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반기에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집값이 계속해서 오를 수 있을까. 주택 수요의 흐름을 짚어본다.
[부동산 이슈]올해 주택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시 오르기 시작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반기 들어서도 상승을 이어 가고 있다. 8월 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8월 첫 주(5일 기준)까지 20주 연속 올랐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에 따라 수도권 실수요자 다수가 주택 매수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덜컥 집을 사기에는 불안 요소가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가계 부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이 경제위기설을 부채질하는 데다, 최근에는 미국 증시에 이어 한국 증시도 급락하며 불안감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시기에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를지 미지수다.
엇갈린 반등…초고가 주택 위주 상승
부동산 시장에선 ‘탈동조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2022년 금리 인상으로 전국 주택 가격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주거 선호 지역 집값은 방어에 성공하며 오히려 반등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지역은 초고가 주택이 밀집된 강남권과 도심,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한강변이 대부분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최근 집값 상승은 지난해에 막혀 있었던 초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이 풀리면서 핵심지나 주거 환경이 쾌적한 신축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주도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정부 때 주택 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추진됐던 시가 15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제한, 취득세 중과, 토지거래허가제 등 아파트 매매 수요를 억제했던 각종 규제 대부분은 서울, 그중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강남3구’ 등 핵심 지역에 집중됐다. 이 때문에 한창 집값이 오르던 시기에 이들 핵심 지역 대기수요는 충분히 원하는 아파트를 매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에 한해 초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해지면서 주거 선호 지역의 대기수요가 ‘갈아타기’ 등을 통해 이들 지역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집값 상승기나 조정 회복 국면에서 고가 아파트가 지금처럼 높은 상승 폭을 보였기에 ‘강남 불패론’ 등이 생겨난 영향도 있다. 이에 따라 주택 수요는 더욱 핵심 지역에 집중되는 추세다. “결국 비싼 아파트가 더 오른다”는 인식으로 인해 자금력을 갖춘 매수인들이 큰 망설임 없이 초고가 주택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강남 불패’ 신화를 상징하는 일부 고급 주택 단지는 높은 분양가 등으로 인해 공급 당시 미분양 물량이 상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 단지는 현재까지 지역 대장주로서 시세를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금도 강남권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압구정 현대’다.
미분양이었는데…강남 평정한 ‘압구정 현대’
1970년대 한강변 매립공사를 통해 탄생한 압구정 현대의 분양 당시 가격은 30평대 865만 원, 60평대 1770만 원으로 당시 직장인 월급이 10만 원대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고가였다. 서민용 아파트가 아닌 ‘부자들을 위한 아파트’로 홍보했지만 한강 다리 외에 교통 인프라나 편의시설이 없어 미분양된 물량이 많았다. 그러다 1978년 ‘특혜분양 사건’이 터지면서 ‘특권층이 사는 곳’으로 인식됐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재건축이 본격화하면서 3.3㎡당 3000만 원대로 올랐고 2010년대 초반에는 400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압구정 현대는 압구정 현대 재건축 후 시세가 3.3㎡당 2억~3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매매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8월 11일 기준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아파트 시세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현대아파트(신현대 포함) 단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가장 비싼 곳은 압구정 현대4차로 3.3㎡(평)당 1억3125만 원이며 10위까지 모두 3.3㎡당 1억 원이 넘는다. 현대아파트는 노후화됐다는 단점에도 위치, 교통, 땅의 형세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강남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서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가 오며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인해 새 바람을 맞이했다. 1994년 삼성그룹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3만3691㎡(1만193평)의 땅을 서울시로부터 매입했다. 활용 목적은 ‘사옥 건립’으로 삼성은 102층짜리 회사 건물을 조성하려 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를 맞아 경영 위기를 겪은 삼성그룹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아파트 건립으로 사업 계획을 틀었다. 층수도 60층대로 낮췄다.
높은 분양가에 주상복합이라는 생소하던 형태로 분양한 이 아파트가 바로 ‘타워팰리스’다. 타워팰리스 초기 분양률은 50%를 넘기지 못했고, 일부 가구는 삼성 임원들에게 특별 분양을 하기도 했다. 타워팰리스 1차의 초기 분양가는 3.3㎡당 990만∼1400만 원 수준이었다. 당시 이 분양가는 서울시 평균 분양가보다 3배가량 높았으나, 2007년 평당 가격은 4000만 원대로 2배 이상 뛰었다.
현재 타워팰리스의 3.3㎡당 가격은 약 6500만 원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 입주한 고급 주상복합으로는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등이 있다. 이들 단지는 대형 타입으로 구성돼 중소형 타입 위주의 일반 아파트에 비해 단위 면적당 시세는 낮지만, 여전히 강남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성비 아파트 몰린 노원구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는 재건축, 재개발 바람으로 탄생한 강북 한강변 새 아파트가 강남을 위협하는 시세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곳이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다. 트리마제 역시 미분양의 아픔을 겪었다. 트리마제는 2014년 3월 최초 분양을 시작했으나 3.3㎡당 분양가가 3200만~4800만 원으로 높게 책정돼 2016년까지 266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심지어는 2017년 입주 직전까지도 일부 가구가 미분양이었다.
그러나 입주 직후 트리마제의 몸값은 치솟기 시작했다. 한강 영구조망권을 특화한 설계와 5성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조식 서비스, 고급 커뮤니티로 주목받았다. 유명 배우와 가수가 입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연예인 아파트’로도 불렸다. 현재 트리마제의 3.3㎡당 가격은 9200만 원대다. 성수동 평균 가격(6800만 원) 대비 약 2400만 원 높고 성동구 전체로 봤을 때는 평균 가격(4400만 원)의 2배 이상이다.
이처럼 고소득 자산가들이 매수할 수 있는 초고가 아파트가 시장을 이끄는 가운데, 역세권에 위치해 실거주하기 좋거나 지하철 개통, 재건축 등 각종 호재로 인해 투자 가치를 인정받는 단지들의 거래도 점차 살아나고 있다. 나름대로 높은 미래 가치를 지녔지만, 상승기 대비 큰 폭으로 가격이 하락한 바 있어 저렴해진 가격에 매력을 느낀 매수 대기자들이 거래에 나섰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매수인들 대부분이 실수요나 장기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 진입 수요는 꾸준하므로 서울 내 핵심 지역은 물론 외곽이나 경기도 인접 지역 내에서도 출퇴근 시 대중교통이 좋은 아파트는 전망이 좋은 편”이라며 “가용 자금 범위 안에서 실거주 목적으로 장만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가성비’ 아파트가 많은 지역으로 유명한 곳으로 노원구를 꼽을 수 있다. 서민주택 안정화 대책에 따라 1986년 상계동에 주공아파트 개발을 시작으로 대단위 아파트가 잇달아 조성됐기 때문이다.
그중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아파트는 광운대역과 인접한 월계시영아파트다. 총 3930가구 규모 단지는 라이프주택, 미륭건설, 삼호 등 시공사 3곳이 나눠 건설했는데 이들 시공사가 건설한 동마다 각기 다른 단지명(미성·미륭·삼호3차)을 붙였다. 이들 단지명의 초성을 따 흔히 ‘미미삼’이라 불린다. 미미삼은 올해 7월까지 총 57건 거래됐다.
서울 역세권·9억 원 이하 아파트 주목
월계시영은 강북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건축 단지로 알려져 있다. 가장 면적이 작은 전용면적 33㎡ 타입은 올해 7월 5억3000만 원에 실거래됐다. 서울 동북부의 강남 업무지구 접근성을 대폭 개선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정차, 광운대역세권 개발 등 호재가 많다. 이 때문에 재건축 완료 시 명실공히 노원구의 대장주 아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23년 정밀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만큼, 재건축 사업은 극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또 워낙 오래된 소형 아파트라 전세가격이 저렴한 탓에 소위 갭(매매가와 전세가 차이)이 4억 원 수준으로 큰 편이다.
영등포구에선 최근 몇 년간 신길뉴타운(신길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을 통해 조성된 새 아파트가 높은 가격을 형성하자, 자극을 받은 주변 아파트들이 재건축의 속도를 높였다. 7호선 신풍역세권에 위치한 신길우성2차·우창아파트는 7월 13일 재건축의 중대 관문인 사업시행계획을 수립했다. 2018년 재건축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뒤 통합 재건축을 추진했는데 사업 진행이 빠른 편이다.
그럼에도 20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2022년 5월 11억 원에 거래됐던 신길우성2차 전용면적 64㎡는 7억 원 후반대까지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거래가 집중적으로 증가하면서 8억 원대까지 회복한 상태다. 2026년 말에는 신안산선이 개통될 예정이다.
역세권, 대단지에 ‘마용성’ 중 성동구에 자리하고 있지만 최근 9억 원(7월, 전용면적 59㎡)에 실거래된 아파트가 있다. 성동구 금호동3가 두산아파트가 그 주인공이다. 1994년 입주한 1267가구 규모 두산아파트는 금호역 초역세권에 위치한다.
두산아파트는 현재 용적률이 이미 249%(네이버 부동산 기준)에 달해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대가 높고 언덕이 심하다는 점, 주차 공간 부족 등이 단점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아파트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24건 거래됐다. ‘e편한세상 금호파크힐스(68건)’, ‘신금호 파크자이(65건)’ 등과 같이 실수요층이 선호하는 금호동 새 아파트에 비해 절반 수준이지만 최근 거래가 늘고 있는 추세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