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를 중심으로 텍스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다, 개성 있다’라는 뜻의 신조어인 ‘힙하다Hip’를 합성한 ‘텍스트 힙Text-Hip’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텍스트에 빠진 사람들은 요즘 어떻게 독서 문화를 즐기고 있을까?
독서 열풍을 이끄는 텍스트 힙
‘책멍’, ‘북캉스’, ‘북스테이’처럼 최근 ‘책’과 관련한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쇼츠와 릴스 등 60초 이내의 짧은 영상을 즐기던 Z세대가 텍스트와 관련된 활동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다. 이들은 독서를 힙한 문화로 여기며, 심지어 독서하는 모습도 섹시하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읽은 책을 SNS에 인증하고, 책 읽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일상의 한 부분으로 공유하려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책을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가 ‘온라인 일기장’으로 주목받고 있고, 책의 좋아하는 구절을 따라 쓰는 필사筆寫, 다이어리에 손 글씨로 직접 일기나 하루 계획을 쓰고 스티커를 붙이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등 텍스트 쓰기에 점점 더 열광하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 힙 트렌드는 다양한 소비 형태로도 나타난다.
연필, 수첩, 편지 등 ‘쓰기’와 관련한 아날로그 감성의 가게들이 생겨나며 주말에는 웨이팅을 할 정도로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출판·서점 업계의 대응
지난 6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사상 최대 인파인 15만 명이 몰렸다. 이러한 텍스트 힙 문화의 물결을 타고 창비, 문학동네, 민음사 등 국내 출판사들은 책에 대한 흥미를 끌기 위해 책과 작가에 맞는 콘셉트로 팝업 스토어 및 체험 이벤트를 선보였다.
한 예로,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김혜정 작가의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라는 책의 내용에 맞게 문방구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를 여의도 더 현대에서 운영한 바 있다.
도서관 분위기도 달라졌다. 서울시교육청 남산도서관은 산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숲속 북크닉’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라탄 바구니에 책, 돗자리 등을 넣어두면 방문객들이 무료로 빌려가 소풍을 하면서 책을 읽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서울야외도서관’도 이색적이다. 시청 앞 ‘책 읽는 서울광장’, 광화문 ‘책마당 광장’, 청계천 ‘책 읽는 맑은 냇가’ 총 3군데에서 진행하는데 젊은 층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독립 서점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단련할까?’ 등 색다른 주제로 책을 소개하는 ‘최인아 책방’,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위스키와 독서를 함께 즐기는 ‘책바’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촌의 독립 서점 ‘책방오늘’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텍스트 힙의 물결에 출판·서점 업계의 다양한 변화는 반갑고, 책을 선택하고 만나는 경험은 점차 즐거워지고 있다.
책을 고르고 즐기는 방식의 변화
텍스트 힙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출판사의 변화를 좀 더 들여다보자. 텍스트 힙 문화로 인해 책을 고르고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며 독서가 취향이고 오감형 경험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중심으로 독자를 만나기 위해 공을 들였던 출판사들이 최근 성수동, 더 현대 등 새로운 공간에 찾아가 팝업 스토어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학동네는 ‘현실에서 비현실로 가는 중간역’을 콘셉트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창비는 신간 시집을 홍보하기 위해 ‘시詩’와 ‘피크닉picnic’을 합해 ‘시크닉’이란 팝업 스토어를 열고 시인들이
일일 점원으로 참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단순히 책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것을 넘어 책 내용에 빠져들게 하고 회상시킬 수 있는 몰입형 장치를 선보이며 텍스트 힙 문화 역시 빠르게 확산 중이다.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것뿐 아니라 청음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연기자 문상훈이 낸 에세이는 ‘책 사운드 낭독회’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책의 내용을 가수 조덕배와 장기하 등 여러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낭독회에 온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행사를 개최했다. 문학동네의 ‘인생 시詩 전화 이벤트’도 이런 청음화로 화제가 됐다. 지정된 번호로 전화하면 한 편의 시 낭독을 들을 수 있는데, 100편이 넘는 시 중에서 무작위로 들려주는 형식이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평이다. 약 2주의 행사 기간에만 29만여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세대 간 공감 이끄는 텍스트 힙
쇼츠와 릴스의 시대, 텍스트 힙 문화가 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의 특성상 텍스트 힙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출판업계의 마케팅을 바꾸고, 그 변화는 고스란히 전 세대가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자녀를 독립시키고 나를 위한 여행, 운동, 문화생활을 영위하고자 중·장년층의 연간 독서량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 맞게 사는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에 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텍스트 힙 열풍이 부는 지금, 책은 세대 간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회원제 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는 주제별로 독서 모임의 리더 역할을 하는 클럽장이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참여하는데, 그 분야의 전문성을 쌓은 중·장년층의 활동도 돋보인다. 책을 매개체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흔히 힙한 트렌드라고 하면 잠시 유행하다 그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돌풍이란 말 역시 갑자기 불어닥치는 잠깐의 바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1인 독서량이 줄고, 출판업계가 불황이라는 뉴스가 넘쳐나는 요즘 텍스트 힙은 반가운 돌풍임이 분명하다. 어떤 형식이든 책은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마음의 정거장임은 변함이 없으니까.
집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 읽는 공간을 바꿔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서재, 개인의 취향에 맞게 책을 추천해주는 북 큐레이터가 상주하는 북 스테이 등 새로운 공간에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텍스트 힙을 오래도록 향유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글. 최수하(브랜드 전략가)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독서 열풍을 이끄는 텍스트 힙
‘책멍’, ‘북캉스’, ‘북스테이’처럼 최근 ‘책’과 관련한 신조어가 대거 등장했다. 쇼츠와 릴스 등 60초 이내의 짧은 영상을 즐기던 Z세대가 텍스트와 관련된 활동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다. 이들은 독서를 힙한 문화로 여기며, 심지어 독서하는 모습도 섹시하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읽은 책을 SNS에 인증하고, 책 읽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일상의 한 부분으로 공유하려는 사람도 부쩍 늘고 있다.
텍스트에 대한 관심은 책을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이버 블로그가 ‘온라인 일기장’으로 주목받고 있고, 책의 좋아하는 구절을 따라 쓰는 필사筆寫, 다이어리에 손 글씨로 직접 일기나 하루 계획을 쓰고 스티커를 붙이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등 텍스트 쓰기에 점점 더 열광하고 있다. 이러한 텍스트 힙 트렌드는 다양한 소비 형태로도 나타난다.
연필, 수첩, 편지 등 ‘쓰기’와 관련한 아날로그 감성의 가게들이 생겨나며 주말에는 웨이팅을 할 정도로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출판·서점 업계의 대응
지난 6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사상 최대 인파인 15만 명이 몰렸다. 이러한 텍스트 힙 문화의 물결을 타고 창비, 문학동네, 민음사 등 국내 출판사들은 책에 대한 흥미를 끌기 위해 책과 작가에 맞는 콘셉트로 팝업 스토어 및 체험 이벤트를 선보였다.
한 예로,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김혜정 작가의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라는 책의 내용에 맞게 문방구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를 여의도 더 현대에서 운영한 바 있다.
도서관 분위기도 달라졌다. 서울시교육청 남산도서관은 산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숲속 북크닉’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라탄 바구니에 책, 돗자리 등을 넣어두면 방문객들이 무료로 빌려가 소풍을 하면서 책을 읽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서울야외도서관’도 이색적이다. 시청 앞 ‘책 읽는 서울광장’, 광화문 ‘책마당 광장’, 청계천 ‘책 읽는 맑은 냇가’ 총 3군데에서 진행하는데 젊은 층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독립 서점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단련할까?’ 등 색다른 주제로 책을 소개하는 ‘최인아 책방’,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위스키와 독서를 함께 즐기는 ‘책바’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촌의 독립 서점 ‘책방오늘’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텍스트 힙의 물결에 출판·서점 업계의 다양한 변화는 반갑고, 책을 선택하고 만나는 경험은 점차 즐거워지고 있다.
책을 고르고 즐기는 방식의 변화
텍스트 힙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출판사의 변화를 좀 더 들여다보자. 텍스트 힙 문화로 인해 책을 고르고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며 독서가 취향이고 오감형 경험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중심으로 독자를 만나기 위해 공을 들였던 출판사들이 최근 성수동, 더 현대 등 새로운 공간에 찾아가 팝업 스토어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학동네는 ‘현실에서 비현실로 가는 중간역’을 콘셉트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창비는 신간 시집을 홍보하기 위해 ‘시詩’와 ‘피크닉picnic’을 합해 ‘시크닉’이란 팝업 스토어를 열고 시인들이
일일 점원으로 참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단순히 책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것을 넘어 책 내용에 빠져들게 하고 회상시킬 수 있는 몰입형 장치를 선보이며 텍스트 힙 문화 역시 빠르게 확산 중이다.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것뿐 아니라 청음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연기자 문상훈이 낸 에세이는 ‘책 사운드 낭독회’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책의 내용을 가수 조덕배와 장기하 등 여러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낭독회에 온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행사를 개최했다. 문학동네의 ‘인생 시詩 전화 이벤트’도 이런 청음화로 화제가 됐다. 지정된 번호로 전화하면 한 편의 시 낭독을 들을 수 있는데, 100편이 넘는 시 중에서 무작위로 들려주는 형식이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평이다. 약 2주의 행사 기간에만 29만여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세대 간 공감 이끄는 텍스트 힙
쇼츠와 릴스의 시대, 텍스트 힙 문화가 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의 특성상 텍스트 힙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출판업계의 마케팅을 바꾸고, 그 변화는 고스란히 전 세대가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자녀를 독립시키고 나를 위한 여행, 운동, 문화생활을 영위하고자 중·장년층의 연간 독서량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 맞게 사는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에 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텍스트 힙 열풍이 부는 지금, 책은 세대 간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회원제 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는 주제별로 독서 모임의 리더 역할을 하는 클럽장이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참여하는데, 그 분야의 전문성을 쌓은 중·장년층의 활동도 돋보인다. 책을 매개체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흔히 힙한 트렌드라고 하면 잠시 유행하다 그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돌풍이란 말 역시 갑자기 불어닥치는 잠깐의 바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1인 독서량이 줄고, 출판업계가 불황이라는 뉴스가 넘쳐나는 요즘 텍스트 힙은 반가운 돌풍임이 분명하다. 어떤 형식이든 책은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마음의 정거장임은 변함이 없으니까.
집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 읽는 공간을 바꿔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서재, 개인의 취향에 맞게 책을 추천해주는 북 큐레이터가 상주하는 북 스테이 등 새로운 공간에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텍스트 힙을 오래도록 향유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글. 최수하(브랜드 전략가)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