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저녁 8시까지 산다…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 출범

한국거래소의 독점을 깨고 대체거래소(ATS)가 등장했다. 하루 12시간 투자 시대가 개막했다. 거래 종목은 800개까지 단계적 확대된다. 증권업계는 수수료 인하 경쟁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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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대체거래소인 네긋트레이드 여의도 사무실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거래소의 70년 독점 체제를 깰 국내 첫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NXT)가 3월 4일 출범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12시간 주식 투자’ 시대가 열렸다. 국내 주식거래소는 미국처럼 한국거래소(KRX)와 NXT가 경쟁하는 구도로 전환했다. 수수료 인하와 함께 다양한 호가 방식이 도입돼 주식 투자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넥스트레이드의 다자간 매매체결 회사 투자중개업을 인가했다. 2013년 정부가 제도를 도입한 지 12년 만이다. ATS 등장으로 국내 증시에서는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의 프리마켓, 오후 3시 30분부터 8시까지 애프터마켓이 생겼다. 투자자는 삼성, 미래에셋 등 주요 증권사를 통해 오후 8시까지 국내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 거래 시간은 종전 총 6시간 30분(오전 9시~오후 3시 30분·KRX 기준)에서 12시간(오전 8시~오후 8시·NXT 기준)으로 5시간 30분 늘었다.



중간가·스톱지정가…호가 방식도 다양화

대체거래소의 거래 종목은 KRX의 시간 외 단일가 시장(오후 4~6시) 매매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불공정 거래, 시세 조종 등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NXT는 호가 방식을 다양화했다. ‘중간가 호가’와 ‘스톱지정가 호가’ 같은 새로운 주문 유형이 생겼다. 중간가 호가는 최우선 매수·매도 호가의 중간 가격으로 주문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가령 삼성전자의 매수·매도 호가 중 가장 비싼 5만5000원과 가장 저렴한 5만4000원의 중간값인 5만4500원이 적정 가격으로 책정된다. 스톱지정가는 투자자가 사전에 설정한 가격에 시장 가격이 도달하면 지정가로 주문이 이뤄지는 식이다. 투자자는 손절매·분할매수 전략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투자자가 NXT에서 거래하기 위해서 별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할 필요는 없다. 참여 증권사 앱에서 수수료 등을 비교한 뒤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딱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 주문전송시스템(SOR)이 적용된다. 증권사가 가격, 비용, 체결 가능성 등을 고려해 투자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배분해준다.

ATS 측은 일단 10개 우량주부터 거래를 시작했다. NXT와 KRX에서 동시에 거래할 수 있는 종목은 롯데쇼핑, 제일기획, 코오롱인더, LG유플러스, 에쓰오일, 골프존, 동국제약, 에스에프에이,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컴투스 등 10개다.

지난 3월 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센터 빌딩에서 열린 국내 첫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 개장식에서 참석자들이 개장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


10개 우량주 출발…4월까지 수수료 면제

개장 3주 차인 3월 17일부터는 100개 종목을 더해 110개 종목이 거래 가능해진다. 4주 차인 3월 24일에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을 합쳐 350개 종목을 사고팔 수 있다. 국민주인 삼성전자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SK하이닉스,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LG에너지솔루션, 셀트리온 등은 3월 24일 이후 거래할 수 있다. 개장 5주 차인 4월 31일부터는 거래 종목을 800개로 확대한다.
복수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종목은 바뀔 수 있다. 매 분기 말 5거래일 전에 NXT 거래 종목이 발표될 예정이다. 차기 800개 종목은 오는 6월 23일 공개돼 7월 1일 거래부터 반영된다.

대체거래소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구성 종목 가운데 시가총액과 거래대금 상위 종목을 중심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가격 변동 폭(±30%)과 거래 정지,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 등 시장 안정장치는 KRX와 똑같다. NXT 역시 거래일로부터 이틀 후(T+2)에 결제되는 방식이다.

주요 공시가 NXT의 애프터마켓 시간대에 나오면 해당 종목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KRX의 공시 확인 후 NXT가 거래 재개 여부를 판단한다. 변동성 완화 장치(VI)가 발동되면 KRX는 2분간 단일가 매매로 바뀐다. NXT 거래는 2분간 정지된다. 투자자 화면에는 주문할 수 있는 거래소의 시세가 표출된다.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NXT 거래는 연말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관련 법령 개정 등을 거쳐야 해서다. 3월 말 재개되는 공매도는 NXT의 프리·애프터마켓에선 금지된다. NXT는 4월 30일까지 모든 거래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서울 여의도 넥스트레이드 사무실 내부. 사진=연합뉴스


증권사 수수료 인하 경쟁 본격화

고객 유치를 위한 증권사 수수료 경쟁도 치열하다. 증권사들은 NXT 출범에 발맞춰 거래수수료를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다. ETF에 이어 자본시장 업계의 보수 인하 전쟁 2라운드가 펼쳐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키움증권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또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NXT에서 거래할 때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 0.0145%를 적용한다. 한국거래소를 통한 매매 수수료(0.015%)는 종전과 같다. NXT 수수료가 한국거래소보다 최고 40% 낮은 만큼 고객 보수도 덜 받겠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4일부터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를 오프라인 기준 0.490%에서 0.486%, 온라인은 0.140%에서 0.136%로 낮추기로 했다. 토스증권은 거래수수료를 0.014%로 내리고 KB증권은 수수료 한시적 면제 조치에 따라 위탁 수수료율(0.0022763%) 인하를 반영했다. 한국투자증권은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매매 수수료를 낮춘다. 신한투자증권 등도 주식 거래 수수료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매 체결 수수료가 낮아진 만큼 증권사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어 수수료 인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KRX의 유관기관 수수료·제비용률은 0.0036396%, NXT는 0.0031833%다.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 시간이 하루 12시간으로 확대되는 만큼 시장 선점 효과를 고려해 수수료 인하에 나선 것”이라며 “미국, 유럽 등의 ATS 도입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거래량, 거래대금 등 증시 유동성이 증가하고 증권사 브로커리지 관련 이익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애프터마켓 활기…ETF·ETN도 거래 준비

증권사들은 NXT 출범과 함께 MTS 앱을 재단장하는 작업에도 들어갔다. 예컨대 첫 화면에서 한국거래소와 NXT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체거래소 출범 첫날인 3월 4일 메인마켓(오전 10시~오후 3시 20분) 거래량은 21만3983주, 거래대금은 88억3244만 원을 기록했다. 애프터마켓(오후 3시 40분~오후 8시)에서는 거래량 22만758주, 거래대금 113억6261만원으로 메인마켓을 상회했다. 한국거래소 폐장 이후 애프터마켓 거래 수요가 높았다.

실적 개선 기대감으로 주가가 5% 가까이 급등했던 와이지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거래가 집중되면서, 코스닥 종목 거래가 코스피의 2.5배 이상 많았다. 와이지엔터에만 155억2783만 원이 몰렸다. 이날 NXT 평균 등락률은 거래소 종가 대비 0.27% 상승하며 주가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종목별로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1%), 코오롱인더(-1.02%), 에스에프에이(-0.26%) 3곳은 내렸고 동국제약(0.97%), LG유플러스(0.57%), 에쓰오일(0.54%), 제일기획(0.45%), 롯데쇼핑(0.16%)은 상승했다. 컴투스, 골프존은 주가가 변동 없었다.

출범 후 첫 주(3월 4~7일) NXT의 전체 거래 대금은 799억1329만 원으로, 이 중 개인(781억9391만 원) 비중이 전체의 97.85%를 차지했다. 기관투자가가 12억5919만 원으로 1.58%, 외국인은 4억6020만 원으로 0.58%를 차지했다. 거래 시간별로는 정규 시장인 메인마켓(오전 9시~오후 3시 20분) 거래대금이 55.18%로 가장 많았다. 애프터마켓(오후 3시 30분~8시)과 프리마켓(오전 8시~8시 50분) 거래대금은 각각 23.82%, 21%였다. 종목별로는 동국제약이 137만9246주로 가장 많았다. 동국제약 거래대금은 한국거래소 대비 NXT가 90%에 육박하기도 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대체거래소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출퇴근길 직장인 개미들이 시장을 장악했다"며 "개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출범 첫 주 만에 NXT가 무난히 안착했다"고 평가했다.

투자 업계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대체거래소 출범 후 전체 거래대금이 30%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향후 ETF와 상장지수증권(ETN) 거래가 가능해진다면 거래대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3월 3일 ATS에서 ETF와 ETN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시행령·시행규칙과 금융투자업 규정,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규를 개정해 투자자의 거래 수요와 시장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 상품을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다. NXT는 하반기 인가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학수 넥스트레이드 대표는 "거래 시간 확대 등 시장 변화를 투자자가 폭넓게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장 정착 이후 넥스트레이드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주식 시장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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