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상징 '총여학생회' 역사속으로···'총여'가 사라진 까닭은?
입력 2019-10-28 16:51:00
수정 2019-10-28 16:51:00
[캠퍼스 잡앤조이=한종욱 인턴기자]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올 초 서울권 대학에서 연세대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연세대 총여가 학생 총투표에 의해 폐지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서강대·경희대·서울시립대는 총여가 학칙상 존재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기구’로 여겨지고 있다. 총여학생회장과 구성원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김민수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은 “2002년부터 총여학생회장이 부재했고 부원도 없는 상태”라며 “17년도에 총여 재개편 투표를 진행했으나 서명인 수가 미치지 못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성균관대 총여 또한 2009년 이후 입후보자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2년을 끝으로 후보자의 부재, 투표율 미달 등으로 악재가 겹치며 작년도 학생 총투표를 거쳐 폐지됐다. 따라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한 남아있는 총여도 결국 성균관대의 뒤를 밟을 것으로 비춰진다.
민주화 바람 타고 대학 안착한 '총여학생회'총여는 대학교 내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조직된 학생단체다. 1984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재건됨과 동시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으로 설립됐다. 초창기 총여는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하는 역할을 선도했다. 이어 기존 총학생회의 산하 기구에서 탈피해 독립적 기구로 자리매김했다.
90년대로 들어서는 학내 성폭력 근절운동, 반(反) 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등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동아대에서는 총여가 마련한 ‘성폭력 특별규정’이 학칙에 포함되기도 했다. 총여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맞서 여학생들의 인권을 지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대표적 기구였다. 또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및 위협 속에서 여학생들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맡았다.
▲총여학생회 36년 사(史) 1984년
총여, 서울대, 고려대에서 첫 발족
1987년
서울권 28개 대학 총여, ‘서울지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발족
1992년
-한양대 총여,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학내 서명운동 실시
-광운대 총여, 성폭력 공청회 개최
-건국대 총여, ‘성폭력 추방 한마당성폭력 추방 운동’ 전개
1997년
동국대 총여, 이화여대 여성위원회, 서울산업대 총여, 서울시립대 총여 및 여성단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해 여성연대회의 결성
2006년
총여가 꾸준히 요구한 생리공결제, 중앙대를 시작으로 각 대학에 도입
2009년
여성 대학 진학률, 남성 추월
2018년
학생 총 투표로 동아대, 성균관대, 동국대, 광운대 총여 폐지
2019년
-연세대, 군산대 총여 폐지 및 개편 -명지대·원광대 등 경기·지방권에서 소수 총여가 활동
△올 초 연세대 총여를 끝으로 서울권 총여는 사라졌다. (사진 제공=한종욱 인턴기자)
자취 감춘 총여, 사회적 변화 및 대표성 상실 등이 한몫약 30년간 여학생들의 방패를 자처했던 총여는 왜 2010년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을까. 이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내 자치기구들의 사회적 역할이 과거 운동권 시절과는 달라졌다”며 “과거 대학은 정치·사회적 위상이 높았고, 사회를 이끄는 조직으로 존재했지만 현재는 약화됐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아졌다. 이 같은 자율성의 확대로 학생들이 학내활동을 하지 않자, 자치기구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며 “자치기구의 영향력 감소가 총여의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윤 교수는 대학 내 총여의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윤 교수는 “총여는 설립 당시에 대학 내 소수 집단이었던 여학생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대학 내 여학생들의 대표성이 낮았기 때문에 그 점을 벗어나고자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00년대 들어 대학 내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대학 내 성폭력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며 “총여를 통해 불평등을 호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커지자 대표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상승하며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졌다.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2.2%로 남성(65.3%)보다 7.4% 높았다.
△비어있는 총여학생회 실.(사진 제공=한종욱 인턴기자)
이렇듯 학내 구성원의 변화는 자치기구 구성원의 변화로 이어졌다. 윤 교수에 말에 따르면 “과거 총학 선거에서 부총학생회장에 여학생 임원을 우선적으로 넣는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하곤 했다”며 “현재는 총학 내에서도 여학생 간부들의 비율이 높아지며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는 상황이 빈번해지자 ‘총여’를 거치지 않고서도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연이은 실책도 영향 끼쳤나··· 학생회비 사용에 대한 문제도 부각 돼또한 총여의 지속된 실책이 폐지를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다. 올 초 연세대 총 투표에서는 총여 폐지에 찬성한 여학생이 3000명으로 반대를 표명한 이들의 2배였다. 이는 연세대 총여가 여학생 사회에서 지지기반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총여가 학생들의 신뢰를 잃은 시점은 연세대 2회 인권축제에 ‘기독교 비하 사진 게시’ 및 ‘젠더 갈등 발언’으로 논란이 있던 은하선 강사의 초빙 강연을 진행한 뒤부터였다. 특히 기독교 미션 스쿨인 연세대에서 기독교 비하 전력이 있던 은 강사를 초빙한다는 데에 따른 반대 여론이 크게 형성됐다. 그러나 총여는 강행했고 이를 계기로 사태의 심각성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총여 폐지’라는 안건에 대해 총여 측의 집단 보이콧, 재개편 TFT 논의를 표면적으로만 수용하는 등 불통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학생회비 문제도 부각됐다. 학생들 모두가 내는 학생회비를 총여에서 여학생 복지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연세대생은 “총여가 학생들의 학생회비를 논란이 따랐던 일에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라며 “더군다나 학생회비를 젠더갈등으로 논란이 있는 ‘은하선 작가’를 초빙하는 비용으로 지출하며 많은 연세인들의 반발을 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세대 총여 폐지 투표 결과. (사진 제공=연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현재 남아있는 총여는 소수에 불과하다. 명지대, 원광대, 군산대 등 경기권과 일부 지방권에는 아직 총여가 남아 있지만 이 또한 점차 개편되는 추세다. 군산대는 올 2학기를 끝으로 학생복지위원회로 개편됐으며, 원광대 또한 내년에는 학생 인권위원회로 개편될 전망이다.
마지수 원광대 여학생회장은 “자치기구 중 하나인 여학생회는 남여학생들의 학생회비로 운영되는데, 여학생들의 복지만 우선한다는 인식도 피할 수 없었다”며 “이 점을 수용해 현재는 남·여학생 모두의 복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내 성폭력 사건은 교내 성폭력대책위원회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여학생회 고유의 역할도 줄어들었다”며 “기존 여학생회가 보편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 학생 인권위원회로 개편되는 방향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jwk108@hankyung.com
현재 서강대·경희대·서울시립대는 총여가 학칙상 존재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기구’로 여겨지고 있다. 총여학생회장과 구성원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김민수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은 “2002년부터 총여학생회장이 부재했고 부원도 없는 상태”라며 “17년도에 총여 재개편 투표를 진행했으나 서명인 수가 미치지 못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성균관대 총여 또한 2009년 이후 입후보자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 그러다 2012년을 끝으로 후보자의 부재, 투표율 미달 등으로 악재가 겹치며 작년도 학생 총투표를 거쳐 폐지됐다. 따라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한 남아있는 총여도 결국 성균관대의 뒤를 밟을 것으로 비춰진다.
민주화 바람 타고 대학 안착한 '총여학생회'총여는 대학교 내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조직된 학생단체다. 1984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재건됨과 동시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처음으로 설립됐다. 초창기 총여는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하는 역할을 선도했다. 이어 기존 총학생회의 산하 기구에서 탈피해 독립적 기구로 자리매김했다.
90년대로 들어서는 학내 성폭력 근절운동, 반(反) 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등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동아대에서는 총여가 마련한 ‘성폭력 특별규정’이 학칙에 포함되기도 했다. 총여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맞서 여학생들의 인권을 지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대표적 기구였다. 또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및 위협 속에서 여학생들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맡았다.
▲총여학생회 36년 사(史) 1984년
총여, 서울대, 고려대에서 첫 발족
1987년
서울권 28개 대학 총여, ‘서울지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발족
1992년
-한양대 총여,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학내 서명운동 실시
-광운대 총여, 성폭력 공청회 개최
-건국대 총여, ‘성폭력 추방 한마당성폭력 추방 운동’ 전개
1997년
동국대 총여, 이화여대 여성위원회, 서울산업대 총여, 서울시립대 총여 및 여성단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해 여성연대회의 결성
2006년
총여가 꾸준히 요구한 생리공결제, 중앙대를 시작으로 각 대학에 도입
2009년
여성 대학 진학률, 남성 추월
2018년
학생 총 투표로 동아대, 성균관대, 동국대, 광운대 총여 폐지
2019년
-연세대, 군산대 총여 폐지 및 개편 -명지대·원광대 등 경기·지방권에서 소수 총여가 활동
△올 초 연세대 총여를 끝으로 서울권 총여는 사라졌다. (사진 제공=한종욱 인턴기자)
자취 감춘 총여, 사회적 변화 및 대표성 상실 등이 한몫약 30년간 여학생들의 방패를 자처했던 총여는 왜 2010년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을까. 이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내 자치기구들의 사회적 역할이 과거 운동권 시절과는 달라졌다”며 “과거 대학은 정치·사회적 위상이 높았고, 사회를 이끄는 조직으로 존재했지만 현재는 약화됐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아졌다. 이 같은 자율성의 확대로 학생들이 학내활동을 하지 않자, 자치기구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며 “자치기구의 영향력 감소가 총여의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윤 교수는 대학 내 총여의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윤 교수는 “총여는 설립 당시에 대학 내 소수 집단이었던 여학생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대학 내 여학생들의 대표성이 낮았기 때문에 그 점을 벗어나고자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00년대 들어 대학 내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대학 내 성폭력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며 “총여를 통해 불평등을 호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커지자 대표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상승하며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졌다.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2.2%로 남성(65.3%)보다 7.4% 높았다.
△비어있는 총여학생회 실.(사진 제공=한종욱 인턴기자)
이렇듯 학내 구성원의 변화는 자치기구 구성원의 변화로 이어졌다. 윤 교수에 말에 따르면 “과거 총학 선거에서 부총학생회장에 여학생 임원을 우선적으로 넣는 방식으로 선거를 진행하곤 했다”며 “현재는 총학 내에서도 여학생 간부들의 비율이 높아지며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는 상황이 빈번해지자 ‘총여’를 거치지 않고서도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연이은 실책도 영향 끼쳤나··· 학생회비 사용에 대한 문제도 부각 돼또한 총여의 지속된 실책이 폐지를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다. 올 초 연세대 총 투표에서는 총여 폐지에 찬성한 여학생이 3000명으로 반대를 표명한 이들의 2배였다. 이는 연세대 총여가 여학생 사회에서 지지기반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총여가 학생들의 신뢰를 잃은 시점은 연세대 2회 인권축제에 ‘기독교 비하 사진 게시’ 및 ‘젠더 갈등 발언’으로 논란이 있던 은하선 강사의 초빙 강연을 진행한 뒤부터였다. 특히 기독교 미션 스쿨인 연세대에서 기독교 비하 전력이 있던 은 강사를 초빙한다는 데에 따른 반대 여론이 크게 형성됐다. 그러나 총여는 강행했고 이를 계기로 사태의 심각성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총여 폐지’라는 안건에 대해 총여 측의 집단 보이콧, 재개편 TFT 논의를 표면적으로만 수용하는 등 불통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학생회비 문제도 부각됐다. 학생들 모두가 내는 학생회비를 총여에서 여학생 복지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연세대생은 “총여가 학생들의 학생회비를 논란이 따랐던 일에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부작용도 있었을 것”이라며 “더군다나 학생회비를 젠더갈등으로 논란이 있는 ‘은하선 작가’를 초빙하는 비용으로 지출하며 많은 연세인들의 반발을 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세대 총여 폐지 투표 결과. (사진 제공=연세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현재 남아있는 총여는 소수에 불과하다. 명지대, 원광대, 군산대 등 경기권과 일부 지방권에는 아직 총여가 남아 있지만 이 또한 점차 개편되는 추세다. 군산대는 올 2학기를 끝으로 학생복지위원회로 개편됐으며, 원광대 또한 내년에는 학생 인권위원회로 개편될 전망이다.
마지수 원광대 여학생회장은 “자치기구 중 하나인 여학생회는 남여학생들의 학생회비로 운영되는데, 여학생들의 복지만 우선한다는 인식도 피할 수 없었다”며 “이 점을 수용해 현재는 남·여학생 모두의 복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내 성폭력 사건은 교내 성폭력대책위원회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여학생회 고유의 역할도 줄어들었다”며 “기존 여학생회가 보편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 학생 인권위원회로 개편되는 방향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jwk1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