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이진이 기자/최은희 대학생 기자] “배움에 나이가 상관이 있나요? 중요한 건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에요.”△김입분 할머니.올해 부천대 사회복지과 20학번 새내기로 입학해 현재 2학기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김입분(75) 할머니. 곧 팔순을 앞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힘찬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5일 만났던 김 할머니의 모습은 여느 푸근한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지만 눈빛에 서린 총기만은 범상치 않았다. 가장 먼저 고령임에도 대학진학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김 할머니의 답변은 주저함이 없었다.“못 배운 게 평생을 사무치는 한이었어요. 어지러운 시기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배움의 기회를 놓쳐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지요. 대학에 가서 원없이 못 다한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 김입분 할머니는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6.25 전쟁통에 여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가난으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가까스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은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김 할머니는 당시 느낀 감정들을 털어놨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당연히 중학교에 가는 줄 알고 알파벳 단어를 몇 날 동안 혼자 다 익혔어요. 그런데 못 가게 되니 어쨌겠어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학업의 기회를 놓친 김 할머니는 17살 때부터 양재, 미용, 보따리 장사 등 청소년 시절 전부를 돈벌이에 매진했다. 당시 중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가정을 꾸리고 농사를 짓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렇게 서서히 어린 시절 동무들도, 공부에 대한 열망도 잊히는 듯싶었다.김 할머니가 다시 공부를 결심한 것은 60대에 접어들 무렵, 초등학교 동창들과 모인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를 제외한 참석자들은 전부 고졸 이상의 학력자들이었다. 김 할머니는 한 친구가 복용하던 외국 영양제 정보를 물었다. 친구의 대답이 화근이었다. “네가 이 약 이름을 말해주면 받아 쓸 줄이나 알아?”라고 말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친구의 말에 큰 상처를 받고 가슴 속에 묻어둔 향학열을 불태우기 시작했다.김 할머니는 63세에 운전면허증을, 69세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70세엔 본격적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부천 진영고등학교의 주부학교를 알게 됐다. 주부학교는 교실만 따로 배정되고 10대들과 똑같이 학교에 다니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방학 없이 각 2년의 중·고등학교 정규수업을 이수해야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 한 번의 결석 없이, 모든 수업에 참여하는 열성으로 김 할머니는 학업에 정진했다. 가장 쉽고 흥미 있는 과목으로 수학과 영어를 꼽았다. 그는 “답을 풀었을 때, 얻는 쾌감이 대단하다”라며 “그때 상처 준 친구가 이제 와 돌아보니 너무 고마운 친구”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김 할머니는 주부학교에서도 가장 고령에 속했다. 그러나 나이를 초월한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그 누구보다 컸다. 방과 후에는 복습과 예습을 하며 배우고 또 배웠다. 밭일 농사를 병행하며 틈틈이 책상을 지켰다. 특유의 끈기와 뚝심 덕분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김 할머니는 4년간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그동안 배우면서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신난 표정으로 일축했다.“힘들긴요. 배운다는 것만큼 설레는 게 없어요. 오늘 공부가 끝나면 내일 공부가 궁금하고. 공부가 적성에 너무 맞아 탈이에요.”김 할머니는 공부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김 할머니는 입학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영고등학교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10대들과 학교에 다니다 보니, 꼭 불량 학생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모두 데리고 빵집에 갔지요. 자기네들끼리 싸운 날에는 화해도 시키고 빵도 사주고 하다 보니 어느새 별명이 ‘빵 할머니’가 돼있더라고요.(웃음)”많은 추억이 깃든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마치고, 김 할머니는 2020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덮쳐 지금까지 대학 캠퍼스에 단 두 번밖에 가보지 못했다. 비대면으로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컴퓨터로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제출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김 할머니는 현재 대학생활이 20학번 새내기만 겪는 또 하나의 추억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혼자도 척척 컴퓨터로 레포트를 제출한다며 뿌듯해하는 김 할머니.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다. “가깝게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서 동기들과 얼른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어요. 멀리는 대학 졸업을 해서 자아 만족을 느끼고 싶어요.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냈다는 것 말이에요. 또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내 주변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네요.”누군가에게는 공부가 제일 쉽다고 했던가. 김 할머니에게 공부란 일생 내내 품어온 숙원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다. 75세의 나이를 잊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맞이한 김 할머니의 도전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ziny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