계돼 있다.

국내 부동산 PF는 자본력이 영세한 시행사가 높은 레버리지를 써서 사업을 추진하고, ‘브리지론-본 PF-수분양자의 자금’ 간 연쇄적 대출과 상환 구조를 지닌다. 시행사는 총사업비의 5~10%의 자기자본을 투입하고 나머지 90~95%는 흔히 ‘브리지론’으로 불리는 대출을 통해 토지 구입과 인허가를 진행하며, 사업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금리로 제2금융권으로부터 조달한다. 착공과 공사 과정에서 토지 담보로 본 PF 자금을 빌려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선분양을 통해 수분양자로부터 중도금 등을 받아 공사비 등을 충당한다.

이에 브리지론에서 본 PF로의 전환이 순탄하지 않거나, PF 사업장에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행사의 영세성은 자연스럽게 제3자의 신용 보강으로 이어진다. 외환위기 이후 시공과 시행이 분리됐다고는 하나 시공사가 연대보증이나 책임준공 등의 방식으로 개발 사업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저축은행 등이 브리지론 중심으로 대출을 확대했으며, 증권사는 유동화증권 발행 등으로 추가 수익원을 마련하되 지급보증을 한다. 2023년 말 부동산 PF 유동화증권 잔액은 42.8조 원으로 이 중 74%가 PF-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등 단기물로 구성돼 차환 발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매입 약정 등을 체결한 증권사가 이를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금융권이 사업 다각화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PF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결과 2020년 92.5조 원이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2023년 135.6조 원으로 3년 만에 46.6% 증가했다. 금융권 연체율은 2020년 말 0.55%에서 2023년 말 2.7%로 높아졌다.

이 중 증권 업계 연체율은 13.73%로 가장 높고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채도 각각 6.94%, 4.65%를 기록했다. 특히,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는 브리지론 및 비거주용 부동산에 대한 익스포저가 높아 질적 구조가 취약하다. 2023년 7월 새마을금고는 PF 부실 우려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를 겪었으며, 저축은행은 2023년 555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건전성과 수익성이 악화됐다.

중소형사 증권사의 채무보증이나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이하 책준형) 토지신탁 관련 리스크도 배제하기 어렵다. 증권사의 PF 채무보증은 2024년 3월 말 기준 약 16.9조 원으로 이 중 약 89%가 매입확약형이기에 PF 사업의 유동성 위험 및 신용 위험까지 부담해야 하며, 상대적으로 중후순위 채권 비중이 높은 중소형사의 채무보증은 손실 위험이 높다. 부동산신탁사의 책준형 토지신탁은 공사비 급등으로 갈등을 빚는 사업장 속출과 신탁계정대 증가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 책임준공에 따른 부실 위험으로 각종 소송과 손실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질서 있는 연착륙 해법 찾는 정부

2022년 하반기 이후 불거진 부동산 PF 문제의 선제적 대응을 위해 정부는 다각적으로 방안을 마련했다. 2022년 하반기 ‘50조 원+α 프로그램’을 통해 건설사·증권사의 유동성 불안을 완화하고, 양호한 사업장에 대해 사업자 보증 확대 등 자금을 공급했다. 2023년 3월 이후 ‘PF 대주단 협약’에 따른 사업 정상화 지원과 건설사·PF 사업장에 대한 정책금융 확대 외 사업장별 PF 채권 인수와 사업·자금 구조 재편을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가 5개 위탁운용사와 공동으로 총 1조 원 규모의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펀드(캠코펀드)’를 조성·운영했다. 또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기업구조조정(CR) 리츠의 재도입, 건설사에 대한 대출보증 등도 보강하고, 금융 회사가 자체적으로 PF 사업장을 경·공매로 매각하도록 시장 자율적인 구조조정도 유도했다.

그러나 향후 상당 기간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제2금융권의 연체율이 상승 중이며, 사업성이 낮아 사업 추진이 어려운 사업자에 대한 정리가 지연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5월 13일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부동산 PF 옥석 가리기가 이루어지도록 PF 사업장의 사업성 평가 기준을 개편하고, 이에 따른 정상 사업장에 대한 자금 공급 강화와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의 재구조화 및 정리 방안을 추가로 마련했다.


PF 사업장의 사업성 평가 대상은 본 PF와 브리지론 외 토지담보대출과 채무보증 약정을 추가하고, 대상 기관에 새마을금고도 포함했다. 사업성 평가 등급 분류는 기존 3단계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해 ‘유의’ 사업장은 재구조화와 자율매각을, 사업 진행이 사실상 어려운 ‘부실우려’ 사업장은 경·공매를 통해 매각하도록 했다.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에 필요한 민간 자금 공급을 위해 상대적으로 자금력을 갖춘 은행, 보험사가 1조 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조성하고, 이는 경락자금대출, 무수익여신(NPL) 매입 지원, 일시적 유동성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자금 집행 제고를 위해 캠코펀드에 우선매수권(캠코펀드가 PF 채권을 매도한 금융 회사에 추후 PF 채권 처분 시 재매입할 기회를 부여)을 도입하고,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업권에 총 4000억 원을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금융 회사 스스로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을 체계적으로 재구조화·정리할 수 있도록 PF 대주단협약의 개정 및 금융 회사의 PF 채권 경·공매 기준도 도입하도록 했다.

한편 정상 사업장에 대한 자금 공급과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도 병행했다. 사업성이 충분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브리지론의 본 PF 전환에 대해 PF 사업장 보증을 확대하고, 비주택 PF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PF 사업자 보증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금융 회사가 부실 사업장에 신규 자금 지원 시 한시적으로 자산 건전성 분류를 ‘정상’까지 분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한시적 규제 완화를 비롯해 PF 사업장 매각 및 신디케이트론 지원 등으로 인한 손실 발생 시 금융 회사 임직원 면책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곪은 상처 도려내는 용기 필요

금융권 대출로 진행되는 부동산 PF 사업은 전국 3000여 사업장, 총 230조 원 규모로 정부가 제시한 평가 기준 적용 시 약 10%(23조 원)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경·공매 물량이 한꺼번에 나와 매각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충당금 강화로 제2금융권 등 일부 금융사의 추가 손실이 있을 우려도 있다. 그러나 부실을 정리하지 않는 이른바 ‘버티기 모드’는 개별 기업 입장에서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전체 시장 차원에서 결국 최악의 선택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공생을 위해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적 비용과 시장 충격은 최소화하되, 일관된 정책 기조에 따라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

부동산 PF 정리 기준이 구체화됨에 따라 부실 위험에 놓인 이해관계자들은 PF 사업장에 대한 정밀한 사업성 평가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진단해야 한다. 개편된 사업성 평가 기준 재분류에 따라 부동산 PF 사업장의 수, 사업 형태와 금융 구조, 채권자 권리관계 등과 법률 구조, 재무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또는 그룹과 연계된 PF 사업장의 사업성을 사전적·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에 기초해 사업성 제고 가능성, 금융 비용, 후속 투자 자금 유치 가능성을 염두해 사업장의 정상화가 가능한 경우, 후속 투자 및 리파이낸싱 구조를 재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성이 낮은 경우 경·공매, 재구조화·사업장 매각, 사업 정상화 방안 등 다양한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높은 금융사와 건설사는 PF 사업장 평가와 실사에 기초해 PF 회수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산정, 유동성 관리와 충당금 적립 등 건전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지역별·물건별 공실률과 분양률에 대한 현장 파악을 통해 실체를 파악해야 하는 만큼 실사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의 경우 선제적 부실 사업장 정리 차원에서 사업장 특성에 따라 PF 사업장 매입 후 추진 가능한 사업 정상화 계획을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등 보다 적극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또한 건전성 개선 관점에서 PF 채권 외 담보물 매각, 사업권 매각도 검토할 수 있으며, 필요 시 사업 전반의 재조정도 고려해야 한다.

2024년 하반기 집중된 본 PF의 만기 도래와 PF 사업장 정리가 본격화하면 시장 내 PF 관련 매물의 증가가 예상되는바, 부실채권(NPL) 매입사 등은 위기 속에서 사업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PF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주택 시장의 안정화와 PF 시장 내 전반적 제도·관행이 개선돼야 하며, 이해관계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더욱 요구된다.

김정환 삼정KPMG 기업부동산본부 파트너·노승환 삼정KPM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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