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스카치위스키를 넘어서고 싶었던 한 남자의 집념이 지금의 닛카 위스키를 만들었다.
[위스키 이야기]일본 위스키의 성장세가 멈출 줄 모른다. 한국의 일본 위스키 수입액은 2018년 105만 달러(약 15억 원)를 기록하며 처음 100만 달러를 넘겼는데, 이후 7년 만인 2024년(11월 기준) 883만 달러(약 130억 원)로 급격히 증가했다. 비단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요가 급증하면서 ‘없어서 못 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는 일본의 위스키 수출액이 사케를 훌쩍 뛰어넘었을 정도. 일본 농축수산식품 품목별 수출 전체를 놓고 봐도 가리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문익점, 타케츠루 마사타카
일본 위스키의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제창하며 서양 흉내 내기에 골몰했던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은 유럽에서 수입한 주정(酒精)에 설탕과 향신료 등을 섞은 ‘가짜 양주’를 위스키로 소비했다. 하지만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1894~1979년)의 집념이 지금의 일본 위스키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생애가 곧 일본 위스키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894년 히로시마의 양조장 집에서 태어난 타케츠루는 오사카공업고교(현 오사카대) 양조과를 나와 ‘셋쓰주조’에 취직했다. ‘가짜 위스키’를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18년, 24세의 청년 타케츠루를 스코틀랜드로 보내 본토의 위스키 생산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혈혈단신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그는 글래스고대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학업 중에도 여러 증류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현장을 익혔다. 당시 타케츠루는 만년필과 노트를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니며 증류소에서 보고 들은 위스키 제조 비법을 꼼꼼히 메모했는데, ‘타케츠루의 노트’로 불리는 이 메모는 훗날 일본에서 ‘위스키의 성경’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알렉 더글러스흄 전 영국 총리가 외무 장관이던 1962년 일본을 방문해 “50여 년 전 한 일본 청년이 한 자루의 만년필과 노트로 영국 위스키 비밀을 훔쳐갔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 “일본 위스키 역사 대부분은 타케츠루에게 빚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2년 뒤 일본으로 돌아온 타케츠루는 산토리의 창업자인 토리이 신지로와 손을 잡고, 1923년 오사카 인근 야마자키에 증류소 세우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29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인 ‘산토리 시로후다’를 선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 접해보는 ‘진짜’ 위스키의 맛에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랭했다. 위스키 특유의 스모키한 향과 맛을 두고 술에서 나무 탄내가 난다는 평가가 이어졌을 정도다.
산토리 시로후다의 실패는 결국 스코틀랜드와 똑같은 제조기법을 고수한 타케츠루와 ‘일본인의 입맛’을 중시한 토리이가 갈라서는 계기가 됐다.
이후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자연환경을 찾아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고 1934년 훗카이도 북부인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웠다. 닛카 위스키의 토대가 된 증류소다.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닛카는 대일본과즙(大日本果汁)에서 ‘닛(日)’과 ‘카(果)’를 따와 지은 이름. 이는 위스키로 수익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산토리에서 경험한 타케츠루가 당장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과일주스를 생산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까닭이다.
세계를 홀린 닛카 위스키
일본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닛카는 일본 위스키 붐을 이끈 주역이다. 특히 지난 2001년 영국 주류 전문 매체 <위스키 매거진>이 주최한 ‘Best of the Best’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요이치 10년’이 최고 점수를 획득하며 위스키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2008년에는 ‘요이치 20년(1987년 빈티지)’이 세계위스키품평회(WWA)에서 싱글 몰트 부문 1위를 차지했는데, 이 대회에서 스카치위스키 이외의 위스키가 우승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요이치 20년에 대해 “알코올과 열매의 놀라운 조화”, “폭발적인 향”, “강하고 길고 달콤한 끝맛”이라고 극찬했다. 이후 WWA와 국제위스키품평회(ISC) 등 공신력 높은 대회에서 닛카 위스키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메달을 수상했다.
이런 비결에는 ‘품질 제일주의’를 앞세운 타케츠루의 장인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그는 스코틀랜드인보다 더 정통 스카치위스키 생산 방식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에서조차 포기한 석탄 직접 가열 증류 방식을 지금도 고수할 정도다. 또한 ‘요이치’와 ‘미야기쿄’, ‘타케츠루’ 등 주요 위스키에 모두 피트 몰트를 사용하는데, 이는 타케츠루가 유학하던 시절 스코틀랜드의 거의 모든 증류소에서 피트 위스키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닛카 위스키는 1969년 혼슈(本州) 동북부에 위치한 미야기현 센다이 근교에 미야기쿄 증류소를 세운다. 요이치 증류소의 위스키가 스모키한 풍미가 강하다면, 이곳에서는 부드럽고 과일 향이 풍부한 위스키를 만든다.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증류소를 운영하는 만큼 닛카 위스키의 라인업은 매우 다채롭다. 그중에는 그레인위스키도 포함된다. 그레인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여느 위스키 브랜드와 달리 닛카는 자사의 코페이 증류기에서 생산되는 그레인위스키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입된 지 무려 80년이 넘은 연속식 증류기를 통해 지금도 위스키를 빚고 있다.
닛카는 독특한 맛과 풍부한 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코틀랜드의 정통 방식을 따르면서도 일본 특유의 정교한 장인정신이 더해진 결과다. 닛카 위스키의 이러한 특징은 엠블럼에도 잘 드러나는데, 유럽 가문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 고마이누(신사나 절 앞의 사자 비슷한 석조상)와 사무라이의 투구를 그려 놓았다. 일본의 ‘혼’과 유럽 ‘기술’을 결합했다는 뜻이다.
얼마 전 국내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닛카 위스키가 한국에 정식 수입을 알린 것이다. 국내에 우선 선보일 제품은 창립자의 이름을 딴 ‘타케츠루 퓨어 몰트’와 ‘요이치 싱글 몰트’, ‘미야기쿄 싱글 몰트’, ‘프롬 더 배럴’ 총 4종이다. 그중 ‘요이치 싱글 몰트’는 바닷가 증류소에서 비롯한 묵직한 보디감과 진한 피트향, 해풍을 머금은 듯한 짭쪼롬한 맛이 압권. 반면 약 60%의 그레인위스키와 40%의 몰트위스키를 섞은 ‘프롬 더 배럴’은 51.4%라는 알코올 도수가 무색할 만큼 소프트하면서도 풍부한 과일향과 담백함이 독특하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