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 10월 22일 아이패드와 맥북프로 신제품을 발표했는데요,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애플 간부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직접 겨냥한 발언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맥 운영체제(OS) ‘매버릭스’와 사무용과 편집용 프로그램도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자산인 ‘윈도’와 ‘오피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조치입니다.

크레이그 페더리히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은 “여러분 컴퓨터에서 수백 달러씩 빼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습니다. 에디 큐 애플 부사장은 “남들은 응용 프로그램 사용 대가로 여러분한테 매년 돈을 받아가지 않느냐”고 했는데 무대 화면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 오피스 프로그램 ‘오피스 365’ 사진이 있고 사진 밑에 ‘연간 99달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애플은 공짜로 주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돈을 받지 않느냐는 얘기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들은 이걸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억울한 측면도 있겠죠. 애플이 ‘공짜’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짜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신제품에 깔린 소프트웨어 값은 하드웨어 가격에 반영됐다고 봐야죠.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간부는 노키아 신제품 발표장인 아부다비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려 반박했습니다. 많이 쓰지 않고 기능도 부족한 프로그램 가격을 낮춘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 애플의 ‘소프트웨어 공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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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길게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오피스가 궁지로 몰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대’에는 앉아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PC 메이커한테 팔기도 하고 소비자한테 직접 팔기도 하고…. 윈도가 세계 PC OS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상태여서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달라졌습니다. 컴퓨터에 윈도 대신 다른 OS를 탑재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크롬북입니다. 삼성과 에이서에 이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레노버와 휴렛팩커드(HP)도 크롬북을 내놓았습니다. 크롬북은 구글 크롬 OS가 깔린 클라우드 방식의 노트북입니다. OS를 깔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고 업그레이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최근에는 안드로이드 노트북까지 등장했습니다. 스마트폰 OS를 노트북에 적용해 본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매버릭스 공짜’를 선언하고 나선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도 협공을 받고 있습니다. 구글은 애초부터 ‘구글드라이브’를 공짜로 서비스하고 있죠. 구글드라이브는 클라우드 방식의 오피스 프로그램입니다. 문서를 작성하면 자동으로 저장되고 어떤 기기에서든 구글 계정으로 접속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구글 가입자에게 15기가(GB)의 저장 공간도 공짜로 줍니다. 애플도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사무용 프로그램을 공짜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갈수록 난감합니다. 모바일 OS 시장을 구글과 애플한테 빼앗겨 입지가 매우 좁은 상황에서 윈도와 오피스의 위력이 점점 약해질 게 분명해졌습니다. 13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어 온 스티브 발머는 모바일 진출과 업종 전환에 실패했고 결국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죠. 누가 후임 CEO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를 혁신해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