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바람 탄 지주사 투자 포인트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과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다. 그 궤적을 함께 하는 그룹 지주회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지주회사들은 어디일까.

[커버스토리]
한국거래소 홍보관의 주식 전광판. 사진=연합뉴스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기업이라는 경제활동 단위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를 조정하는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규율 메커니즘이다. 기업지배구조는 ‘지배권(control)’ 또는 ‘소유구조(ownership structure)’와는 엄연히 다른 의미다. 보다 구체적으로 기업지배구조 구축은 최적의 기업 자원 활용과 경영 성과 배분 등을 원활하게 만들어 기업의 대리인 비용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리인 비용은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기업과 관련된 대리인 비용의 출발점은 미국, 영국과 같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황에서 주주와 그 대리인으로서의 경영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안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대리인인 경영자의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대리인 문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지난 8월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4 현대차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총주주수익률(TSR) 35% 달성, ROE 제고 등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사진=한국경제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최적의 기업 자원 활용과 경영 성과의 배분을 방해하는 대리인 비용의 발생 원인으로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권의 사적 이익 추구를 들 수 있다. 이는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가 피라미드식 혹은 순환출자 등의 소유구조를 통해 전체에 대해 높은 수준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자원과 이익을 위법 혹은 편법적 내부거래 등을 사용해 경영권을 전용, 도용, 이전하는 ‘터널링(tunneling)’ 등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2세, 3세에게 승계하기 위해 가족이 소유하는 계열사를 설립해 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해당 계열사의 가치를 높인 후 상장 등을 통해 상속 자금을 마련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는 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기업구조 개편은 사업 매입, 매각뿐만 아니라 합병 또는 분할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원래 목적인 기업 가치 향상을 도모하기보다는 계열 분리 및 승계, 지배권 강화, 법률 위험 회피 등 지배주주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소액주주와 대리인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무엇보다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이 클수록 지배주주가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내용으로 의사결정을 할 유인이 높기 때문에 일반(소액) 투자자의 주주 환원에 대한 수요와 대립되곤 한다. 이는 기업의 배당 성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지배주주가 작은 지분으로도 기업을 지배하고 있어 배당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낮은 배당 수익률은 단기 차익 위주의 시장을 형성하는 불합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배구조가 취약하면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로 인해 대리인 비용을 발생시켜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업에도 큰 부담이 된다. 만약 제대로 된 기업지배구조가 구축돼 있다면,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이는 사전적으로 차단 혹은 완화해 대리인 비용은 낮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경영인의 모럴해저드로 인한 기업지배구조 약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분 소유가 분산돼 연기금이나 다양한 포트폴리오 펀드들이 주로 소유하는 ‘소유분산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배주주가 아닌 경영권을 행사하는 전문경영인이 자신만의 ‘참호’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 별다른 감독을 받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영을 하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참호구축(entrenchment)’ 형태의 대리인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금융지주회사 또는 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 KT 등에서의 낙하산식 최고경영자(CEO) 선임 때문에 발생하는 CEO의 참호 구축 논란은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은 기업 밸류업의 출발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대흥동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으로 소유분산기업의 경영자가 이사진 구성에 관여해 자신과 친한 지인들을 이사회와 CEO추천위원회 등에 포진해 놓고 이들을 통해 자신의 연임을 도모하는 행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이사회의 감독 기능을 약화시켜 기업 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경영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왔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 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이에 부응하기 위해 일부 상장사들이 대규모 주주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경영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기업의 근본적 가치를 유지, 개선하기 위해선 기업지배구조의 강화는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결 과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나 미국 등 선진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상황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즉,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할 유인은 높은 반면에 지배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 수단인 이사회 기능 등이 취약하다. 지배주주의 과도한 사적 이익 추구는 결국에는 소액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고 기업 가치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 막는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기업지배구조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언급된 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지배주주 중심 체제인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일반 주주와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로 변화시키라고 독려했다. 이는 소유주의 잘못된 결정을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는 ‘오너 리스크’를 줄이고 준법·윤리경영을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당시 IMF는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이사회 중심의 기업 경영 전환뿐 아니라 사외이사제도, 감사위원회제도의 도입을 의무화하고 기업 공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지배주주의 무분별한 사적 이익 추구를 통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상법, 세법, 형법 등에 관한 다양한 법 제정과 개선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지배주주의 횡령 등 각종 사익 편취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지속돼 왔다. 2010년대 들어서도 계속되는 법률 개정을 통해 자기 거래, 일감 몰아주기, 회사 기회 유용 등에 대한 규제가 보다 더 강화됐다.

하지만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인 외부 일반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대리인으로서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제한됐다.

아직도 현실은 지배주주가 부당한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경영권을 휘두르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는 단순 거수기에 그쳐 소액주주의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취약한 지배구조는 주식 시장 저평가로 이어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자사주 제도 개선 등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막아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며, 이런 기조가 지속되면 궁극적으로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의 개선으로 옮겨 갈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가치 제고 중장기적 접근 필요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여기에서 분명히 확인할 점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상장 기업들은 대부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다는 것이다. 즉, ROE가 높은데 PBR이 낮은 상장 기업은 없다. 대부분의 PBR이 낮은 상장 기업들의 경우 이익 증가의 지속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ROE가 낮은 것이다. 이에 따라 하루아침에 지속적인 이익 증가를 이뤄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PBR이 낮은 상장 기업들의 경우 주주 환원 재원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PBR이 낮은 상장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ROE를 상승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기업 가치 제고 계획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주 환원을 위한 재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 사익 추구를 위해 주주 환원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기업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가 이러한 지배주주 사익 추구가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되고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및 자사주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이사회 중심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지배구조를 강화한다면 일반 투자자들의 견제와 감시가 지속적으로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재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주주 환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지주회사들의 경우, 배당 확대와 더불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통해 ROE 수준을 상승시켜 기업 가치 증대를 꾀할 수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허울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지주회사 지배구조를 개선시키는 탄탄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상헌 아이엠증권 연구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