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기부를 한번에, 워런 버핏도 픽한 ‘자선신탁’

우리나라보다 신탁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자선신탁 분야도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부호인 워렌버핏도 사후 자신의 전 재산을 이 자선신탁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자선신탁의 어떤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걸까.

[상속플래닝]
지난 5월 벅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한 워런 버핏 회장. 사진=연합


2024년 6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벅셔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은 자신이 사망한 후에 약 1300억 달러(약 180조 원)에 달하는 재산의 거의 전부를 세 자녀가 공동 관리하는 자선신탁(Charitable Trust)에 넘겨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벅셔해서웨이 주식의 절반 이상을 기부했고 보유 중인 나머지 재산은 유언장 변경을 통해 세 자녀가 공동 관리하는 공익신탁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버핏 사후에 재산이 자선신탁으로 이전되면 그 재산의 운용과 지급은 세 자녀의 합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노후생활비 보장하고 남은 재산 기부

미국에서는 자선신탁 제도를 통해 세금 절감 혜택과 평생 소득을 함께 보장받을 수 있게 기부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1969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기부자들에게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동안 수입을 보장해주며 세금을 절감하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중 자선잔여신탁(Charitable Remainder Trust·CRT)은 신탁을 설정해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을 신탁으로 편입한 후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동안 신탁에서 수익을 받고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또는 사망할 경우 남은 재산은 신탁에서 지정된 자선단체로 이전하는 기부 목적의 신탁을 말한다. 공익 목적으로 설정된 CRT인 만큼 예를 들어 신탁에 편입된 부동산 가격이 올라 매도할 경우에도 처분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부담하지 않게 된다. 또한 신탁 운용으로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CRT는 취소가 불가능한 신탁이다.

이러한 CRT에 대응되는 신탁으로 한국에서는 공익신탁 설립이 가능하다. 공익신탁이란 특정한 공익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인 또는 법인이 보유한 재산에 대해 설정하는 신탁이라 할 수 있다.

‘공익신탁법’ 제1조에서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신탁의 설정·운영 및 감독 등에 관해 ‘신탁법’에 대한 특례를 정함으로써 신탁을 이용한 공익사업을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해 공익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익신탁은 신탁을 설정할 때 특정한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공익신탁법’에서 정한 공익목적사업 수행을 통해 다양한 수혜자에게 그 수익이 돌아가도록 신탁 구조가 설정된다.

법무무 장관의 인가를 받아 설정하고 공시시스템에 공시하는 형태로 투명성이 보장된다. 기존의 공익법인 격에 비해 공익신탁은 사무실이나 직원 등이 필요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운영할 수 있다. 국내에서 누구나 적은 돈으로 나만의 재단을 설립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제도로 자신만의 계획 기부를 실천하고자 할 경우 주로 공익신탁을 추천한다.

운용 수익 비과세, 양도세도 면제

24세에 미국 생활을 시작한 A씨는 미국에 정착한 지 50년이 넘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기회의 땅에서 공부해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도착한 미국이 이제 또 다른 고향이 됐다. A씨는 미국에서 일군 재산과 가족을 생각하면 뿌듯한 생각이 든다. A씨의 두 자녀도 어엿한 미국인으로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다. 각자 일가를 이뤄 손자녀도 5명이나 된다.

A씨는 처음 미국으로 건너올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선교사 부부가 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 어려울 때마다 늘 지원을 해줬던 그들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선교사 부부로부터 받았던 그 마음을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다.

A씨는 그동안 준비했던 결심을 실천하고자 한다. 보유 중인 상가와 현금 자산 중 상당 부분을 CRT로 설정해 편입하기로 했다. 신탁 기간 중 발생한 운용 수익과 원본 중 일부를 자신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본인이 사망하면 CRT에 남아 있는 잔여 재산은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게 했다. 미국에서는 CRT로 자산을 이전하면 운용 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에도 양도세가 면제된다.

늘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A씨는 애초 가격이 많이 오른 상가를 처분해 일부는 부부의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남은 재산은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A씨는 CRT를 설립함으로써 보유 중인 상가와 현금을 편입해 세금 공제 혜택을 받고, 적정한 시기에 상가를 매각하더라도 양도세 없이 신탁에서 계속 운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운용된 신탁으로부터 부부의 노후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 신탁 운용 수익에 소득세가 없다 보니 본인들 사후에 실제로 기부되는 규모도 작지 않다.

CRT는 일단 설정한 후에는 수정이나 취소가 불가능한 취소불가능 신탁이다. A씨 부부는 CRT를 설립하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신탁 계약을 끝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A씨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 수입을 지급받을 수 있어 생활비 걱정도 덜 수 있고 사회공헌까지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남아 있던 오랜 숙제가 해결된 느낌이었다.

A씨 사례처럼 미국에서는 본인의 노후삶을 위한 생활비 등의 지출을 허용하고 남은 재산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CRT가 오랫동안 다음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계획 기부의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익신탁, 나만의 재단 만들기 효과

최근에 한 국내 기부단체를 찾은 B씨. 50대로 아직도 젊고 건강할 나이인데 중한 병에 걸리자 이 단체를 찾게 됐다. B씨는 평생 홀로 살아 왔다. 가족이 없어 빨리 결혼해 다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못했다. B씨는 태어나자마자 소위 ‘위기아동’이었다. 베이비박스에 놓여져 입양을 기다리며 시설에서 자랐다. 크면서 공부도 잘하고 씩씩하던 B씨는 쉴 틈도 없이 직장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살다 보니 미처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는데 허무하게도 중병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친구의 권유로 납입했던 보험에서 진단금이 꽤 나왔다. 부지런히 모은 금전도 있다. 치료를 받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B씨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보험금이나 자신이 그동안 모았던 재산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쓰이도록 기부하자고 결심했다. 보유 중이던 금전과 전세금에서 자신의 병원비, 간병비 등으로 쓰고 남은 재산은 사후에 기부하려고 한다.

공익법인 담당자는 B씨의 사연을 듣고 공익신탁을 권했다. 물론 기부단체에 직접 기부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B씨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공익신탁을 설정하고 그 공익신탁이 마치 B씨만의 공익재단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주변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공익법인 담당자는 ‘B씨의 위기아동과 위기산모의 자립을 위한 공익신탁’이라는 신탁 명칭도 제안했다. B씨는 마치 자신만의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익신탁은 법무부 인가를 통해 설정되며 법무부가 관리하는 공시시스템에 공시하도록 돼 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공시된 내용을 통해 다른 사람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매력은 덤이다.

만약 여러 가지 목적의 공익사업을 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려면 그 목적에 따라 많은 관할 부처의 허가와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공익신탁은 목적을 정하고 수혜자 기준을 설정해 법무부 한 곳에서만 인가를 받으면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다. 공익신탁은 공익법인에 비해 설립 절차가 간단하고 사무실이나 직원이 별도로 필요 없어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누구나 쉽게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자신만의 공익신탁을 설정할 수 있어 비교적 작은 돈으로도 맞춤형의 기부를 실행할 수 있다.

국내는 공익신탁·유언대용신탁 결합

B씨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공익신탁을 설정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의지가 가장 잘 반영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생전에 자신의 병원비 등으로 사용하고 남을 돈을 원하는 단체에 상속기부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도 활용하기로 했다. 즉, 유언대용신탁으로 자신의 남은 삶을 대비하고, 남는 자산은 공익신탁에 귀속되게 함으로써 본인의 생전 생활비 확보와 사후 기부라는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B씨는 보유 금전을 유언대용신탁에 맡겨 병원비 등 본인의 케어가 필요할 때 지원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전세금도 자신의 사후에는 수탁자에게 입금하도록 했다. 본인의 사망 이후 모든 상속 집행을 수탁자가 수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사후에 남은 금전을 미리 설립해 놓은 ‘B씨의 위기아동과 위기산모의 자립을 위한 공익신탁’에 귀속되도록 사후수익자를 공익신탁으로 설정했다.

공익신탁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7조(공익신탁재산에 대한 상속세 과세가액 불산입)와 상증세법 제52조(공익신탁재산에 대한 증여세 과세가액 불산입)에 따라 상속세와 증여세에서 자유롭다. B씨는 “전 재산 기부를 통해 자신과 같은 위기아동을 돕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국내에서 B씨와 같이 공익신탁과 유언대용신탁을 결합하면 공익신탁에 입금할 때 기부로 인정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미국처럼 국내에도 CRT와 같은 제도가 존재한다면, 한번의 신탁 설정으로 기부자의 생전 생활비 지급과 다양한 세계 혜택 적용이 가능해진다.
내년부터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무 현장에서 만나는 고령층들은 자산의 규모를 떠나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나를 위해 애써준 많은 사람과 사회를 위해 보답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사후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국내에도 CRT와 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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