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S는 기능직 양성 시스템···정권 바뀌면 없어질 것”

올해도 어김없이 상반기 공채 시즌이 돌아왔지만 지난해와 달리 취업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그 이유로는 지난해 연말부터 ‘이게 나라냐’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국정농단사태를 비롯해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는 무관하게 다년간 청년실업률이 높아져만 가는 현상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여기에 정부 중점 과제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적용을 두고 정부를 비롯해 기업,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취업전문가 표형종 한국커리어개발원 대표를 만나 취업에 관한 잡다한 ‘썰’을 풀어봤다.
-지난해부터 정부의 중점과제인 NCS 적용을 두고 정부와 기업, 학계에서 관심이 높다. 취업전문가로서 NCS를 어떻게 바라보나?NCS는 전공과 취업이 연결돼 있는 특성화고나 전문대학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NCS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기계, 해운, 사무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당장 배워 쓸 수 있는 기술이라기보다 대부분 특성화고나 전문대학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배워야 하는 분야다. 반면 4년제 대학은 전공이 경영학이더라도 졸업 후 자동차회사나, 백화점 등 전공과 다른 산업군으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NCS와 4년제 대학은 맞지 않다.
-대졸자와 고졸·전문대학 졸업자의 직업군이 달라야한다는 뜻인가?당연하다. 사회가 원하는 대졸사원의 직무능력은 기획력이나 문제해결능력 등이라면, 문서작성은 고졸 사원들이 하는 업무다. 고졸사원들이 작성한 문서를 파악하고 통찰하는 것이 대졸 사원들의 역할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데. 간극이 좁혀지려면 고졸, 대졸, 석·박사 채용 자체가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는데, 현재 기업의 채용은 다 따로 나눠져 있지 않나. NCS가 기능직 양성시스템이라면, 대졸자들에겐 관리직 시스템이 필요하다.

-NCS는 스펙을 초월하고 능력중심으로 인재를 채용한다는 취지이다. 고졸출신이라 하더라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과장, 부장, 임원, 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 아닌가?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아마 100년 후쯤일 것 같다.(웃음)
-NCS에 대해 유언비어 격인 소문이 돌기도 한다. NCS의 향후 거취는 어떻게 바라보나?개인적으론 정권이 바뀌면 없어질 것 같다.(웃음) 누차 말했듯이 NCS는 특성화고나 전문대학에는 적용 가능하지만 4년제 대학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대학의 목적은 취업보다 학문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대학은 취업률 올리는 데만 급급하다. 문제는 취업률 높이기마저 현재 대학 구조로는 다가가기 힘들다. 교수들의 역량이 부족하고 교내 취업 아카데미도 내용이 부실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4년제 대학에서도 NCS를 전공과목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얼마 전 부산 외대 언어학과 교수들과 NCS 적용 교과목 설계 회의를 하고 왔다. 쉽게 말해, ‘영어나 러시아어 같은 언어학과에 NCS를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인데, 결론이 안 났다. 개인적으론 언어학과 NCS는 어울리지 않고, 대학에서 NCS 적용을 논의하고 있는 건 뭔가 모순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모순적인가?언어학과도 마찬가지이지만 예를 들어 NCS를 철학과에 적용시킬 수 있나. 만약 철학과에 NCS를 적용시키면 모두 철학관을 열어야 하나.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 전공에 어떤 형식으로 NCS를 적용시킨다는 건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철학과 등 인문계열에 NCS를 적용한다는 건 너무 앞서나간 것 아닌가.아직 적용시키지 않을 뿐이지 앞으로 안한다는 건 아닐 거다. 전공을 기반으로 NCS를 개발·적용시킨다면 어떤 전공이던지 간에 흡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철학을 NCS로 분류한다면 인사 파트로 나눠지지 않을까. 철학의 이론적 연결고리를 엮어 본다면 말이다.
-만약 4년제 학과계열 중 ‘NCS 적용학과-비적용학과’로 나눠진다면 어떤 현상을 예측할 수 있나?그렇게 되면 주류, 비주류 학과로 구분되는 것과 같고, NCS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NCS는 취업뿐만 아니라 입사 후 역량발휘에도 목적이 있지 않나.
-실제 대학에선 NCS 적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혼란스러워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생들의 취업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뭔가?대학에서 NCS를 적용하려면 기본적으로 각 학과·학년별로 취업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한데, 이러한 시스템을 학과 자체에서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학에 NCS를 적용시킬 묘안이 있나? 가끔 강의에 나가면 NCS와 군대 시스템을 비교한다. 사관학교에서는 4년간 기초군사학을 교육한 뒤 6개월간 병과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사관생도들도 영어나 경영학 같은 전공은 따로 있다. 병과교육이 끝나면 자대배치를 받아 군 생활을 하게 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가 육사 출신인데, 영어도 잘하지만 전략도 잘 짜고 총도 잘 쏜다.(웃음) 그 개념이다. 대학에서 NCS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공과목과 연계해 전공을 살려 직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 정착되어야 한다.
- 최근 삼성 그룹 공채 폐지설도 이슈였는데 어떻게 바라보나?그룹 공채는 고용시장의 경직성만 일으킬 뿐이다. 폐지되는 게 맞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처럼 오늘 뽑고 내일 해고 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문제없지만 국내 기업이 어디 그런가. 한번 채용하면 쉽게 내보내지 못하는 노동법이 있지 않나. 그래서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 뽑아야하는 게 맞다. 그러기 위해선 그룹 공채 보다 직무에 맞게 계열사별로 채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럼 향후 취업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건가?그럴 수밖에 없다. 앞으론 취준생들도 막연히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업, 어느 부서에 직무까지 구체적으로 준비해야한다. 그럼 취업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취업 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대안이 있나?취업할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건 10년, 20년 전에도 똑같았다. 문제는 취업이 잘 안 되는 사람과 취업을 포기한 사람들의 탈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취업은 하고 싶은데 안 되고,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 방황하는 친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태에 놓여있는 취준생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창업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프레임은 맞지 않다. 정부의 무조건적인 창업 독려나 제한적인 창업 분야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폭 넓게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취업준비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 늘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여행을 갈 때 여행 장소나 목적이 명확해야 준비를 잘 할 수 있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주변을 보면 당장 공채 시즌이 시작되는데 뚜렷한 목표가 없는 학생들이 많다. 채용 공고는 ‘그동안 우리 회사를 준비했던 지원자를 받겠다’라는 의미인데, 취준생들에게 채용 공고는 기업 홈페이지를 처음 들어가 보는 날이다. 취업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가고 싶은 회사 다섯 기업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어떤 기업에 어떤 직무를 하고 싶은지 준비하고 기업이 원하는 양식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이다.
글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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