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가는 게 유일한 목표였던 평범한 고교생 이복기가 원티드랩 CEO가 되기까지



[한경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복기(42) 대표는 1998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모범생 이복기의 마음속 한켠에는 ‘창업’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사업가였던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학부 졸업과 함께 그는 기본기를 쌓기 위해 대학원에서 MIS(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했다.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란 조직의 계획·운영 및 통제를 위한 정보를 바탕으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정보시스템이다. 이곳에서 그는 IT를 구심점으로 한 세상의 변화를 목도했다.
당시 새로운 플랫폼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지상파 방송 3사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때였다. 그는 이들의 대응방법을 케이스스터디로 써서 경영사례문집을 출간했다. 2000년 중반, 휴대폰 역시 단순히 문자메시지나 전화라는 기본 기능에서 벗어나 점점 다양화하고 있었다. 석사과정 2년 동안 그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을 관찰했다. 박진감 넘치는 세상은 매일 그를 흥분시켰다.
석사과정이 끝날 때쯤 그는 다시 박사와 취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간 눈으로만 봤던 변화를 직접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던 그는 고심 끝에 컨설팅 회사 취업을 택했다. 미국계 컨설팅회사 ‘엑센츄어’였다.
이곳에서 그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 KT, SK텔레콤 등 전자통신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현장은 그를 더욱 설레게 했다. 해외 전문가에게 직접 연락을 하고 필요하면 바로 날아가 대면인터뷰를 했다. 이런 그의 적극성을 본 회사도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33세, 입사 3년차 이복기 대표는 ‘부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6년간 매일 박진감 넘치게 달렸다. 프로젝트 리더였기에 저녁도, 주말도 없는 건 당연했다. 매일 회사 문을 나서면 새벽 2~3시였다.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세상엔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쓰는 비용도 상당하더라고요. 문득, 이 문제들 중 하나 정도는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 딱 하나를 찾아서 실마리를 풀어보자. 마음속의 무언가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추천채용’은 100개 아이디어 토너먼트의 최종 우승작“미쳤구나!” 요 근래 유난히 후줄근하던 아들의 옷차림이 휴가가 아닌 퇴사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부모님은 탄식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걱정스런 부모님 앞에서 떳떳할 수 없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야심차게 퇴사한 그이지만 당장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할지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부모님이 왜 그렇게 반대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현실은 전쟁터였어요. 컨설팅회사 부장으로서의 이복기와 막 사업을 시작한 이복기는 완전히 달랐어요.”
첫 사업은 집단소송(공익소송)을 도와주는 모바일 플랫폼 서비스였다. 변호사 지인과 함께 시작했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었다. 결과는 실패. 다음으로는 이 대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이템화해보기로 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던 그는 이번엔 여행 체험 프로그램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광화문에서 한복을 입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사진촬영, 도자기 체험, 전통주마시기 등의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짜서 여행객에게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패키지는 당시만 해도 너무 생소했다. 외주 개발사에 직원들까지 그에게 딸린 식솔들만 10명 가까이가 됐다. 이들과 함께 8개월을 꾸역꾸역 이어갔지만 결국 창업자금으로 마련한 1억원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명색이 CEO였지만 미팅 상대방에게 그는 그냥 ‘웬 낯선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전에는 명함 한 장이면 모든 소개가 가능했던 그의 이름은 이제 주절주절,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수없이 긴 곁다리가 있어야 겨우 알려졌다. ‘실력’인 줄로만 알았던 그동안의 성과는 모두 회사라는 ‘빽’ 덕분이던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아 내가 이렇게 망하는구나.” 그는 절망했다. 하지만 곧 패인을 찾기 시작했다. 멀리있지 않았다. 대표인 자기 자신이 부족했던 것.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주변에 좋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수소문했다. 그때 대학 동문 중 한 명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니던 지금의 황리건 총괄이사를 소개했다. 둘은 첫 만남에 창업 아이디어를 놓고 6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결론은 ‘뭐가됐든 해보자’는 것.
이후 공동창업자 *세훈 씨도 가세했다. 셋은 일단 아이디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이 대표가 창업을 결심하게 한 ‘문제해결’로 돌아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논의했다. 세 명은 다같이 쏟아낸 100여개 아이디어를 가지고 2개월간 토너먼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디어가 바로 지금의 ‘원티드’다. 지인추천으로 회사와 사람을 연결하는 것. 그들 자신이 바로 그렇게 모인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답은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전기자동차 급속충전, 엄마를 위한 맞춤형 모바일쇼핑, 아이돌 팬을 위한 SNS 등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모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템이었던 거죠. 반면 채용은 이미 우리도 그동안 겪어왔고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 겪게 될 피할 수 없는 문제인 거예요. 컨설팅회사에 있을 때 가까이에서 본 기업들의 고민은 딱 두 가지로 압축됐어요. 돈과 사람. 이중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보기로 한 거죠.”
외국계 회사 출신인 이들은 모두 외국의 ‘추천채용’ 시스템에 익숙했다. 이를 한국 채용시장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을 뽑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사담당자가 신뢰하는 사람이 신뢰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거예요. 이 단순한 원리를 국내 최초로 적용한 거죠.”


‘매칭률’이 원티드의 무기… 매칭이 잘 돼야 원티드도 산다원티드는 지인추천 기반 채용서비스다. 누구든지 추천한 지인이 이직에 성공하면 50만원을 보상금으로 받는다. 주 수익모델은 채용 중개수수료인데, 이 수수료는 원티드를 통해 입사한 직원이 3개월 이상 다녀야 청구할 수 있다. 그만큼 매칭가능성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
현재 월 500명이 원티드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찾는다. 회사 누적 매출은 217억원에 달한다. 또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5개국에서 150만 회원과 8천개 회사를 고객사로 가지고 있다.
원티드는 기존 채용포털과 헤드헌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서비스다. 이 대표는 “기존 채용포털은 광고 중심 서비스다. 최대한 많은 트래픽을 모아 기업 광고로 수익을 창출한다. 그러다보니 광고비와 노출순위가 비례한다. 지원자와 관련 없는 채용공고가 맨 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원티드는 이를 뒤집었다. 구직자가 제대로 정착해야 구직 회사에 과금할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소개를 잘 해야 회사도 먹고사는 구조’다. 자연히 매칭률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칭률’이 회사의 생존을 위한 핵심요소인 만큼 원티드랩은 합격가능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인다. 2018년부터 쌓아온 지원자와 기업간 매칭결과를 AI로 학습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 컴퓨터가 매칭률을 자동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들은 주별, 월별로 지원자의 매칭률을 확인한다. 자체 분석 결과, 정확도는 70%에 이른다.
자연히 역채용도 가능하다. 회사가 먼저 구직자에게 입사를 제안하는 것. 이 역시 매칭률 덕분이다. AI가 기업에 자동으로 구직 직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추천해준다. 채용담당자는 이 결과를 토대로 구직자에게 연락한다. 기업은 발품을 줄일 수 있고 구직자는 인사담당자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등 위험을 덜 수 있다.
‘지인추천’이라는 본질에 맞게 직무 담당자가 해당 직무지원자를 추천한다는 것도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불특정 직무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 헤드헌팅 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사람을 위해 만든 회사… 창업 6년차에도 역시 중요한 건 사람지금 이복기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직원들이 원티드랩에 몰입하게 하는 것.
“전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사업은 사람을 업고 오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뀌는 거죠. 그래서 직원들이 원티드라는 일에 몰입하고 협업하게 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같은 시간을 일하지만 더 적은 돈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같은 시간에 더 집중해서 일하거나 적은 인원으로 시너지를 내야 하죠. 그래서 만든 게 원티드웨이(way)입니다.”
원티드웨이는 이 대표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초안을 만든 협업규율이다. 여기에 30여명의 리더가 함께 그간의 성공 및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를 맞대 만들었다.


‘6가지 기둥’도 있다. 긍정적인 동료가 되자, 도전적으로 일하자,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자, 처음부터 끝까지 공유하자, 데이터 기반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자, 시간과 품질을 준수하자다.
이중 외부에서 가장 놀라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공유’하는 것. 원티드인들은 사내 대화창에 모든 업무를 공유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모든 직원은 도전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뒤 동료의 도움을 받아 이를 기어코 달성해낸다.
데이터 역시 이 대표가 중시하는 요소. 현재 원티드랩의 데이터팀에는 6명, 머신러닝팀에도 3명이 있다. 다른 회사에 비해 데이터 담당 직원의 비중이 높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에게 원티드의 모든 이벤트와 사용자 행동, 성과 등을 데이터화 해 공유한다. 말 그대로 ‘연봉’ 빼고는 모두다.
직원들은 언제든 회사의 매출 등 모든 데이터를 볼 수 있다. ‘우리의 일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아는 것에서 직원의 주인의식이 출발한다’고 이 대표는 믿는다. 측정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회사의 모든 데이터는 회사와 직원들이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나침반이에요. 만약 어디에선가 문제가 발생한다면 전 직원이 이를 인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거죠.”


지난 5년간 채용 문제에 집중해왔던 원티드랩은 앞으로 커리어 전체를 책임질 계획이다. ‘커리어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 일환으로 원티드랩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직군의 담당자들이 모인 온라인 컨퍼런스를 열었다. ‘크리에이티브 앤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최근 컨퍼런스에는 1000여명이 몰려 행사를 관람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과 홍콩 현지 연사도 초청해 에어비앤비, 구글 등 IT기업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교육 세션을 열었다. 원티드랩은 매주 한 개의 컨퍼런스를 온라인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원티드랩 설립 6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이 대표의 창업 만족도도 궁금해졌다. 창업 초기, 컨설팅회사 갓 입사했을 때 받은 연봉보다 적은 돈이 들어왔다. 퇴사직전 받았던 연봉을 회복한 게 불과 얼마 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그는 원티드랩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 후부터 하루하루 뚜벅뚜벅 앞으로 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어요. 생각보다 매일이 비슷해요. 아침에 출근하면 쉼 없이 회의를 하고 또 사람들도 만나러 다니고 있죠. 대신 전에는 내 일에 대한 대가가 월급 한 가지였다면 지금은 저를 만족시키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기업과 구직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저와 함께하는 식구들도 계속 모이고 있죠. 유저와 기업이 확보되고 팀 식구들이 모이는 등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죠. 원티드랩을 만들고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이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세상에 쏟아져나오고 이중 상당수는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쳤을 거예요. 중요한 건 이 아이디어를 누구와 함께 실현하느냐예요. 같은 아이디어라도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죠. 돌이켜보면, 팀원들과 함께 고생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신뢰하게 된 게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믿습니다.”
[사진=김기남 기자]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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