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센티멘털 아닌 펀더멘털에 주목하라

샴의 법칙에 기초한 경기침체 공포가 지난 8월 5일 전 세계 증시를 뒤흔들었다. 2001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19 위기와 최근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마켓 리더의 시각]

미국 경기 침체 공포가 주가 폭락을 부른 지난 8월 5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사진 연합뉴스

경기 순환의 관점에서 최근 금융 시장의 관심사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인 것 같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유례없이 강한 경제 성장을 보여 온 미국 경제가 장기간 확장 국면을 보여 왔기 때문에, 다음 국면은 둔화와 침체로 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경기 순환 관점에서 볼 때 무리한 예측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 얼마나 깊은 정도로 경기가 약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베일에 쌓여 있다.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지표들 중에 실업률의 변화를 이용해서 측정하는 샴 경기침체지수(Sahm recession indicator)라는 것이 있다. 2019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클라우디아 샴 박사가 고안한 지표인데, 이것은 최근 3개월간의 이동평균 실업률이 최근 12개월래 저점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지게 되면 경기 침체가 곧 임박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지수의 수식어로서 사회과학에서 잘 쓰지 않는 ‘법칙(rule)’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샴의 법칙(Sahm’s rule)’이라고 불릴 정도니, 지표에 대한 정확도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샴의 법칙, 이번엔 예외일까 지난 8월 초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이 4.3%로 높아지면서 샴 지수가 0.53%포인트를 기록했고, 경기 침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면서 글로벌 주식 시장의 블랙먼데이를 만들어낸 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도 샴 경기침체지수는 그 별명처럼 법칙이 잘 작동할 것인지, 아니면 예외의 경우가 될 것인지를 당장은 예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경기 흐름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경기가 위축 국면을 향해 가고 있다는 방향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지수를 고안한 샴 박사는 CNBC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경기 침체에 빠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발언도 같은 맥락의 흐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미래를 예상하고 빠르게 몰려다니는 투자 자본의 속성은 인내심이 없고 차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기 흐름의 방향성이 위축을 넘어 결국 침체를 바라보고 있다면, 투자 자본은 경기의 최종 종착지인 침체기에 어울리는 자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표출된 것이 주식 매도, 채권 매수의 조합이라 볼 수 있겠다.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 나타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50bp 인하)을 포함해 연말까지 100bp 인하가 반영돼 있다. 미국 경제가 곧 급격한 침체를 맞이하면서 Fed가 연말까지 그에 걸맞게 매우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상인 셈이다. 과거 경기 침체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경기 순환 4국면 중 둔화를 거쳐 침체로 가는 과정이 매우 급격하게 진행된 경우가 없지 않다. 2000년대 이후 발생했던 사례로는 2001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리스 한 편의점에 내걸리 구인 광고. 사진=연합EPA









그런데 이 세 번의 경기 침체 중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한 두 번의 경기 침체는 신용 이벤트(credit crunch)가 동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닷컴버블이 무너지는 과정에서는 실질적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구조조정되면서 기업과 회사채 부도율이 높아졌고,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기간에는 대마불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큰 금융기관이 파산했다. 금융 시장에서 발생한 가격 변동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는 데에는 신용 시장의 파열음이 기폭제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블랙먼데이를 거치면서 높아진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용 시장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미국 하이일드 채권 부도율: 2001년 닷컴버블 약 11%·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약 12%·2023년 말 기준 4.5%·2024년 말 S&P 글로벌 레이팅스 예상 4.75%). 금융 시장에서 촉발된 자산 가격의 하락이 신용 시장의 큰 충격 없이 실물경제로 전이돼 경기 펀더멘털을 망가뜨린 경우는 2000년대 이후로는 코로나19 위기가 거의 유일하다.
그마저도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배경이었던 만큼, 최근의 경기 침체가 2020년 코로나19 위기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따라서 금융 시장이 기대하는 바와 같이 9월 FOMC에서 빅컷(기준금리 50bp 인하)이 단행되고, 연말까지 연속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동반되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기간 동안 고용 시장을 비롯한 성장성 지표들이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거나, 신용 부문의 파열음이 발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 비중 확대 전략은 유효
지난해 8월 잭슨홀 미팅에 참석한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사진=연합

특히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증시 급락과 관련해 제기되는 Fed에 대한 금리 인하 요구 등과 관련해 “Fed는 경제 지표(펀더멘털)에만 대응한다”고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블랙먼데이 사태는 시장의 ‘센티멘털’이 급격하게 무너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펀더멘털’ 붕괴와는 거리가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샴 경기침체지수 역시 0.5%포인트라는 임계치를 상회하고 있으나, 이를 명목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실업률 상승이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과거 경제침체기 수준에 비해 구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노동에 대한 수요가 높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샴 지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부분들이다.
향후 거시경제 지표들이 급격하게 조정되기보다는 완만하게 둔화되는 정도에 그친다면, Fed도 완만한 수준의 기준금리 인하(보험성 인하)로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고, 현재 매우 깊은 경기 침체(공격적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는 투자 포지션의 정리가 나타날 수 있다. 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완만한 보험성이든 혹은 공격적이든, 인하 사이클이 도래한다는 점에서는 금융 자산 중 채권이 가장 유망하다는 점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다.
채권 자산에 대해서는 비중 확대가 유효할 것 같고, 금리 변동성에 따른 듀레이션(가중평균 만기) 조정이 채권 투자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식은 채권보다 조금 더 셈법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져오는 밸류에이션의 변화와 기업 이익 전망치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센티멘털보다 펀더멘털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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