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정리’냐고요?”… 국내 1호 정리수납 컨설턴트 윤선현

[미래직업④] 정리수납 컨설턴트
로봇이 사람 대신 일을 하고 도로를 무인 자동차가 누비게 될 최첨단 미래 시대에 유망 직업으로 웬 ‘정리수납 컨설턴트’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미니멀 라이프’와 ‘미니멀리즘’이 주목을 받고, 일본에서 ‘단샤리(斷捨離)’가 최고 유행어로 떠올라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다.
더 적게 가짐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시대, 불필요한 것을 끊고 버린 후 갖게 될 심플한 삶을 꿈꾸는 시대에 ‘정리수납 컨설턴트’는 분명 미래를 이끌어갈 직업이며, 2015년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미래를 함께 할 새로운 직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정리수납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만든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리수납 컨설턴트는 인생을 정리해 주는 사람”
우리는 살아가면서 집이나 사무실 등의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인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것들을 잘 정리하기란 쉽지 않고, 때론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다.
‘국내 1호 정리수납 컨설턴트’ 윤선현 대표는 물건에 포위된 채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홀가분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정리수납 컨설턴트’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또 무언가를 정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가 포기해야 할 것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조언해주는 역할도 한다.
“‘정리수납 컨설턴트’에 대해 흔히들 집과 사무실 등의 공간에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직업적인 정의도 그렇게 되어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정리수납 컨설턴트’는 다른 이의 인생을 정리해주는 직업이에요. 공간을 정리하며 그 사람이 생활 속에서 안고 살아가는 스트레스 요인과 낭비적인 부분을 줄이거나 없애주는 역할을 하죠.”
정리를 통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그는 20대 중반에 출판사에 입사해 10년을 근무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일을 잘 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고 더욱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야근과 밤샘, 끊임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치여 어느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삶의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던 순간 그는 우연히 ‘시간 관리’에 대한 책을 읽게 됐다.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 관리 능력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시중에 나와 있던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을 모조리 읽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었다.
“그 때 처음 나 하나만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다른 것들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내 주변에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책과 서류더미가 쌓여있는 책상을 보게 됐습니다. ‘이렇게 어지러운 것이 내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전부 내다 버리고 싶더라고요.”
감명 깊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했던 책, 언젠간 쓰겠지 했던 문구 용품들, 돈 주고 산건데 아깝다거나 많을수록 좋으니 가지고 있어야지 했던 것 등 나름의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 하고 가지고만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일들이 우선순위인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배분하는 것이 진정한 ‘시간 관리’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시간 관리’의 핵심은 환경적인 요인에 있었던 것이다.
‘정리’의 중요성을 알게된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정리 컨설팅’ 분야에 뛰어든 지난 2010년,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정리 컨설턴트’가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이 같은 개념이 전혀 없었다.
관련 서적과 외국 사례들을 모두 찾아보며 ‘정리 공부’에 몰두했다. 그런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청소 하는 것도 공부를 해야 하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우리 엄마가 하는 일을 하냐’, ‘그게 무슨 직업이 되겠냐’며 만류했다. 더구나 남자가 정리를 한다니 우습게 생각하는 이도 많았다.
“이 일이 과연 될까, 정리를 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로 옆 사람만 보더라도 정리 못 하고 너저분하게 살고 있거든요. 기자님 책상도 분명 그럴 겁니다.(웃음)”

‘정리수납 컨설턴트’를 창직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정리 컨설팅’은 국내에서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에 윤 대표는 먼저 정리 방법을 알려주는 ‘정리 교육’과 직접 정리를 도와주는 ‘정리 컨설팅’, 그리고 정리와 관련된 용품을 판매하는 ‘정리 제품 판매’ 세 가지로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비스였기에 초기에는 사업 홍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2010년 블로그를 개설하고, 2012년에는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과 노하우 등을 묶어 ‘하루 15분 정리의 힘’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20만부 이상 팔리며 ‘201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됐고 이후 ‘정리 컨설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사이트를 오픈해 정리에 대한 필요성과 사업을 알리고, 각종 정리에 대한 노하우와 교육에 관한 정보 등을 제공해 방문자들에게 도움을 줬다.
정리컨설턴트 양성을 위한 자격증 과정도 만들었다. 정리컨설팅 현장에서는 컨설턴트들이 직접 정리뿐만 아니라 진단과 코칭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윤 대표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직접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요. 그 물건들 중 90%는 직접 산 것이지만 하나 같이 공간만 차지하며 단지 쌓여있기만 해요. 늘 돈 걱정을 하고,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로 새로운 투자처나 연봉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보관하는데 들이는 돈과 시간, 에너지의 낭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제때에 필요한 만큼만 사서 잘 이용하고 제자리에 보관하는 ‘정리된 인생’을 사는 것만으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요.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게 되면 자신의 소비패턴을 파악하게 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게 되면서 늘어난 돈과 여유 시간만큼 삶에 의욕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정리 컨설팅을 받은 후 정돈된 집의 모습. 사진 베리굿정리컨설팅 홈페이지
△정리 컨설팅을 받은 후 정돈된 집과 사무실의 모습. 사진 베리굿정리컨설팅 홈페이지
“정리를 넘어 인생을 설계하는 ‘라이프 매니저’가 목표”
한 번은 아버지가 ‘딸의 방을 정리해 달라’고 윤 대표에게 의뢰했다.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고 방 안에서 불을 꺼놓고 사는 의뢰인의 딸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가족들은 직접 의뢰를 하긴 했지만 마치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망설였고, 직원들도 동굴같은 방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커튼을 열어젖히고 방안을 말끔히 치우자 모두의 삶이 달라졌다.
TV에 나오는 ‘쓰레기 더미 집에 사는 사람’ 같은 극단적인 사례부터 일반 가정까지, 대부분은 정리를 하고 싶어 하지만 정리를 배운 적이 없고, 혼자 힘으로는 정리를 하지 못 한다.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맡기기를 껄끄러워 하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정리 컨설팅을 받아도 금세 더러워지거나 깨끗함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윤 대표는 “중요한 키워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리를 해준다는 것”이라며 “내가 스스로 끊어내지 못 했던 미련과 집착에 대해 누군가가 간섭하고 관여하고 도와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버리고 비우는 경험이 후에 습관이 되면 우리 삶에서 간절히 덜어내야 할 것이 물건뿐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불필요한 인간관계, 상념, 걱정, 식욕 등 비워야 할 대상을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히 확장시킬 수도 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한 정리 컨설팅을 넘은 ‘라이프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정리수납 컨설턴트들은 본인이 가진 전문 영역과 ‘정리’라는 요소를 결합해 시간 관리와 재무 관리, 스피치 교육까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한다. 이에 윤 대표는 직장 생활을 했던 경험을 살려 비즈니스 환경과 정리를 결합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는 “현재는 정리 컨설팅 수요의 95%가 가정집이고 나머지 5%가 커피숍과 인터넷 쇼핑몰 등의 사업장이지만, 향후 가정집 수요보다 비즈니스 환경 정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이미 입주한 공간을 정리하는 것 뿐 아니라, 아예 새로운 공간을 잘 정돈하고 창의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어 두고, 그 곳에 회사를 들어오게 하는 등의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는 사람에 대한 관심… 취준생도 배워보길 추천”
윤 대표는 ‘정리수납 컨설턴트’가 꼭 갖춰야 할 것에 대해 ‘사람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고 종류별로 분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과거, 그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아닌 주변 사람과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미래를 읽는 트렌드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은 바쁘더라도 ‘정리 컨설팅’ 교육을 한 번 쯤 받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주변 환경을 정돈할 줄 아는 사람은 생각과 말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하는데도 시간 관리, 인간관계 관리 등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에요.”
정리수납 전문가란?
가정이나 회사 등을 찾아가 각각의 공간과 환경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공간별·용도별·사용자별로 물건을 분류해 체계적인 정리수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정리수납 컨설턴트를 ‘수납 컨설턴트’와 ‘정리 컨설턴트’를 구분하기도 한다. 수납 컨설턴트는 물건에 한정해 정리정돈을 돕고, 정리 컨설턴트는 공간, 물건뿐 아니라 시간과 인맥 등까지 정리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정리수납 산업의 현재는?
정리수납컨설턴트는 정리수납 관련 업체에 소속돼 활동하거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현재 약 300명의 정리수납 컨설턴트(2016년 8월 기준)가 활동 중이다.
해외에서는 정리수납 컨설팅 산업이 연간 약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정리수납 전문업체 ‘덤인’의 경우 지난해 약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는 지난 2015년 4억 원에 비해 2.5배 늘었다.
정리수납 컨설턴트의 미래 전망은?
현재 포장이사 서비스가 보편화된 것처럼 수납이사가 일반화되면 현장에서 활동할 인력의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을 할 수도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등에서 어릴 때부터 물건을 정리하고 사용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한다든지, 복지관과 연계해 독거 노인의 삶의 질서를 돕는 역할도 가능하다. 점포 없이 창업이 가능한 분야이기도 해서 전문 인력을 꾸려 창업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다.
여성이 진출하기 쉽고 실제로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이어서 ‘여성 유망직종’ 또는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 적합 직종’으로 소개되고 있다.
정리수납 컨설턴트가 되려면?
사물 정리를 잘 해야 하며, 어느 곳에 물건을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고객의 요청을 귀담아듣고 컨설팅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원활한 대인관계 능력,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할 줄 아는 자세 등이 필요하고, 다양한 고객의 요청에 대응할 수 있는 인내심, 끈기도 요구된다.
교육은 정리수납컨설팅 업체, 정리수납컨설팅 관련 협회, 여성인력개발센터, 문화센터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다. 한국정리수납컨설턴트협회 등 관련 협회에서 민간자격을 취득해 활동할 수도 있다.
김예나 기자 yena@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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