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에서 예비 커플까지, ‘온라인 인생’ 정리해드려요”

[미래직업] 디지털 장의사-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
[캠퍼스 잡앤조이=김예나 기자] 모든 것이 정보화되는 시대. 내 기억 속에선 잊혀 졌어도 디지털 세상에는 무심코 단 댓글 하나, 자랑하듯 올린 사진 한 장조차 모두 남아 있다. 그리고 디지털 세상 속에 쌓여가는 정보들로 생겨난 ‘온라인 인생’은 누군가 지우지 않는 이상, 평생 기록된다.

사이버 세계에 기록된 ‘나’를 지운다
인터넷에 남긴 수많은 기록들을 지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탄생한 직업이 ‘디지털 장의사’다. 박형진(35) 이지컴즈 대표는 “‘디지털 장의사’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남긴 인터넷 흔적인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고, 고객이 미리 의뢰한 유언에 따라 게시물이나 댓글, 계정, 온라인 상거래 기록 등을 지우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장의사’라고 불리게 됐다”면서 “요즘은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주목을 받으며 자신이 작성한 디지털 기록을 삭제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살아 있는 동안의 기록을 지우는 업무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지난 2009년 온라인 IT교육 사이트 ‘이지컴즈’를 개설하며 창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무렵부터 온라인 흔적을 지우는 업체 몇 곳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호기심 반, 도전정신 반’으로 ‘디지털 장의사.kr’ 사이트 하나를 추가로 개설했다.
별도의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온라인 기록을 삭제해 달라는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박 대표는 “온라인 흔적을 지우려는 수요는 2014년부터 매년 두 배 이상씩 늘었고, 그만큼 매출도 늘었다”며 “일상에서 온라인 활동의 비중이 커지면서 SNS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자주 불거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취업이나 결혼 등을 앞두고 과거 흔적을 지우려는 수요도 많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우선 고객의 의뢰를 받으면 상담을 통해 삭제하고 싶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고객에게 동의서와 위임장 등을 받은 뒤 자체 제작한 전문 검색 프로그램을 활용, 고객의 정보를 검색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각 사이트별, 형식별(게시글, 댓글, 사진, 동영상 등)로 분류하고, 하나씩 직접 삭제하거나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한다.
그는 “삭제를 요청할 때는 정당한 삭제 이유를 들어 사이트 관리자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개인보다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타인이 올린 게시물 가운데 의뢰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있을 때도 해당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다.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의 개인정보보호팀은 자체적으로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2차적인 검증을 거친 후 기록을 삭제한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다 삭제할 수는 없다. 정보통신망법 44조에 따라 개인정보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삭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사이트와 SNS 등에 올라와 있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기면서, 국내 사이트에 올린 글은 보통 하루에서 이틀 만에 삭제될 정도로 쉬워졌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외국 사이트는 게시글 삭제 절차가 까다로워 한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삭제 비용은 데이터양이나 기간에 따라 30만~100만 원으로 달라진다.
그는 현재 ‘디지털장의사.닷넷’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일반인들이 휴대폰 번호나 아이디를 검색해 자신이 남긴 인터넷 사용 기록들을 무료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꼭 필요한 ‘디지털 장의사’
현재까지 디지털 장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과나 공인 자격증은 없다. 하지만 지난해 1월에는 디지털 장의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신규 직군으로 인정 받았다. 또 2015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선정한 ‘5년내 부상할 신직업’에 꼽힌 만큼, 미래에 떠오를 직업임이 분명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한다.
“디지털 세상 속에 쌓이는 정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 안에 섞여있는 진실과 거짓, 오해와 왜곡된 정보 등을 온라인에서 검색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앞으로 자신의 온라인 흔적을 지우고 관리하려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디지털 장의사’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지겠죠.”
또 초기 자본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 박 대표는 자신에게 창업을 문의해온 사람에게 노하우를 알려주고 ‘디지털 세탁소’라는 사이트를 열도록 돕기도 했다. 그는 “온라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삭제하는 업무는 프로그램 작동법을 배우면 3~6개월 만에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며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창업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나 이익을 위해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하는 사용자의 글을 지워달라는 요청이 올 때가 있는데,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잊힐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꼼꼼함과 남을 돕겠다는 사명감도 필수”
그는 앞으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되기 위한 온라인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정보통신법 교육과 통신예절, 온라인 에티켓, 피해사례 분석과 대응 방법 등의 각종 교육을 수료하면 공인 인증 자격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갈 예정이다.
“방송에 출연해서 악플에 시달리거나 기사화된 내용을 삭제해 달라는 특별한 요청도 있지만, 취업을 앞두고 과거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사이트에서 활동을 했다거나 SNS에 과거 연인과 남겨뒀던 게시물, 유출된 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등의 평범한 의뢰가 더욱 많아요. 무심코, 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인터넷을 사용했는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거죠. 나중에 삭제할 수 있다지만 애초에 개인 정보를 지키는 인터넷 사용 습관도 매우 중요합니다.”
박 대표는 ▲동일한 아이디 사용보다 여러가지 아이디를 사용할 것 ▲온라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말 것 ▲자신의 정보를 계속해서 셀프 검색하며 조금씩 지워나갈 것 등 평소에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한 인터넷 사용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디지털 장의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 대표는 우선 ‘꼼꼼함’을 꼽았다. 고객의 온라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해결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꼼꼼함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많이 늘었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사이버 공간에 남은 한 줄의 댓글,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일이라는 생각보다 이들을 돕겠다는 사명감 있는 사람들이 이 직업을 꿈꾸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디지털장의사란?디지털장의사는 고객 또는 유족의 의뢰에 따라 고객 또는 유족이 남긴 인터넷 계정, 게시물, 사진 등을 삭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디지털 장의사의 현황은?국내에서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는 사이버 평판 관리 사업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관련 업무와 사이버 평판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업은 20여 곳으로, 정규직 직원은 5~20명 내외다.
디지털 장의사의 미래 전망은?사회적으로는 SNS 계정은 물론 작성한 글, 사진 등 저작권과 관련된 게시물, 게임을 하면서 축적된 게임머니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어 디지털 장의사를 통해 고객의 디지털 흔적을 지우는 서비스 수요도 늘고 관련 일자리도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큰 자금이 필요하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유사한 분야 경력을 가지고 창업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가 되려면?디지털 장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과나 공인 자격증은 마련돼 있지 않다. 하지만 IT기술 종사자나 신규 또는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개인정보 보호법, 인터넷 검색 및 분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고,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유리하다.
yena@hankyung.com사진=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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