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과 SNS 계정 등 디지털 자산이 현실 자산으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상속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계정 접근, 상속세 부과, 정보 제공 기준 등을 둘러싼 법적·제도적 정비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커버스토리]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의 약 35%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시점 국내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평가금액은 시가 기준 100조 원을 넘었고, 예치금도 8조8000억 원에 달했다. 가상자산은 이제 사람들의 자산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실질적 자산이 됐다.
지난해 말 제주항공 참사 당시, 유가족들은 카카오와 네이버에 희생자의 지인 연락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접근권 등을 요청했다. 휴대전화 파손 등의 이유로 고인의 지인들에게 부고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정보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도 제3자에게 넘기는 데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결국 유가족들은 제한적으로 연락처만 제공받았다.
제주항공 참사 사례로 드러난 허점들
기존의 상속은 부동산이나 현금처럼 유형의 자산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가상자산이나 SNS 계정, 디지털 파일처럼 무형의 디지털 자산도 중요한 상속 대상이 됐다. 그 처리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속이 발생하면 가상자산은 어떻게 되는가. 가상자산 역시 상속이 가능한 재산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으며, 판례 또한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상당한 가치가 있고 상속인에게 이전이 가능하므로 당연히 상속 대상이 된다.
다만, 가상자산은 망인이 어디에 얼마나 보유하고 있었는지를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예금처럼 금융기관에 있는 재산은 정부의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한번에 조회가 가능하다. 반면, 가상자산은 그러한 통합 조회 시스템이 없어 상속인은 업비트, 코인원, 코빗, 빗썸 등 개별 거래소에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이들 거래소는 상속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으며, 예컨대 빗썸은 ‘자산 이동 동의서’, 가족관계증명서, 상속인의 신분증 등을 이메일로 제출하면 상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단, 상속인이 해당 거래소에 계정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가상자산을 상속받으면 상속세도 부과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모든 권리’를 상속재산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상자산에도 상속세를 부과할 수 있다.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과세 기준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법은 ‘평가기준일 전후 각 1개월 동안 가상자산사업자가 공시한 일평균가액의 평균액’으로 평가하도록 정해 두고 있다.
SNS 계정, 블로그, 사진 같은 디지털 자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상속 기준이 없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유족들이 희생자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접근을 요청하면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후 학계와 국회에서도 논의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실제 법 제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현재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의 약관이나 내부 정책에 따라 처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디나 비밀번호 같은 계정 정보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일각에서는 아이디나 패스워드는 사적인 정보로서, 사망과 함께 삭제돼야 하며 상속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반면 다른 견해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기 위한 접속권으로 보고 상속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전자는 사후 프라이버시 보호를, 후자는 재산권 보호를 중시하는 관점이다.
네이버, 아이디·비밀번호는 제공 거부
우리나라에는 관련 판례가 없지만, 미국은 47개 주에서 디지털 유산 관련법이 제정돼 있으며, 대부분의 주법과 판례는 이메일 등 디지털 정보도 유체자산처럼 상속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개인정보보호 관점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에 부정적이며, 유럽연합(EU)은 통일된 법규는 없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판례나 해석을 통해 디지털 유산의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연방대법원은 망인의 SNS 계정접속권이 상속된다고 보았고, 이는 사후 인격권이나 통신비밀보장, 정보보호 규정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내외 주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들의 정책을 보면, 네이버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계정 정보를 일신전속적 정보로 보아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유족의 요청이 있는 경우, 블로그의 공개된 게시물은 백업 형태로 제공되지만, 비공개 게시물이나 이메일은 제공하지 않는다. 카카오 역시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제공하지 않으며, 대화 내역이나 친구 목록 등의 비공개 정보도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공개 게시물은 백업할 수 있고, 사용하지 않은 모바일 교환권이나 유상 선불 전자지급수단 등은 환불 처리해준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같은 게임사는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 상속 순위에 따라 계정을 이전해준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5부터 스마트폰 데이터 상속 기능을 도입해 최대 5명의 유산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연락처, 통화기록, 음성 녹음, 캘린더, 노트는 상속이 가능하나 사진, 영상, 카드 정보, 건강 정보 등은 상속할 수 없다.
해외 기업들도 유사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계정 정보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으며, 사망 증명이 가능할 경우 계정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구글은 일정 기간 계정을 사용하지 않으면 미리 지정한 연락처로 알림을 보내고, 계정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공유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애플은 유산관리자 기능을 통해 연락처, 통화기록, 음성 녹음, 캘린더, 이메일, 메모, 사진, 영상 등을 상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서비스 제공자들은 망인의 프라이버시, 개인정보보호, 인격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속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 중이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구글 같은 대형 플랫폼은 하나의 계정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 제공하기 때문에, 계정 전체의 포괄적 이전은 적절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망인이 사용하던 휴대전화에 담긴 방대한 개인정보를 포괄적으로 상속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서비스 제공자들이 채택한 ‘아이디·비밀번호 제공 거부’ 및 ‘공개 게시물에 대한 제한적 접근 허용’ 정책은 서비스 성격과 이용자 의사를 반영한 합리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온라인 서비스에 동일한 수준의 정책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필요는 없으며, 서비스의 성격과 정보의 민감성에 따라 유연하게 개별화된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필요
디지털 유산 상속과 관련된 여러 입법안도 여전히 논의 중이다. 과거 제출됐던 안들 중에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 가능성을 전제로, 상속 또는 정보 제공 요청 대상자, 요청 가능한 정보의 범위를 명시하고, 이용자가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것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명문화하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가 사망 전에 유산관리자를 지정하거나 삭제 방식을 선택한 경우, 이를 존중하도록 하는 규정을 제안한 법안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다른 유형의 디지털 자산 상속도 주목할 만하다. 전자적 매체에 저장된 텍스트, 그림, 사진, 오디오, 동영상 등 디지털 파일은 해당 매체의 소유권과 함께 상속된다. 제3자 사이트에 게시된 기록물이 저작물일 경우, 저작권으로서 상속되며 사망 후 70년간 유지된다(저작권법 제39조). 다만 저작인격권은 상속되지 않는다(저작권법 제14조). 저작물에 이르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창작물이 포함된 온라인 콘텐츠는 ‘콘텐츠산업진흥법’에 따라 5년간 보호되며, 이 권리 역시 상속 가능하다. 또한 게임 아이템, 온라인 상품권, 사이버머니, 마일리지 등은 전자지급약정에 따른 채권적 권리로 분류돼 상속이 가능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의 자산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부동산과 현금뿐만 아니라 SNS 계정, 사진, 이메일, 게임 아이템, 가상자산까지도 삶의 흔적이자 재산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이처럼 새로운 유형의 자산들은 전통적인 법체계와 상속 개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제도 마련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유족의 정당한 상속권을 보호하는 균형 있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유산’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 남겨진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 그 이상이며,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이 이를 따라잡아야 할 때다.
부광득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