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 부활 이끈 ‘밸류업’…기업 체질 개선에 초점

하반기 밸류업 수혜주들의 2차 랠리가 시작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은 밸류업 정책에 힘입어 니케이 지수가 거품 붕괴 후 34년만에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지속성장과 중장기 기업가치 향상을 10년 넘게 추진해온 결과다

[마켓 리더의 시각]

지난 7월 10일 도쿄 한 증권사 시세판을 지켜보는 시민. 이날 일본 니케이지수는 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연합AP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과 관련해 이해관계자별로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방향은 맞지만 강제성이 없어 참여와 성과가 미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당 확대, 자사주 취득 등 주주 환원 확대를 유인할 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상속세, 법인세 등 세법 개정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주장 중에는 관점에 따라 일부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밸류업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도 눈에 띈다. 밸류업은 주가 부양이 아닌 ‘미래 예상 이익의 현재 가치 합’으로 정의되는 기업 가치의 향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 중인 밸류업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강조돼야 하는 것은 한국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일본 사례의 본질과 성공 요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검토다. 국내에서 제기되는 주장 중에는 일본 사례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 근거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가 부양 아닌 기업 가치 제고가 핵심

일본 밸류업은 2012년 12월 아베 내각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기원으로 장기간에 걸쳐 추진된 종합적인 정책의 결과물이다. 일본은 경기 침체와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았다.

아베노믹스의 성장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 2013년 6월 각의에서 결정된 ‘일본 재흥전략’이었다. 재흥전략은 일본 경제가 성장 동력을 되찾아 부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 경쟁력 강화, 투자 확대, 자본 효율화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실행 전략으로 기업지배구조 코드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일본이 도입한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향상을 통해 경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촉진하고,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기업가 정신을 제고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아베노믹스의 최고 어젠다였다.

최근 국내에서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에 대해 재계의 반발이 있는 것처럼 일본도 초기에는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해관계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이를 개선해 나갔다.

스튜어드십·기업지배구조 코드 ‘두 바퀴’

이와 함께 실질적인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기관투자가가 수탁자 책임을 다하도록 해 상장 기업에 대한 압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기업과 기관투자가 간 건설적인 대화를 중시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아베 내각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기업의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두 개의 바퀴’로 인식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했다.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정착하기 위해 금융청, 도쿄증권거래소 등 금융당국은 물론 법무성, 경제산업성 등 관련 정부 부처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이를 점검, 개선, 정착하기 위한 후속 회의도 꾸준히 개최했다.

2023년 3월 31일 도쿄증권거래소는 일본 상장 기업들에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인식한 경영 실현 대응’을 권고한 바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 밸류업 정책의 전부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일본 금융당국이 장기간 추진해 온 기업의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큰 정책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지난 2013년 12월 도쿄증권거래소 폐장식에서 벨을 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수상. 일본 밸류업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한 축인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도쿄증권거래소 권고는 상장 기업이 지속 성장을 달성하고 중장기 기업 가치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뿐 아니라 1배 이상인 기업도 포함해, 자본 비용을 상회하는 자본 수익성을 달성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천 방안으로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증대만의 대응 또는 일시적인 대응이 아니라, 연구·개발(R&D) 투자, 인적자본 투자, 설비 투자,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 경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구체적인 실행 프로세스로 현상 분석과 평가를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알기 쉽게 공개하며, 공개 내용과 이행을 기반으로 투자자와 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을 권고한다.

일본에서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한 노력은 장기간에 걸쳐 추진됐고, 그 결과 기업의 체질 변화를 포함해 다방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기업지배구조 코드 정착을 위해 노력한 결과, 이사회 내에 지명위원회, 보수위원회 등 기능별로 독립적인 위원회를 설치한 비중이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운용도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정책보유주식(일본에서 기업 간에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보유하는 주식)에 대해 보유 목적의 적절성과 경제성에 대한 검증을 실시하고, 적합하지 않을 경우 회사의 입장과 감축 계획을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 상장 기업의 정책보유주식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비영업자산이 수익 자산화되거나 주주 환원이 확대되며 자본 효율성이 향상됐다.

또한 회사의 자본이 경영진이나 이사회 보호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의 인수 방어 정책에 따른 자본의 비효율성이 점차 해소되며 자본의 효율성이 향상됐다.

상장 기업들의 이익 규모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추세적으로 성장하며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상승했다. 과거 글로벌 선진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인식됐던 일본은 기업의 체질 변화와 ROE 상승 등 실질적인 기업 가치 향상을 실현하면서 글로벌 자금도 급격히 유입됐다. 일본에 설정된 지속 가능 관련 글로벌 펀드 규모는 2014년 8400억 엔에서 2018년 231조9520억 엔, 2022년 493조6000억 엔으로 급증해 일본은 유럽,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지속가능펀드 시장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2024년 초 금융위원회가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내놓은 정책으로 상장 기업의 기업 가치 제고에 대한 노력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도 일본 사례와 마찬가지로 상장 기업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 공시, 이행하고 주주 및 투자자와 소통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 밸류업 정책은 세부 내용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언 등을 종합해보면 일본 사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현실에 맞게 기업의 지속 성장과 중장기 기업 가치 향상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 참석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하반기 기업 가치 제고 계획 주목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서는 매출과 이익의 지속 성장을 위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중장기 전략일 수밖에 없다. 신뢰할 만한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은 경영진 주도하에 현황 진단을 기반으로 수립된 중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또한 이행 평가가 전제되고 이행 평가를 반영한 계획 수정도 이어져야 한다.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의 내용과 계획의 신뢰성을 잘 분석한다면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던스 발표 이후 준비 기간이 짧아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이 매우 적다. 하지만 향후 준비 기간을 거쳐 2~3분기 실적 발표 시점을 전후로 대기업 중심의 관련 공시가 확대되고 중견기업으로도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시 확대는 상장 기업에는 체질 강화의 계기가 되고, 펀더멘털에 기반한 중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가치투자자에게는 기업 가치 선별 판단을 위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반기 이후 한국 주식 시장의 질적 변화를 기대한다.

이종승 IR큐더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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