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라이프] 이은솔 메디블록 대표
환자 데이터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의료블록체인 서비스 현실화 목표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여태껏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왔어요. 이제는 전략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걸 할 겁니다.(웃음)”
블록체인기술을 의료에 접목해 언제 어디서나 환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인 이은솔(32) 메디블록 대표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다. 어릴 적부터 수학 영재라 불릴 정도로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그는 서울과학고와 한양대 의대를 거쳐 영상의학전문의로서의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순탄한 길을 제쳐두고 험난한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그를 의사로 만들어 준 담당 교수님과 부모님의 회유도 있었지만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 일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그 일을 제가 한다고 생각하면 짜릿해요.(웃음) 그래서 (창업을)선택했죠.”
프로그래밍 영재? 하나만 파는 ‘외골수’ 초등학생 시절 이 씨는 수학과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경남 울산에서 잠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신설된 컴퓨터부에서 처음 컴퓨터와 마주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제 손으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남들은 복잡하고 어려워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이 씨는 초·중학교 재학시절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력 덕분에 영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과학고에 진학한 이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한층 더 다가가는 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고교 입학 무렵 반배치 고사를 본 이 씨에게 적잖은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컴퓨터 과목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반배치 고사에서의 성적이 바닥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반배치 고사에서 7점을 받았어요. 140명 중에서 139등, 말 그대로 꼴등이었죠.(웃음)”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학원도 다녔지만 한 달 만에 포기했다. 영어에는 재미가 붙지 않아서였다. 당연히 고교 시절 영어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반면 프로그래밍 실력은 날로 향상해 교내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관심 없는 과목은 암만해도 안 되더라고요.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동기부여도 안 됐었죠. 그래서 프로그래밍에 더 빠졌던 것 같아요.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부모님 잔소리 들을 일도 없어서 오히려 자유의 몸이었죠.(웃음)”
2학년으로 진학한 이 씨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카이스트나 서울대 공대를 염두 해두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부모님의 반대였다.
“공대로 진학하고 싶어 카이스트나 서울대 공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죠. 공대보단 의대를 원하셨어요. 전 수상 이력이 있어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 진학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반대가 심하셨어요.”
늘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해왔던 이 씨는 처음으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조기졸업이 무산된 그는 그때부터 부모님이 원하던 의대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내신이 문제였다. 그동안 좋아하던 것에만 열심히 했던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위기였다.
“의대를 진학하려고 보니 내신이 중요했어요. 덕분에 제가 지원한 곳은 다 떨어졌죠. 그러다 한양대 의대 수시전형은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기에 지원했더니 경쟁률이 99대1이었어요. 다행히 합격했죠.(웃음)”
공대에서 의대, 전략적으로 바꾼 목표점 공대에서 의대로 목표점을 바꾼 데에는 이 씨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는 의료공학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놓고 부모님과 마찰을 겪던 시기에 고민이 많았어요.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죠. 컴퓨터만 파고들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씨는 대학 진학 후 학업과 더불어 알바도 병행했다. 그 중 본과 4학년 때 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인공지능 의료영상사업단(Medical Imaging&robotics Lab)의 알바가 그의 목표점을 확고히 하는 데 한몫했다.
“아산병원 의료영상사업단에서 환자의 병변(病變)을 찾아주는 AI프로그램을 만드는 알바였는데, 그 일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제 목표가 확실해졌어요. 제 특기인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의료를 접목시켜 의료AI분야를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졌거든요.”
2009년 2월 대학 졸업 이후 아산병원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생활을 거친 이 씨는 공중보건의 근무를 위해 울릉도로 떠났다. 이 씨는 울릉도와 경기도 가평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통해 의료AI분야 창업을 틈틈이 준비했다.
“울릉도에서 1년 간 근무하고 가평으로 옮긴 뒤 매 주말마다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헬스케어나 병원 관련 앱은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어느 병원을 가던지 나의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의료+블록체인기술=메디블록 이 씨는 의료와 블록체인기술을 연결한 새로운 메디컬통합시스템을 위해 지난 4월 창업했다. 블록체인기술이란,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한 비트코인 기반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분산화 기술이에요. 누군가 중앙 서버를 두고 정보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에 정보를 기록하는 시스템이라 더욱 안전하죠. 블록체인기술을 의료에 접목시켜 어느 병원에 가던지 내 기록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적용시키는 거예요.”
아직 창업 초기이지만 의료계 관심은 뜨겁다. 회사로 블록체인에 관한 문의가 오기도 하고, 병원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메디블록의 수익은 마이너스다.
“아마 내년까지 회사 수익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병원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됐겠지만 제가 한번 꽂히면 꼭 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리고 저희 사업모델을 보곤 주변에서 연락을 주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서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응원을 받을 때면 굉장히 힘이 돼요. 그 힘 때문이라도 안할 수가 없어요.(웃음)”
khm@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
환자 데이터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의료블록체인 서비스 현실화 목표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여태껏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해왔어요. 이제는 전략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걸 할 겁니다.(웃음)”
블록체인기술을 의료에 접목해 언제 어디서나 환자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인 이은솔(32) 메디블록 대표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다. 어릴 적부터 수학 영재라 불릴 정도로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그는 서울과학고와 한양대 의대를 거쳐 영상의학전문의로서의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순탄한 길을 제쳐두고 험난한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그를 의사로 만들어 준 담당 교수님과 부모님의 회유도 있었지만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 일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인데, 그 일을 제가 한다고 생각하면 짜릿해요.(웃음) 그래서 (창업을)선택했죠.”
프로그래밍 영재? 하나만 파는 ‘외골수’ 초등학생 시절 이 씨는 수학과 컴퓨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경남 울산에서 잠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신설된 컴퓨터부에서 처음 컴퓨터와 마주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제 손으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남들은 복잡하고 어려워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이 씨는 초·중학교 재학시절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력 덕분에 영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과학고에 진학한 이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한층 더 다가가는 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고교 입학 무렵 반배치 고사를 본 이 씨에게 적잖은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컴퓨터 과목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반배치 고사에서의 성적이 바닥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반배치 고사에서 7점을 받았어요. 140명 중에서 139등, 말 그대로 꼴등이었죠.(웃음)”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학원도 다녔지만 한 달 만에 포기했다. 영어에는 재미가 붙지 않아서였다. 당연히 고교 시절 영어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반면 프로그래밍 실력은 날로 향상해 교내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관심 없는 과목은 암만해도 안 되더라고요.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동기부여도 안 됐었죠. 그래서 프로그래밍에 더 빠졌던 것 같아요.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부모님 잔소리 들을 일도 없어서 오히려 자유의 몸이었죠.(웃음)”
2학년으로 진학한 이 씨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자신의 재능을 살려 카이스트나 서울대 공대를 염두 해두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부모님의 반대였다.
“공대로 진학하고 싶어 카이스트나 서울대 공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죠. 공대보단 의대를 원하셨어요. 전 수상 이력이 있어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 진학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반대가 심하셨어요.”
늘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해왔던 이 씨는 처음으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조기졸업이 무산된 그는 그때부터 부모님이 원하던 의대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내신이 문제였다. 그동안 좋아하던 것에만 열심히 했던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위기였다.
“의대를 진학하려고 보니 내신이 중요했어요. 덕분에 제가 지원한 곳은 다 떨어졌죠. 그러다 한양대 의대 수시전형은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기에 지원했더니 경쟁률이 99대1이었어요. 다행히 합격했죠.(웃음)”
공대에서 의대, 전략적으로 바꾼 목표점 공대에서 의대로 목표점을 바꾼 데에는 이 씨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는 의료공학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놓고 부모님과 마찰을 겪던 시기에 고민이 많았어요. ‘과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죠. 컴퓨터만 파고들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씨는 대학 진학 후 학업과 더불어 알바도 병행했다. 그 중 본과 4학년 때 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인공지능 의료영상사업단(Medical Imaging&robotics Lab)의 알바가 그의 목표점을 확고히 하는 데 한몫했다.
“아산병원 의료영상사업단에서 환자의 병변(病變)을 찾아주는 AI프로그램을 만드는 알바였는데, 그 일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제 목표가 확실해졌어요. 제 특기인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의료를 접목시켜 의료AI분야를 새롭게 만들어 보고 싶어졌거든요.”
2009년 2월 대학 졸업 이후 아산병원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생활을 거친 이 씨는 공중보건의 근무를 위해 울릉도로 떠났다. 이 씨는 울릉도와 경기도 가평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통해 의료AI분야 창업을 틈틈이 준비했다.
“울릉도에서 1년 간 근무하고 가평으로 옮긴 뒤 매 주말마다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헬스케어나 병원 관련 앱은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어느 병원을 가던지 나의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의료+블록체인기술=메디블록 이 씨는 의료와 블록체인기술을 연결한 새로운 메디컬통합시스템을 위해 지난 4월 창업했다. 블록체인기술이란, 블록(block)을 잇따라 연결한 비트코인 기반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분산화 기술이에요. 누군가 중앙 서버를 두고 정보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에 정보를 기록하는 시스템이라 더욱 안전하죠. 블록체인기술을 의료에 접목시켜 어느 병원에 가던지 내 기록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적용시키는 거예요.”
아직 창업 초기이지만 의료계 관심은 뜨겁다. 회사로 블록체인에 관한 문의가 오기도 하고, 병원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메디블록의 수익은 마이너스다.
“아마 내년까지 회사 수익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병원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됐겠지만 제가 한번 꽂히면 꼭 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리고 저희 사업모델을 보곤 주변에서 연락을 주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서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응원을 받을 때면 굉장히 힘이 돼요. 그 힘 때문이라도 안할 수가 없어요.(웃음)”
khm@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