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CIO들의 하반기 전망…“유동성 정점, 조정기 온다”

월가의 구루들이 올해 하반기 경제 및 시장 전망을 내놨다. 지난 6월 4일 미국 뉴욕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 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4’에서다. 이들은 하반기 미국 증시가 더 오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또 에너지, 보안, 헬스케어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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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금융가 상공. 사진=한국경제


글로벌 경기와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하며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과 실업률 등 다른 지표는 악화하는 모습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불투명한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향방도 가늠하기 쉽지 않다.

6월 4일 미국 뉴욕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 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4’에서 글로벌 투자 회사의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 등 월가의 구루들은 올해 하반기 경제와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놨다. 이들은 하반기 미국 증시가 더 오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투자금이 미국 주식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유동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에너지, 보안, 헬스케어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라고 조언했다.

엔비디아 독주하는 M1의 시대

이날 참석한 CIO는 모두 연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5500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5월 5000선까지 밀린 S&P500 지수는 한 달 만에 5300선으로 치솟으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CIO는 “한국, 일본 등 전 세계 투자자가 미국 주식 시장으로 몰려와 인공지능(AI)과 인프라 관련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며 “미 증시로의 자금 유입은 계속되겠지만 앞으로 1년간 지수가 지금보다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했다. 스콧 글래서 클리어브리지 CIO도 “S&P500 기업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1배로 과거 평균치(16.5배)를 크게 웃돈다”며 “3~4개월 후 실적 영향으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증시가 조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6월 4일 미국 뉴욕 맨해튼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 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4’에서 니콜라스 갈라카토스 블랙스톤 라이프사이언스 대표가 매튜 페들리 블랙스톤 시니어 매니징 디렉터와 대담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글래서 CIO는 조정기가 올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로 대형주 편중을 들었다. 그는 “액티브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시가총액 상위 5위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영업이익 추정치를 살펴본 결과 내년엔 대형주의 30%가량이 횡보하고 매그니피센트7(M7) 이외 종목들의 경영 성과가 개선되면서 이들 기업 주가가 ‘아웃퍼폼’(초과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고점 논란이 불거진 엔비디아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AI에 대한 기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며 "M7이 아니라 엔비디아가 독주하는 M1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엔비디아의 성장률이 M7 중에서도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고금리에 수익을 낸 M6가 주춤한 사이 엔비디아 홀로 치고 나가는 장세가 펼쳐질 수 있다”고 했다. 글래서 CIO는 앞으로 떠오를 AI 수혜주로 소프트웨어 기업을 꼽았다. 그는 “반도체 등 하드웨어 기업의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AI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 이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美 기준금리 3%대 예상

월가 구루들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 2%대로 내려올 것이라는 미 Fed 예상과 달리 연 3%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4년간 Fed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한 에릭 로즌그렌 전 보스턴연방은행 총재는 “Fed는 올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장기적으로 연 2.6%(이하 중앙값 기준)까지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저는 연 3.4%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로즌그렌 전 총재는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지더라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시장 예상과 달리 장기적으로 기준금리가 많이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윤 CIO는 “월가에선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비하고 있고 하반기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 채권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보호무역 조치로 금리가 불안정해지고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로즌그렌 전 총재도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제한할 것”이라며 “두 후보 모두 국경을 닫아 이민자 유입을 막을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저가 중국산 제품과 멕시코 등에서 유입되는 값싼 노동력이 줄면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로즌그렌 전 총재가 꼽은 또 다른 물가 리스크는 에너지다. 그는 “AI 산업 발달로 전력 수요가 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 관련 쇼크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Fed가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2%로 잡고 있는데 이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로즌그렌 전 총재는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해당 목표치를 2%로 잡고 있어 당장 이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새 대통령이 나온다면 목표치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달러 가치와 관련해선 올해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윤 CIO는 “달러 강세는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6월 4일 미국 뉴욕 맨해튼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 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4’에서 발표하는 앤더스 페르손 누빈 CIO. 사진=한국경제


주식보다 채권, 종목은 에너지·안보 유망

월가 CIO들은 투자 유망 상품으로 채권을 꼽았다. 앤더스 페르손 누빈자산운용 채권 CIO는 “채권 투자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사모신용과 공모채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며 채권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금리 인하 시점이 불확실하지만, 현재보다 금리가 내려갈 것은 명확하다”며 “글로벌 채권 시장의 수익률은 굉장히 매력적이며 글로벌 경기가 둔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채권으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르손 CIO는 사모신용과 사모대출 등 전통적인 채권에서 벗어나 다양한 투자 옵션을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모신용과 사모대출은 공공, 민간이 변동금리를 활용해 투자 자산의 위험을 관리하고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어 좋은 투자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이 둔화하는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워져 투자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헨리 H 맥베이 CIO는 “지금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에너지, 보안, 헬스케어 등을 장기 투자 테마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190억 달러(약 710조 원)를 운용하는 KKR에서 글로벌 매크로 및 자산 배분을 맡고 있다. 맥베이 CIO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는 2400만 가구가 쓰는 양의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며 “5년간 에너지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많은 기술 기업이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며 “이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했는데 공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요금이 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물가가 지속되면 임금이 계속 오를 것”이라며 “인건비를 줄이려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기업이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맥베이 CIO는 “미·중 무역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분쟁 등으로 보안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 종목 중에선 대형 반도체주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성 조 골드만삭스자산운용 기술투자 공동대표는 “AI 시장이 챗GPT(ChatGPT)처럼 학습 중심에서 추론이 가능한 형태로 바뀌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기회가 생긴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도 크게 늘어 10년간 메모리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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