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주가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코로나19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노력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으로 인한 방산 매출 증가도 롤스로이스의 실적 호전에 기여했다.
[글로벌 종목탐구]2020년 5월 영국 비행기 엔진 제조 업체 롤스로이스는 자사 인력 9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주주 배당도 중단했다. 신용등급은 투자등급(Baa3)에서 투기등급(Ba2)으로 떨어졌다. 전 세계 하늘길을 끊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치명타를 입으면서다.
4년 3개월 뒤인 지난 8월 롤스로이스PLC는 배당을 재개하고 직원들에게 사상 최초로 1인당 120만 원어치의 자사주를 선물했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국 사상 가장 놀라운 턴어라운드”
위기를 이겨낸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 롤스로이스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기업 역사상 가장 놀랍고 빠른 턴어라운드(기업 실적 호전)”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초 구원투수로 등판한 투판 에르긴빌직 최고경영자(CEO)의 구조조정, 비용 절감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롤스로이스는 항공기용 제트엔진과 선박·잠수함 동력 시스템 등을 제조하는 영국 대표 중공업 기업이다. BMW 산하의 최고급 승용차 제조 업체인 롤스로이스모터스와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지만 별개 회사다. 민간 항공기 엔진이 주력 상품이고 방위산업·발전설비 부문에서도 매출을 내고 있다.
롤스로이스 주가는 최근 고공행진 중이다. 9월 10일 영국 런던 증시에서 롤스로이스 주가는 연초 대비 59.28% 오른 4.75파운드에 거래를 마쳤다. 2020년 5월과 비교했을 때는 402%가량 상승했다.
연간 매출도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롤스로이스 매출은 2021년 109억5000만 파운드(약 19조2800억 원)에서 2022년 126억900만파운드, 2023년 154억1000만 파운드로 증가했고 올해에는 171억500만파운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역시 2020년 22억7000만 파운드 적자에서 2021년 4억6800만 파운드로 흑자전환을 한 뒤 2022년 7억8900만 파운드. 2023년 17억7000만 파운드로 증가하는 추세다.
방만경영 개혁한 에르긴빌직
외신들은 롤스로이스 실적이 호전된 계기를 CEO 교체에서 찾고 있다. 취임 당시 회사는 에르긴빌직 CEO가 “불타는 플랫폼”이라고 부를 정도로 열악했다. 불타는 플랫폼은 2011년 스티브 엘롬 노키아 전 CEO가 자신의 회사를 ‘석유 플랫폼에 불이 붙어 생존을 위해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근로자’에 비유한 표현이다.
롤스로이스를 빈사 상태로 만든 것은 팬데믹이라는 결정타였다. 하지만 그 전에도 방만경영으로 인한 타격은 누적돼있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24억 파운드, 13억2000만 파운드 순손실을 기록했고 2020년에는 31억7000만 파운드까지 늘어났다. 에르긴빌직 CEO는 회사의 2019년 영업 레버리지(매출 총이익 중 현금 비용으로 흡수되는 비율)를 보고 “내 경력에서 본 것 중 최악이었다”고 말했다.
에르긴빌직 CEO는 회사의 환부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직후 운영비용 감축, 효율성 증대, 기업 문화 혁신 등 일곱 가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복되는 그룹은 간소화하고 전체 인력의 약 6%에 해당하는 2500명을 추가 감원했다. 손실이 발생하는 일부 계약은 논의를 중단시켰다.
하쉬 자베리 오르비스 인베스트먼트 투자분석가는 “에르긴빌직 CEO는 조직 전체에 상업적 마인드를 심어줬고 팬데믹 기간 회사가 감당해야 했던 비용을 절감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롤스로이스는 24억1000만 파운드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롤스로이스의 턴어라운드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 무장 강화 흐름도 작용했다. 호주, 미국, 영국이 협의체를 꾸려 발주하는 오커스(AUKUS) 잠수함 계약, 미 공군 B-52 폭격기에 들어가는 신형 F130엔진 판매 등에 힘입어 방산 매출은 2021년 33억6800만 파운드에서 2023년 40억7700만 파운드로 21% 성장했다.
“공급망 긴장 2년간 이어질 것”
다만 에르긴빌직 CEO는 지난 7월 “항공우주 산업을 방해하는 공급망 긴장이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경쟁 업체인 GE에어로스페이스는 자재 부족으로 차세대 리프엔진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랫앤휘트니도 에어버스 A320 항공기 엔진 납품에 차질이 빚어진 상태다.
롤스로이스가 주가 랠리를 언제까지 이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9월 11일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애널리스트 20명 중 14명은 매수를 추천했지만 각각 3명씩 보류와 매도를 권했다. 연초에 매도를 제안한 필림 불거 베렌버그 애널리스트는 “1월 이후 주가가 50% 이상 상승한 것을 감안할 때 (매도) 주장이 너무 일찍 나왔다”고 인정하면서도 “2027년까지 항공 교통 흐름이 둔화하는 등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인엽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