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내 PB시장을 이끌던 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철수를 선언하면서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씨티 출신 핵심 PB 인력들이 대거 우리은행을 선택했다. 이들이 TCE 시그니처센터에 집중 포진해 있다.
[스페셜] 1등 PB센터의 비밀 -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우리은행 TCE(TWO CHAIRS Exclusive) 시그니처센터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글로벌 프라이빗뱅킹(PB) 명가로 손꼽혔던 ‘씨티(CITI)’의 DNA다. 씨티은행이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소비자금융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한 2021년, 국내 자산관리(WM)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씨티 출신 WM 인력이 어느 금융사로 옮겨 가느냐’였다. 국내 시장에서 WM 사업을 영위하는 시중은행, 증권사 상당수가 씨티 소속 PB를 끌어가기 위한 물밑 작업에 분주했던 게 당시 분위기였다. 특히 대표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는 상당한 규모의 사이닝 보너스(이적료)를 제시하는 러브콜이 다수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씨티 출신 인력을 가장 많이 품은 우리은행이 소리 없는 ‘인력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됐다. 2022년 1월 우리은행에 합류한 씨티 출신 인력은 총 22명. 김윤희 TCE시그니처센터장을 비롯해 13명의 PB팀장은 물론이고, 포트폴리오 매니저, 절세상품 매니저, 내부통제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 등으로 이뤄진 ‘완전체 WM 조직’ 전체가 통째로 우리은행에 이식됐다. 이들은 같은 해 초고액자산가 대상 특화점포로 확장 이전한 TCE시그니처센터의 멤버로 적을 올렸다.
씨티 맨파워 통째로 이식
김윤희 센터장은 “또 하나의 ‘미니 씨티’를 만들어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산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직 구성을 갖춰서 이적했다”며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자산관리의 방식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김 센터장과 뜻을 함께한 PB들이 고심했던 대목도 ‘기존의 자산관리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였다. 국내 PB센터들이 초고액자산가의 마음을 잡기 위해 화려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결국 PB 본업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이 고수해 온 원칙이었다. 자산관리의 본질과 전문성을 안정적으로 이어 갈 수 있는 둥지로 우리은행을 택한 셈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가 어느 금융사로 이동하든 믿고 함께 해주는 고객들을 모시고 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단순한 세일즈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중요했다”며 “특히 우리은행은 자산관리보다는 기업금융 영역에서 강점을 가진 은행이었기에 우리가 합류했을 때 은행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시너지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TCE시그니처센터 특유의 심플한 공간 구성도 본질에 집중하자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화려한 인테리어 콘셉트를 선보이는 것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대로 자산관리를 잘 맡아주는 것이 더 좋은 가치라고 판단한 것. 이에 따라 센터의 모든 인테리어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꾸몄다. 김 센터장은 “맨파워나 자산관리 프로세스가 꽉 채워졌을 때 (화려한 인테리어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급스러운 서비스만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고객에게 미안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균 경력 16년…고객의 평생 파트너로
현재 TCE시그니처센터가 관리하는 고객 자산은 1조3000억 원, 투자 상품은 8000억 원 수준이다. 한 명의 PB가 관리하는 고객 수는 대부분 120명가량을 넘지 않는 게 원칙이다. PB들의 맨파워도 만만치 않다. 이들의 평균 경력은 16년으로, 적게는 13년에서 길게는 22년의 경력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김도아 PB지점장과 박태형 PB지점장은 각각 2000억 원, 1200억 원 규모의 자산관리를 도맡는 간판 PB다. 현재 우리은행 자산관리 컨설팅 채널의 분야별 전문가인 ‘자산관리 드림팀’으로도 활동 중이다.
다만 김 센터장은 “한 명의 PB가 고객의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고 경계한다. 기본적으로 PB들은 자산관리 영역에서 올라운더 역할을 수행할 만한 역량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산관리의 A부터 Z까지 모든 영역을 한 사람이 도맡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PB는 다양한 네트워크와 전문가를 활용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매니저’에 가깝다는 게 김 센터장의 생각이다.
김 센터장은 “고객이 필요한 포인트를 잘 파악한 뒤 1차적인 답을 주고, 어떤 전문가 채널을 활용하면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을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지 어레인지하는 게 PB의 역할”이라며 “요즘 자산가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PB 한 명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때가 많다. 전문가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PB를 바라보는 고객의 시선도 점점 ‘파트너’에 가까워지고 있다. TCE시그니처센터를 찾는 고객층은 여전히 60~80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자산가 고객의 자녀 혹은 영리치의 유입으로 연령층이 다양해지면서 PB와의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출하려는 분위기도 짙어졌다.
김 센터장은 “과거에는 고성장·고금리 시대다 보니 예금만 잘 해 놔도 자산이 늘어났지만, 지금은 고객의 의사결정이나 매크로 환경에 따라 자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미국 대통령 선거, 경기 지표와 같은 변수에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PB들이 자산관리 방향에 대해 설득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고객들이 더 현명해져 지식 면에서나 의사결정 면에서나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TCE시그니처센터 PB들이 고객과 첫 대면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의 재무 목표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현재 시장 상황에 맞는 ‘좋은 상품’을 권하는 것보다 고객의 뜻을 파악하는 ‘기본’을 탄탄히 하는 데 공을 들인다. 고객이 원하는 포트폴리오 구성과 지양하는 투자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리핑을 전달하는 주기와 연락 방식까지도 세밀하게 챙긴다. 김 센터장은 “고객의 투자 성향부터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모든 것을 그들의 뜻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없는 토론과 도제식 교육…소통으로 성장
과거에 비해 자산관리에 대한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다 관심사가 방대해진 만큼, 최일선에서 고객을 대면하는 PB 개인의 전문성도 더 높아지는 추세다. TCE시그니처센터 PB들도 집단지성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 PB들은 글로벌 시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 주 3회 정도는 출근 직후 PB들을 위한 아침 연수를 들으며 개인 역량을 개발한다.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함께 수익률에 대해 토의하거나, 고객 이슈를 공유하는 업무도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때때로 시장에 큰 이벤트가 발생하면 고객에게 빠르게 전달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센터장은 “고참 PB와 후배 PB가 시장과 상품, 시황, 고객 상담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고 말했다.
맨파워를 유지하기 위한 인재 양성도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TCE시그니처센터에 부팀장으로 배정된 차세대 PB 직원들은 센터의 모든 PB 교육 과정에 참여하는데, PB팀장이 고객과 상담할 때 동석해 PB의 화법, 설득 노하우, 자산관리 방식을 몸소 체험한다. 특히 그 과정을 ‘상담 참여 일지’로 작성해, 월 1~2회씩 센터장에게 피드백 받는 자리를 갖는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도제식 교육’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은행 WM을 리딩할차세대 인재들”이라며 “이들을 훌륭한 PB로 성장시키는 데 많은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센터장 미니 인터뷰]
"고객이 더 절박하게 '좋은 PB' 찾는다"
김윤희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장
PB의 매력은 무엇인가.
“PB는 고객의 가장 깊은 속내를 가족보다 많이 듣는다. 자녀와 배우자에게도 직접 하지 않는 이야기를 PB와 가장 많이 커뮤니케이션한다. 그래서 굉장히 재밌다. 좋은 PB는 기본적으로 사명감이 없을 수가 없다. 고객의 인생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지난 시간과 성공, 회환이 들어간 결과물(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고객과 공유해야 한다. 당연히 사명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PB를 하다 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모두 포트폴리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B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고객들을 만나 좋은 에너지와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른 직업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PB센터가 ‘좋은 고객’을 찾는 것보다 고객이 더 절박하게 ‘좋은 PB’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너무나 소중한 자산을 맡기는 일이니까. 그만큼 고객이 좋은 PB를 만났다고 판단하면, PB를 오랜 동반자로 삼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까지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 순간이야말로 PB 영업의 ‘본질적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 필요 없이 ‘나는 당신을 믿는다’라는 뜻이지 않나. 우리 센터의 경우 기존 고객을 통한 소개가 자주 이뤄지는데, 그 점이 우리의 큰 자부심이자 보람이다.”
‘PB를 이렇게 활용하라’고 조언한다면.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를 살 수 없고, 전체 자산을 부동산으로 구성할 수도 없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대가 됐다. 본인의 투자 성향과 재무 목표를 믿을 만한 PB와 공유하고, 그 방향성이 반영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산관리 현황을 자주 리뷰해주는 PB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자산을 지키는 파트너로서 PB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되도록 자주 만나기를 권한다.”
하반기 투자 전략을 제시해 달라.
“상반기까지 수익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면, 하반기에는 리스크 방어를 위해 다소 보수적인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 몇 가지 시장 변동성을 자극할 요인들이 있다. 미국 대선, 미국을 필두로 한 경기 둔화 혹은 침체 가능성, 금리 인하를 포함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 등이 그런 요인이 될 것 같다. 올 상반기까지 상승한 주요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보면 언제든 조정이 올 수 있고, 7월에 목격했듯 생각보다 더 큰 변동성이 생길 수 있다. 기존에 보유한 포트폴리오에 채권, 달러가 적다면 평상시보다 이들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는 것이 좋다. 채권은 공격적 투자자라도 30%까지는 보유하고, 전체 자산의 30% 정도는 달러 자산으로 구성해 시장 하락으로 인한 원화 약세에 대응하기를 추천한다. 다만 미국 기업의 이익 성장률은 내년에도 강력하다. 하반기 주가 하락 변동성이 발생해 밸류에이션 부담이 감소된다면 다시 주식의 비중을 늘리면 된다. 국내 주식은 다른 주도 섹터가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하방이 상대적으로 단단한 고배당 성향의 포트폴리오로 구축하는 게 현재로서는 좋아 보인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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