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공익법인 설립…‘이것’ 활용하면 나만의 재단 ‘오케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신탁이 많이 이용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만큼 다양한 용도로 쓰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익신탁의 개념과 활용에 대해 알아보자.

[상속 플래닝]

사진=게티이미지

어렸을 때 화상을 입은 박화선 씨는 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그 덕분인가 지금은 패션디자이너가 됐다. 박 씨는 자신처럼 화상 때문에 마음의 상처까지 입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뜻이 담긴 공익법인을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공익법인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확인해보니 간단치 않았다.

먼저 박 씨가 기부하려는 금액은 법인을 세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재단을 설립하려면 사무실과 직원이 필요하고 기본재산의 수익을 통해서만 기부를 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기존의 기부단체 등을 통해 기부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박 씨는 지인을 통해 좋은 방법을 추천받았다. 공익신탁으로 재단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공익신탁을 설정하고 난 그는 공익신탁의 어떤 점이 좋은지를 묻자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거죠. 멋지잖아요, 패션디자이너이면서 기부디자이너!”라며 환하게 웃었다.

공익신탁 vs 공익재단

일반적으로 신탁(信託·trust)이란 ‘어떤 사람이나 법인을 믿고 무언가를 맡기는 법률관계’를 말한다. 신탁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기부신탁을 통해 수익자를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지정할 수 있다. 둘째, 공익신탁을 통해 공익을 목적으로 기부하되,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을 수 있다.

공익신탁은 말 그대로 개인이나 법인이 자신의 재산을 일정한 공익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신탁하는 것으로, 개인의 재산 증식이나 관리가 목적인 사익신탁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공익신탁은 대부분 복지사업, 의료사업, 교육시설 등에 재산을 증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자선신탁’이라고도 한다. 개인이나 법인 등이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신탁하면 신탁 회사가 신탁재산의 관리·운용은 물론 위탁자의 뜻에 따라 공익사업까지 대행해준다.

공익신탁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신탁과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먼저, 공익신탁에서는 수익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신탁이 성립하려면 위탁자, 수탁자와 함께 수익자가 지정돼야 하지만 공익신탁은 신탁의 목적만 지정될 뿐 수익자는 지정되지 않는다. 위탁자와 수탁자 간의 신탁 계약만으로 즉시 효력이 발휘된다. 별도의 조직을 운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기부 방법, 특히 공익법인 설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차가 간소하고, 관리 비용이 적게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신탁이 아직 많이 이용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널리 보급돼 있다. 공익신탁은 원칙적으로 영구신탁이고, 수익자는 불특정인이다. 우리나라는 법무부 주관으로 2014년 3월 ‘공익신탁법’이 제정돼, 2015년 3월부터 시행됐다. 2015년 7월 첫 공익신탁 출범 이후 다음과 같은 공익신탁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장학금 지급, 자연과학연구기금 조성, 교육 진흥, 사회복지, 학술·문화 진흥, 문화재 보존, 동식물 보호, 자연환경 보호, 녹화 추진, 도시환경 정비·보전, 국제협력·국제교류 촉진 등 다양한 목적의 공익신탁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한편 공익을 목적으로 기부하는 방법에는 공익신탁 외에 공익재단법인 제도도 있다. 공익재단법인은 공익 목적을 위해 제공된 재산을 기본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출연된 재산을 그 법인에 귀속시킴과 동시에 그 법인의 이사 또는 다른 기관으로 하여금 정관에 따라 공익을 위해 재산을 관리·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간이 출연한 재산을 공익 활동에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공익신탁과 공익재단법인이 동일하지만, 공익신탁은 공익재단법인보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공익재단법인 설립에 비해 관리 비용이 현격하게 적게 든다. 재단법인 등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사무실 임차료나 인건비 등 통상 전체 기금의 5~30% 정도의 운영 경비가 필요한데 이 같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둘째, 공익신탁은 계약, 유언, 위탁자의 선언에 의해 설정이 가능하며, 행정 수속을 신탁 회사가 수행하므로 공익재단법인의 설립보다 설정 절차가 간편하고 수월하다.

공익신탁, 법무부 공시 시스템 공시 의무

셋째, 공익신탁은 ‘법인’이 아니며, 공익신탁의 재산권은 수탁자 명의로 관리된다. 한편 공익재단법인의 설립을 위한 최저 기본재산은 각 주무부처별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공익재단법인의 기본재산 그 자체의 사용은 금지, 제한되고 수익 금액을 목적사업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공익신탁은 신탁원본도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익신탁은 출연재산의 규모 및 활용 등도 위탁자가 결정하며, 한 개인이 큰 규모의 공익신탁을 설정할 수도 있는 반면 소규모 자금으로도 공익신탁 설립이 가능해 모금형 공익신탁의 경우에는 불특정 다수인의 소규모 출자를 모아서 자산가의 거액 출연과 맞먹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박 씨는 단독형 공익신탁을 지정했다. 단독형 공익신탁은 기부 목적에 맞게 ‘내가 설계하는 공익재단’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박 씨는 출연한 전체 금액을 원본과 이익 모두 기금에 출연하기로 했고 설립인가 시 본인이 세운 사업계획서에 따라 신탁재산이 소진(목적 달성)될 때까지 운영·관리하게 디자인을 했다. 공익신탁의 효율적인 운영과 사업 집행의 공정을 위해 공익신탁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설정한 공익신탁의 운영을 지원하게 했다.

공익신탁을 수탁받은 수탁자는 매년 신탁사무와 재산 상황을 법무부의 공익신탁 공시 시스템에 보고하도록 감독받고 있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사회공헌 활동에 쓰이게 된다. 박 씨의 경우처럼 공익재단 설립을 해 특정 목적의 수혜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실천을 하게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사회가 성숙되고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기부 문화는 확산될 것으로 느껴진다. 적은 돈이지만 함께 기부하며 투명하게 관리되면서 객관적인 시스템이 마련되는 기부 방안이 있다면 누구나 기부를 위한 새로운 방법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박 씨와 같은 실천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단 만들기 공식으로 공익신탁을 이용한다면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도 공식대로 풀어 간다면 답을 찾듯 누구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나만의 재단을 만드는 공식으로 공익신탁을 설정하는 방안을 만나면 누구라도 재단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공익신탁 설립자의 명함을 만들어 뜻을 함께하며 기부의 새로운 길을 여는 기부전도사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

박현정 법무법인 화우 자산관리센터 패밀리오피스본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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