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탐구 ‘기업 vs 기업’⑫] ‘국내 넘어 글로벌 패션 선두’ 이랜드월드·코오롱인더스트리

[취업 탐구 ‘기업 vs 기업’⑫ ] 이랜드월드·코오롱인더스트리
[캠퍼스 잡앤조이=강홍민 기자]국내 패션 산업을 이끌고 있는 이랜드월드(이하 이랜드)와 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인더) 두 기업 모두 10여 년 전 유통 판로를 확장하기 위해 중국 진출을 선언했다. 타국에서 수차례 위기도 있었지만 특유의 끈기로 국내 브랜드의 힘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사드 배치 문제 등으로 중국 사정이 녹록치 않아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수 시장의 침체도 장기화될 조짐이 엿보인다. 또 한 번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저력이 기대된다. 이랜드, 10명의 직원에서 3만 명으로 규모 커진 글로벌 패션기업 1980년 9월 23일. 이화여대 앞 보세 옷 가게 ‘잉글런드’가 문을 열었다. 자그마한 이 가게가 훗날 대한민국 최대 패션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창업 36주년을 맞은 이랜드그룹 이야기다.
불과 10여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이랜드는 30년 만에 국내 직원 6500여명, 해외 2만2000명을 거느린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6년 법인화 당시 66억 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2조 원을 기록, 패션을 비롯해 유통, 건설, 레저, 외식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30대 그룹에 진입했다.



이랜드그룹 내 가장 높은 매출을 차지하는 패션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4조 1783억 원, 영업이익은 2192억 원이다. 이랜드의 패션 브랜드는 1980년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랜드 신화’를 낳기도 했다. 1983년 ‘브렌따노’를 시작으로 1985년 ‘언더우드’, 1989년 ‘헌트’, ‘리틀브렌’ 등 내놓는 브랜드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헌트는 1993년 월 100억 원, 그 해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일브랜드로는 국내 최초 연간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브랜드로 등극했다. 당시 백화점과 재래시장으로 양분된 국내 시장에서 이랜드는 캐주얼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접근해 성공한 케이스다.
1990년에는 시계 및 주얼리 사업 진출과 여성 캐주얼 부문에 진출해 1993년 5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유통업과 식품사업, 내의사업 부문에 진출했고,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 해외 현지 공장을 세워 해외생산 비율을 늘리면서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랜드는 새로운 브랜드 실패와 성장률 정체기를 맞았지만 사업구조 재편 및 재무구조 개선, 경영시스템 혁신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2년 만에 부채비율을 289%에서 135%로 줄였다.
2000년으로 들어서면서 이랜드는 패션과 유통사업에 집중했다. 새로운 성장영역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유통업계 최초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도입, BSC(균형성과 성적지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CCC대상(2000년), 지식경영대상(2001년), 존경받는 기업기업인대상(2004년) 수상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경영성적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해왔다.
그러던 중 2007년 6월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뉴코아에 근무하던 350여명의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하고, 절반이 넘는 223명의 직원을 외부 용역업체로 돌리거나 해고했다. 이 사태로 뉴코아 노동조합은 외주화 반대 파업을 벌였다.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는 2006년 통과된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여론의 비난을 받았으며, 이 사태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 웹툰이 제작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이랜드그룹의 외식계열사인 이랜드파크에서 불거진 알바 임금 미지급 사건이 발생했다. 이 논란으로 이랜드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임금 미지급 해당자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고 외식사업부문 아르바이트 1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코오롱 인더스트리, 매출 5조 원대 기업으로 성장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인더)는 1957년 고(故)이동찬 명예회장이 설립한 ‘한국나이롱’을 모태로 성장한 회사다. 코오롱인더는 국내·외 패션 브랜드 전개와 나일론 생산, 그리고 자동차, 화학 필름, 전자재료 등에 쓰이는 최첨단 산업용 섬유까지 사업영역을 확장시켜 연매출 5조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0년 코오롱그룹 지주 회사 체제전환으로 코오롱 제조사업부문에서 분할된 기업으로 패션을 비롯해 산업소재, 화학 등의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54년 세워진 개명상사부터 시작된다. 코오롱그룹의 시발점인 개명상사는 1935년 창업자인 이원만 회장이 일본에서 아사히공예사라는 모자공장을 지은 뒤 1951년 도쿄에 삼경물산을 세웠다. 1953년 한국에 나일론을 독점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국내 처음으로 나일론이 들어온 시기다. 이듬해 코오롱그룹의 전신인 개명상사를 세우고, 일본 삼경물산의 서울 사무소인 한국삼경물산을 세웠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동찬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한국삼경물산의 대표를 맡았고, 1960년 이동찬 회장은 개명상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1961년 나일론 원사 제조를 위해 미국의 켐텍스(Chemtex Inc.)사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 이 회사는 1963년 스트레치 나일론을 첫 수출하고, 같은 해 8월 한국 최초로 나일론 원사 공장을 준공했다. 1968년 영어 사명인 ‘KORLON'을 ’KOLON'으로 변경했다. ‘코오롱(KOLON)'은 코리아+나일론(Korea+Nylon)의 합성어다.
코오롱은 199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0~1만 분의 1에 불과한 초극세사를 이용하는 첨단 섬유소재 샤무드를 생산했고, 1996년 이웅렬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1년 코오롱상사를 Fnc코오롱 등 3개사로 분할 이후 2009년 8월 코오롱이 패션 자회사인 Fnc코오롱을 흡수합병하면서 신설법인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이관됐다. 이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코오롱그룹은 2009년 12월 코오롱에서 패션을 포함한 제조사업 부문을 떼어내 코오롱인더스트리로 분할했다.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은 코오롱스포츠를 비롯해 시리즈, 잭니클라우스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27개의 패션 및 잡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마크제이콥스, 벨루티 등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도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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